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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un 09. 2024

또 다른 맏이와 마주침

소유의 개념

 밑의 한 살 터울 동생이 쌈닭처럼 분란을 잘 일으키고 소유욕이 강해서 나는 매번 밀리고 빨랫줄에 너덜너덜 매달린 젖은 옷처럼 볼품없는 맏이였다.


 직장 생활로 경리직분을 가진 나는 내 손으로 담은 명세서 내역이 있는 황색 봉투의 월급을 호치키스 박은 채로 엄마한테 또박또박 드렸다. 옷 좀 사 입으려고 돈을 타내야 하고 버스 토큰을 사야 해서 차비를 받아내려면 엄마 눈치를 크게 봤다. 그래서 지금도 선뜻 옷 사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떨려진다. 반면에 결혼하기까지 한 달 중 보름치만 직업이 있던 둘째는 15일 치의 급여로 몽땅 옷을 사가지고 들어와서는, 뭐냐? 멀쩡하게 밥을 먹고 있는데 아무도 나무라거나 눈치를 주지 않았다. 둘째라서 하도 심술 피니까 포기를 하신 건가. 나는 맏이라서 기대치가 커서인가.


 엄마는 또 내 월급 다섯 달 치를 모아서 둘째가 보내달라는 미용학교에 고등교육 마치고 한 번 더 보내셨다. 그게 백만 원의 수업료, 시다바리가 쌔다고 밑에서 잡부처럼 허드렛일만 한다고 포기한 동생, 딸 둘을 낳고 살면서 친정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림이 됐다.


 아무도 몰랐다. 몰래 배가 빵빵해서 둘째네가 왔네. 친정의 보탬 없인 살아내기 힘든 동생이 셋 째 아이를 갖고 배가 티 나게 불러서 왔다. 내가 작은 아이 가졌을 땐 돈도 없이 애를 낳냐고 난리들을 치더니 넌 아들을 낳겠다고 왔구나!


 나처럼 아주 안 좋은, 그래서는 안될 희한한 가시 돋은 아픔을 갖게 될까 봐 네가 아들을 낳았을 때, 네 집식구들 길병원 근처에서 밥을 사줬다. 십만 원 돈 봉투에 고깃 거리와 기저귀감을 내밀어 줬으며 이후로도 수시로 고깃 거리, 간식거리를 대주고 왔다. 네게서 여태껏 물 한 모금 대접받지 못했지만 대리 만족일까, 동정일까. 내 형제들이 잘 살아줘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어느 집은 본인의 수고비로 공장 다닌 고생비로 오빠 학비, 가정 보탬을 했는데 덕이 없다고들 한다. 난 덕은커녕 음해한 억울한 소리만 안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베풂 하고서 가슴 언저리 시린 다른 이들, 고마움을 모른 채 덕을 본 사람들 때문이거늘, 상처되는 말만 안 했어도 적반하장 생때같은 말로 토닥토닥은커녕 타박타박하지만 않았어도……


 늦둥이 아들을 낳았다고 큰소리치는 둘째는 돈이 없어도 친정에서 다 해결해 주는데 뭣이 문제이련가 웃으며 아기 젖을 물리면 되는 거지. 동생의 운과 내 운은 달라서 이겠지. 내 그릇은 그것밖에...... 혼나는 것으로 공이 없음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이 바보야, 왜 말을 못 하는 거니. 아니, 말을 하면 안 돼. 엄마는 손주가 늘면서 점점 옛 얼굴이 아니셨다. 할머니 얼굴이 나왔다. 이다음에 내가 말대답한 것으로 아파하면 안 돼. 쉬운 다짐을 가졌다. 애오라지 엄마이니까.


 동생들한테 나는 못난 맏이이면서 그들의 부탁은 웬만하면 들어줬다. 네가 아기를 가졌을 때 찐 감자를 원해서 두 번이나 파실파실하게 쪄다 줬었지. 나도 너처럼 딸 아기를 가졌을 때 찐 감자를 찾았다. (네가 먼저 작은 아이를 가졌고 몇 달 후 나도 아기가 들어섰어.) 아무도 별 볼일 없이 “에잇, 네가 쪄 먹어 넌 손발이 없냐.” 듣기 싫은 목소리로 무시당해버렸다.


 오늘은 내가 몸살이 났구만. 오만가지 생각이 더 난다.

형제애가 좋았으면¿ 늘 바라던 거 맏이의 못난 탓이야.

역으로 말한다면 난 괜찮은 언니, 좋은 누난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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