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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un 03. 2024

또 다른 맏이와 마주침

슬픔보다 더 거대한 감정

 막냇동생은 오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미혼이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집도 여러 채 장만하고 형편 에 따라서 큰돈을 잘 꺼내놨다. 이동생이 여유가 많으니 엄마랑 둘이서 여행도 다니고 제주도로 휴가도 다녀왔다. 신이 나서 돌아오신 엄마는 “나 또 가고 싶어.” 연거푸 아쉬움을 내셨다.

3일 뒤에 내가 이십오만 원을 해드리며 “또 갔다 와. 엄마.” 그랬는데 저녁때 맘이 변하셔선 전화 로 “얘, 둘째네가 여길 못 갔어. 신혼여행으로 졔주도에 못 간걸 바가지 긁듯 했대.” “엄마 맘 대로 해. 그럼.” 결국 둘째동생네가 비행기를 타게 됐다. 욕심이 자꾸 불어나는 둘째. 얘네는 내 돈으로 제주도 여행을 갔어.

 

 거기다  외가쪽으론 친척이 많았는데 이 앞에서 엄마는 “난 막내딸을 잘 뒀어. 막내가 효녀라서 아주 배부르게 잘 살아.” 그러셨다.

 나도 아주 못 되진 않은거 같은데... ...

 내가 쓴 건 푼돈이니 표시가 안나며 중국산을 사 온거 같으니 질이 안좋아 보이셨을 거고, 자주 뵈니 그냥 그냥 편한 자식으로 여기셨을 거다. 


 막내는 고함 치며 아쉬운 돈을 썼다. 맘에 안 들면 “이 그릇은 내 것이 아니잖아.” 혓바닥을 끌끌 차며 엄마한테 가슴을 저밀게 했다. 이때마 다 엄마는 내게 눈을 찡긋하셨다. 효녀인 막내는 부모와 한 집에 사니 맛있는 것도 더 갖다 드리고  어불렁 더불렁 부대껴 살면서 싫다는 소릴 아주 강하게 했다. 형제들 한테도 에헴 큰소릴 치고.

 막내가 돈을 모으게 된 건 대기업에서 늦나이 까지 있기도 했지만 어린 조카들과 백화점을 가려면 몇 정류장씩 걷게 하고, 햄버거를 먹을 땐  목이 타는 애들의 요구를 무시하고서 "물은 집에 가서 마셔." 라콜라 한 잔도 안 사줬다. 지독한 이모가 되면서까지  저축을 하며 알뜰했던 막 냇동생은 이런식으로 모은 목돈을 사업하는 들한테 몇 천만 원씩 불불 떨며 내주기도 했다.

 바람이 유난히 세차게 부는 날 엄마랑 마주쳤다.           

나는 머릿속이 시렸으며 더 날리는 엄마 머리를 보니 얼른 모자 가게로 모시고 가야했다. 이쁘면서 따신 모자를 씌워드렸다. 다음 주에 또 그렇게 만난 날, 찬바람을 뒤집어 쓰고 나오시는 바람에 모자를 다시 사드리게 됐다. 바람은 이날도 무지 얄궂게 심술 폈다. 엄마는 왜 그냥 나오신 건지, 얼떨결에 나오신 건지 “이제부턴 주머니에 모자를 넣어놔줘.” 그리고부터 엄마는 외출시에 모자를 벗지 않으셨다. 창백했던 엄마 볼이 발그레 지셨다. 모자를 쓰지 않는 이들도 나처럼 엄마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이모부할아버지를 상 당해서 부모님 모시고 4형제가 모두 장례식장에 예의를 갖추고 모인 날이다. 때마침 이날은 나도 검정 원피스를 입고 출근한 날이었다. 내 체형이 말라서 그렇지 전철로 2시간 이상 소요되는 회사를 는데 엉망으로 후줄근한 차림새로 다니지 않았건만 무엇이 치우쳤을까? “넌 왜 이 옷을 입고 왔냐.” 엄마가 못마땅해 하셨다.


 자주 엄마 집에 오셨던 이모할머니한테 인사를 드리는데 할머니가 “큰애는 많이 말랐네.” 엄마가 바로 “지 아비 닮아서 비기 싫게 비쩍 말랐어요! 이모 좀 있으면 우리 둘째 딸 오는데 아주 멋쟁이야. 멋쟁이가 올 거예요.” 이모할머니는 대답을 안 하셨다. 나는 꼬리를 내린 강아지가 됐다. 정말 조금 후 둘째가 검정 정장을 쪽 빼고 왔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느닷 없이 내 두 손을 탁 잡으시더니 “얘, 네가 훌륭하 다. 장하다. 딸 둘을 공부시켜서 정규대학 4년제를 다 마치게 하고, 네가 장하다.” 어깨도 두드려 주셨다. 빙산 한 개가 떨어져 나와 스르륵 녹듯이 내게 큰 위로가 되고 초상집에서 입이 벌어지며 웃음을 짓게 했다. 아울러서 내가 대단하는 자부심도 가졌다.  

 이모할머니께 두고두고 감사하다.


  난 대출 받은 것도 빚을 진것도 없다.

특히나  엄마는 분명히 날 맏이로 낳으신건데.

 타박타박 내게 구박 같은걸 하실까?


 내 시대 때는 만년필이 유행이어서 난 14금 펜촉이 달린 독일제를 필통에 채워 갖고 다녔다. 이걸로 필기체 영어를 끄적이면 쓱쓱 잘 밀려 갔다.  애들 것보다 더 많고 훨씬 좋은 을 소지하고 있는 내게 엄마는 실버바탕에 빨강 카네이션 그림이 있는 샤프펜슬과  세트로된 만년필을 사서 주셨다.

 그리고 아주 맵시가 나는 원피스도 사 입혀주셔서 뽐내 다녔. 이 때 내가 편도선이 심하게 돋아서 정말 큰 드라이버만한 주사를 맞았는데 움직이질 못했다. 중학생인 나를 적십자 병원에서 부터 서너 정류장을 업고 가셨는데 이건 두 필요없이 분명 어머니의 끔찍한 사랑 이잖아.


 아마도 몸조리 사건으로 인한 사유 같다. 미운털이 배기면서 싫은 소릴 듣는게 속에서 거꾸로 털이 자람으로 따끔따끔 찔리는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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