<삶의 한 순간을 - 함께 사는 세상> 따로 또 같이
▲ 우리가 처음 머무른 스페인의 파라도르 © https://paradores.es
살면서 가끔 서로의 의도와 상관없이 갈등을 겪을 때가 있다. 큰 틀에서 합의를 하고 나면 세부사항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당연히 상대(배우자)의 속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분명히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결정한 결과가 오히려 상대를 힘들게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말로 표현하고 털어내지 않으면 앙금으로 남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번 이야기도 그렇다.
밤새도록 유리창을 거세게 두들기는 빗줄기, 거대한 성채가 폭풍 속에 갇혀있다. 공포스러운 바람소리가 성벽을 휘감아 돈다. 묵직한 원목 덧문까지 만들어져 굳게 닫혀있는 유리창, 침실에도 물론 두꺼운 원목 중문이 닫혀있고 햇빛차단용 두꺼운 암막커튼도 내려진 상태다. 그런데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게 아니다. 허허벌판에서 벌벌 떨고 있는 불쌍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로 극한 체험 중인데 서방님(남편)은 세상 편하게 숙면 중이다.
멀리서 웅장한 성채를 바라보며 산책하고 관광하는 것은 운치 있고 좋은 경험이긴 하나 산꼭대기에 올라앉아 밤을 지내는 것이 나는 편하지 않다.
은퇴 후 어떤 의무감도 없이 우리 둘만을 위한 여행이며 휴식이다. 편하고 싶다. 남편은 독특하고 멋진 전망과 여행지의 특성을 살린 최선의 호텔을 선정해서 휴식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고마운 마음은 그지없지만 애쓴 보람도 없이 파라도르(Parador)는 내게 편안한 휴식을 주지 못한다. 아마도 남편은 이미 내 불편한 기색을 알아차리고 못내 서운한 마음이 깊게 가라앉아 있을지 모른다.
내가 파라도르에 대해 착각한 것이 하나 있다. 아름다운 장원 숲 속에 자리한 고풍스러운 저택으로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이번 여행 중 내 기대에 걸맞은 아름다운 숲 속 호텔에서 묵은 적이 있다. 파라도르도 그럴 것이라 기대한 것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고성을 소유하지 못해도 진정으로 ‘성주 마님’ 노릇을 시켜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평소의 내 취향을 고려한 남편의 노력은 사무치게 황송한데, 나! 성주마님 노릇 그만하면 안 될까요?
마님은 정말 낮은 곳에 머물고 싶답니다.
※ 참고: ‘서방님’과 ‘마님’은 일상적으로 우리 부부가 서로를 부르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