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제부는 술을 좋아한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인정도 있고 점잖았다. 처형이 잘해준다고 국수도 맛있게 삶아주고, 달달한 곱이 가득 찬 소 곱창도 사다 구워주고 내 아이들이 변을 보면 밑도 닦아줬다. 이 사람이 술을 마시면 주사가 있으니 요 순간만 피하면 괜찮은 거다.
둘째동생은 애들을 데리고 친정에 왔다. 해가 지면 기온이 빠르게 떨어지는 5월이어서 뱃속에 아기를 가진 나는 주머니가 달린 코듀로이 원피스를 입고 있을 때였다. 둘째가 “아씨. 술을 진탕 먹고 왔어. 카드를 뺏어야 하는데 자다 깨면 난리 칠 거 아냐. 같이 가자.” 이래서 어떨 결에 나선 것이 지갑도 없이 야밤에 쫓아가게 됐다. 제부는 고래가 되어 세상모르게 잠들어있었다.
주머니에서 카드를 뺀 동생이 내가 있어서 인가 잠든 남편을 질겅질겅 밟아 댔다. 나는 꿈틀꿈틀 대는 제부가 벌떡 일어날까 봐 그만 가자고 했다. 동생은 제부를 깨워서 내가 혼내줄 줄 알았더니 가자고 하냐며 눈을 부릅떴다. 나, 동생, 동생의 큰 딸 셋이서 집으로 향하는데 양 갈림길이 나왔다. “에잇!” 하더니 단 돈 1원도 없는 배 나온 내게서 자기 딸을 데리고는 휙 가버렸다.
신기촌에서 시청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기계공고 앞에까지 왔는데도 다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허탈한 걸음으로 천천히 걷다가 문득 내 아기가 뱃속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래 동생은 내가 일전 없이 쫓아 나선 걸 알면서 임신부인 나를 버리고 내팽개치고 가버린 것이다. 그냥 집까지 쭉 가도 다리가 안 아플 것 같았다.
새벽이 되려고 조금 떴던 별이 지고 있었다. 아기 생각해서 택시를 잡았다. “첫 손님이 여자라서 죄송해요. 시청까지 가주세요. 제가 돈을 안 가지고 나왔는데 기다려 주실 수 있는지요?” “괜찮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지갑을 가지고 나올 때까지 그분은 나를 믿고 기다리고 계셨다. 살면서 고마운 분으로 손가락에 꼽을 분이다. 이날은 돈을 많이 버셨기를……
엄마는 내게 왜 늦었니 말씀도 안 하시고 밑의 동생을 뭐라고 혼내주지도 않았다. 나는 불평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미웠던 동생도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