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과일의 때깔은 입에 침이 돋게 하지만 맛은 덜 영글었다. 그래도 나는 사시사철 과일을 부모님께 사다 드렸다. 두 분 사이좋게 드시라며, 배부르면 아버진 심술을 덜 짜증 내시라고 간식을 계속 달고 갔다. 엄마 것만 사면 좋은데 엄만 혼자 드시다 분명히 걸릴 거고, 출출한 아버진 엄마를 더 볶을 것이기에 거기다 미혼 남동생과 막내 여동생이 한 가족이니, 푸짐하게 과일이나 간식을 박스로 사 날랐다.
인상이 찌푸려져 있던 엄만 새 명절날 아침부터 “이건 맛이 없어. 네가 갖다 먹어. 중국산이야.” 얼토당토 야단을 치신다. 이때마다 흰 자가 매섭게 몰리신다. “언니, 이거 중국산이지. 내가 산 게 맛있어.” 막냇동생도 얄궂게 거든다. 무릎에 앉힌 내 작은 아이 등 뒤로 뜨건 눈물이 흘러서 소매로 이따금씩 훔쳐내곤 했다. 난 그래도 말대꾸도, 아니오 소리도 안 했다. 점점 연로해지시니 이다음에 돌아가시면 후회하지 않으려고 말대답만큼은 절대로 안 했다. 항상 내가 먼저 전화기를 들었으며 더 지났다가 가야지 생각을 했다가도 앞서서 먹거리 들고 찾아갔다.
어쩌다가 딱 1년에 한 번, 자디 잘은 귤 한 봉다리나 손 주먹 크기, 잘은 노랑 참외 한 봉씩을 사 가져온 한 살 아래 여동생 것은, 기가 차게 맛있고 아주 좋아서 신이 나셨다. 담박질하듯 내게 전화를 주신다. 가뭄에 콩 나듯이 오천 원짜리 드리 내면 정성이 기특해서인가 엄마는 달콤한 냄새 풀풀 나는 제철 과일을 침이 마르도록 내게 좋다 시며 더 사 오라고 돈을 주셨단다. 그런데 이걸로 끝이지 절대로 더 사들고 온 봉지는 없었다. 엄마한테 용돈도 꼬박 드렸는데 이 돈을 보태어 내 두 아이 대학 입학금으로 천만 원씩 내주셨다. 손주 대학 입학금 대주시려고 적금 붓듯이 악착같은 마음으로 모으셨을 건데. 쌈짓돈 긁어모아. 꼭 대주시려고 별렀던 마음이 뜨겁게 반응하며 울먹거려졌다. 어떤 표현이 맞을까? 감사해요. 엄마! 감사합니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 고맙다는 말은 했지만 맨날 혼만 나던 내가 볼까지 뜨겁다.
그런데 난 말대답이 없어서인지, 아니오 소릴 못해봐서인지, 예전 연속극 ‘아씨’에서 아씨가 하고 싶은 말을 가슴으로만 품어서, 사람들이 이 프로를 볼 때마다 ‘아 답답해.’를 연신 했듯이, 나도 속에만 저몄지 가슴이 메어도 속내의를 표시 못했다. 난 중국 것을 사 드린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내가 먹고 싶어 산 것을 내 부모님께 “아뢰오.” 하듯이 고스란히 내드렸다. 보기에 좋은 놈으로 산걸. 엄마 집에 놓고 오면 침이 쪼르륵 솟도록 배고픔은, 아무것이라도 씹어 삼켰으면 하는 충동이 어디로 사라지고 부모님 드렸다는 것에 배가 저절로 불렀다. 머리 생각부터 배가 불러옴은 입이 벙벙해져서 집으로 가는 거다. 개 중에 “이건 맛이 없으니 도로 가져가라.” 속으로 ‘다리 아픈데. 그래도 얼른 들고 와야 하구먼. 섭섭하고 공이 없는데 난 멈추지 않고 맏이를 직분처럼 해내야 해. 신세 진 거 갚아야 해. 내가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건 내 부모님도 매한가지일 텐데... 울먹거렸다.
길 가다 일하다 말고도 매장 앞에 예쁜 정장, 눈에 확 띈 뾰족 구두가 들어오면 엄마를 불렀다. 콜 한지 한 시간이 걸려 엄마가 오시면 얼른 입혀드렸다. 막냇동생이 사드리고 내가 이쁜 거 골라드려서 엄마는 동네의 베스트 드레서이시다. 환갑 때 예고 앞에서 문구점을 시작한 엄마는 칠순 넘어서까지 도매점에 직접 다니셨다. 배다리로 물건을 떼러 가실 때마다 부티가 팍팍 나는 정장으로 한껏 멋을 내셨다. 그럼 나는 마치 나 자신이 꾸민 것처럼 기분이 풍선처럼 뻥하고 신이 났다. 대리만족인가 보다.
“중국 것이냐?” 얕보신 말로 동생들 앞에서 꾸짖지 않으셨으면. 맛이 덜 해도 “고맙다. 잘 먹겠다.”로 해주셨으면 좋으련만. 베란다에 이삼일 놔두면 숙성돼서 맛이 달아지는데 말이지.
유난히 두둔한 둘째 자식을 더 맘에 두셨던 게 어쩌면 형제 중에 가장 힘겹게 살아서인 듯. 또한, 생떼를 쓰니 시끄러움을 피하기 위해서 “그래. 그래.”로 일관해버린 것이려니. 그러면 내 위치 맏이는 어디로 분실이 된 건지.
학교 다니실 때 낭독 대회 나가서 1등을 잡으신 엄만 목소리가 참 특이하고 구성지시다.
노래도 무용도 뽑혀 다니셨는데 내게 역정 내실 때만 톤이 틀리단 말이지. 행위예술을 선호한 엄마와 내가 연극 ‘콩쥐팥쥐’ 관람을 했는데 이 표는 밑에 동생한테 양보해 줄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