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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rene Feb 06. 2024

선한 사람, 무례한 자

<삶의 한 순간을 - 함께 사는 세상> 이해와 배려

▲ 좋은, 그저 그런, 나쁜  © https://www.cumanagement.com





선한 사람


각 개인에 있어서 무엇이 ‘선(Good, 善)’하고 ‘악(Bad, 惡)’한가는 결국 그 사람의 가치관에 따른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80년을 산다고 가정할 때 평생 벼락에 맞을 확률은 15,300분의 1이며,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그것의 10분의 1 정도라고 한다(출처: https://www.weather.gov). 약 15만 명 중 한 명이 벼락을 맞아 죽을 수 있다는 얘기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험악하다지만, 살면서 선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벼락 맞아 죽는 경우보다는 많으리라 위로하며 나 스스로 그 선한 사람에 속하기를 소망하며 산다.


여행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과 사건·사고를 경험하게 된다.  낯선 곳을 여행하며 어려움을 겪을 때 기대하지 않은 선한 사람을 만나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을 만나  여행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보스턴(Boston) 여행을 마치고 뉴욕 올바니(Albany)를 향하는 도로  양쪽은  낮은 관목이 무성하고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  통행량이 뜸하다.  호텔까지  아직 2시간 반을 더 가야 한다. 갑자기 쿵하는 소리에 놀라 차에서 내려보니, 커다란 동물이 도로를 건너려다 전조등에 눈이 부셔  차를 향해 달려들었나 보다. 


차의 앞쪽은 엔진룸까지 망가져 있고 운전석 앞 유리가 약간 깨졌다.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쓰러져 있는 동물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도심에서 30여 분만 나와도 거리에서 로드킬(Roadkill)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나 지금 내가 그 현장에 있다.


911에 신고하고 트리플에이(AAA, 미국자동차협회)의 긴급견인서비스를 기다리는데, 커다란 화물차 한 대가 우리 차  앞의 도로가에 멈춘 후 남성 운전자(Trucker)가 다가와서 살피며 도와줄 것이 없는지 묻는다.  일부러 고장 난 차량에 접근하여 노상강도 등 나쁜 짓을 한다는 뉴스가 흔한 세상이다.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만난 건장한 체격의 트럭커는 우리에게 따뜻한 친구가 되어준다. 


▲ 야간 운전 중 야생동물과 충돌 후 폐차된 우리 차  © Kyrene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차가 요란한 경광등을 번쩍이며 다가온다. 우리의 안전상태, 사고상황 등을 살핀 후 견인차가 올 때까지 함께 있겠다며 우리 차 뒤를 지켜주고 있다.  트럭커의 연락처를 전해 받고 감사의 인사를 한 후 운전자는 떠났지만, 경찰이 견인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뒤에서 우리 차를 비추고 있는 불빛은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안식처를 주는 느낌이다. 과속단속 등 사건현장에서 보여주던 모습과는  다른 미국경찰의 모습에 놀라며 마음이 평안해진다. 


▲ 어둠 속을 지켜준 경찰  © Kyrene


여행을 마치고 트럭운전자와는 연락을 하고 지내지만, 아쉽게도 경찰관은 그가 알려준 전화번호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미국에 사는 동안 만나는 사람으로 인하여 좋지 않은 경험도 있지만,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서 만난 선한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오늘 또 마음의 빚 하나가 쌓인다.




무례한 자


캐나다 퀘벡(Québec)의 샤토 프롱트낙(Château Frontenac) 등 여행을 잘 마치고 근처의 호텔에 투숙한다. 여느 때와 같이 해당 체인호텔의 홈페이지에서 트리플에이 할인요금으로 사전예약을 하고 방문한 곳이다. 


▲ 미국의 AAA 추천 호텔이라는 광고판  © Kyrene


다음날 아침 미국의 아카디아 국립공원(Acadia National Park)으로 떠나기 위해 호텔 체크아웃을 하는데, 청구서를 확인해 보니 예약금보다 많은 금액이 청구된다. 과다청구 이유를 문의하였더니, 다짜고짜 호텔의 청구금액이 맞다는 것이다. 예약서류를 확인시켜 줘도 막무가내다. 호텔에서 바가지요금을 씌우는 것은 처음 겪는 생경함이다.


관리자로 보이는 백인 남성이 나타나 직원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더니 여전히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도리어 언성을 높이며 대든다. 다른 손님들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의기양양하게, 심지어 영업방해로 경찰을 부르겠다고 위협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호텔의 고객응대 기본의 기본도 모르는 안하무인이다. 참으로 가관이다. 나도 대사관에 연락하겠다고 응수하니 잠시 주춤한다. 


▲ 여행 중 최악의 고객응대를 경험한 캐나다 퀘벡의 호텔  © Kyrene


그곳을 떠난 후, 우선 그 호텔을 추천한 트리플에이 본사에 그 간의 경과를 알리고 적절한 조치를 요청한다. 며칠 지나지 않아 사과문과 함께 투숙비 전액을 환불 조치하였고 해당 호텔에 사실 확인 후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는 연락을 받는다. 며칠이 지난 후 어느 날 체인호텔의 법무팀으로부터 해당 건에 대하여 상의를 요청하는 전화메시지를 받는다.


호텔은 투숙객에 대하여 일반인과 다른 특별한 관계에 있으며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 그 자의 무례함을 생각하면 정신적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었으나, 이미 트리플에이에서 적절한 조치를 하였고 국제소송이 쉬운 절차는 아니어서 그 정도에서 접기로 한다.


퀘벡의 추억 속에는 캐나다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상대적으로 덜 차별적인 좋은 경험이 많지만, 그 무례한 자의 눈빛은  아직도 선명하다.  하지만 그 불쾌감도 또 다른 선(善)한 경험을 주고받으며,  이제는 살아오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의 여행 일화로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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