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욱 Oct 10. 2020

신문팔이 소녀

화가 연미 인물스마트소설

<신문팔이 소녀-화가 연미 인물스마트소설>


  소녀는 오늘도 신문 한 다발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노인은 오늘도 빳빳하게 다린 옷을 차려입었습니다. 30년 넘게 고위 공무원으로 일한 애국자인 노인은 퇴직하고 제주도로 와서 집을 새로 지었습니다. 노인의 거실 장식장엔 표창장, 감사패와 트로피 그리고 몇 해 전 위암으로 죽은 아내의 사진이 있습니다. 입맛을 잃은 노인은 육지에서 떨어져 있는 고립감과 외로움에 신문을 많이 붑니다. 소녀는 노인을 위해 매일 새로운 신문 요리를 합니다. 

  소녀는 주방에 재료를 늘어놓고 종이신문 쌈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노인은 직접 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굴려 식탁 앞까지 다가왔습니다. 오늘은 살비듬 냄새를 감추려고 진한 향수를 쓴 모양입니다. 소녀는 향수와 신문의 인쇄잉크 냄새가 섞여 생목이 잡혔습니다. 요리할 때 옆에서 자꾸 참견하면 집중할 수가 없지만 노인의 입맛이 바로 잡힐 때까지 싫은 내색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늘 재료가 뭐지?”

  “지역 신문과 중앙지이에요.”

  노화로 수정체가 뿌옇게 흐려진 노인은 목을 길게 빼고 도마에 놓인 신문을 훑어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보수 신문들이군.”

  “좋아하시는 거로 준비했지만 이런 신문들은 이미지가 크고 감정선을 건드리기 때문에 건강에 안 좋아요.”

  “살면 얼마나 산다고, 먹고 싶은 거 먹다 가야지.”

  소녀는 먼저 중앙지를 소리 나게 펼친 다음 가위로 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신문은 자체로 미학적인 예술품이에요. 요즘, 신문을 하나하나 꼼꼼히 읽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신문은 보는 것이기에 배치의 미학으로 사람에게 감정적 영향을 줘요.” 

  노인은 고개를 끄떡이며 소녀의 뒷모습을 뚫어지라 쳐다봤습니다. 소녀는 노인의 미각을 자극하기 위해 신문의 이미지를 활용해서 맛을 내기로 했습니다. 이미지는 찍는 각도에 따라 부풀려지거나 중요한 사실이 노출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조간신문의 이미지는 사건의 맥락과 상관없이 자극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자극적이면 깊은 맛을 내기 힘듭니다. 소녀는 깊은 맛을 위해 이미지를 진간장으로 덧칠했습니다. 어느 것은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새까맣게 또 어느 것은 진간장을 묽게 해서 윤곽이 살짝 드러나게 칠했습니다. 살짝 가려진 이미지는 감칠맛을 내면서 노인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입니다. 

  소녀는 진간장으로 이미지를 지운 신문 조각을 말리기 위해 주방의 창을 열었습니다. 백사장에 시커먼 현무암이 이끼처럼 돋아난 김녕 해변이 펼쳐졌습니다. 이곳은 언제 봐도 한산한 바닷가입니다. 마음이 들어설 여백이 있어 소녀가 제일 마음에 드는 해변입니다. 창가에 진간장으로 덧칠한 신문조각을 늘어놓고 이번에는 지역신문을 다듬었습니다. 기사와 상관없이 이미지들을 손으로 뜯어내서 모았습니다. 소녀는 요리하면서 요즘 우리가 겪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어떤 사안을 심각하게 다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뜯어낸 이미지들은 밥을 싸서 먹을 때의 식감을 위해 살짝 데쳐 얼음물에 식혔습니다. 된장과 갈치속젓을 섞어 쌈장을 만들었습니다. 이미지를 오려낸 구멍 난 신문 한 장을 잘게 찢은 다음 밀가루 반죽에 넣었습니다. 반죽으로 만두피를 만들고 제주 흑돼지로 만든 소를 넣어 납작하게 만두를 빚어 삶았습니다. 소녀는 햅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창가에 앉아 땀을 닦았습니다. 

  “솜씨가 좋은데 식당 차릴 생각은 없나?”

  “이동 가판대를 만들어 신문 요리를 팔고 있어요.”

  “노점상이로군. 내가 투자 좀 해줄까?”

  “필요 없어요. 어디든 갈 수 있는 가판대가 좋아요.”

  “메뉴는? 잘 팔리나?” 

  “내 시각으로 재구성한 신문을 팔아요. 제법 나가는 편이죠.”

  진간장으로 지운 이미지들이 바닷바람에 다 말랐습니다. 들기름을 살짝 발라 석쇠에 끼워 가스 불에 슬쩍 굽자 노인이 다가와 거북이처럼 고개를 내밀고 코를 벌름거렸습니다. 그럴 땐 소녀의 땀 냄새를 음미하는 것인지 음식의 맛을 가늠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직 멀었나?”

  “오늘따라 보채시네요?”

  노인이 거북이처럼 고개를 내밀어서 소녀는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그릇을 꺼내서 구운 이미지들을 가지런히 담았습니다. 삶은 만두는 종이신문 쌈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냉동해 두었다가 다음에 내기로 했습니다. 밥상을 차리고 나자 밥상이 단출한 것 같아 신문 겉절이를 추가했습니다. 남은 신문을 펼쳐 헤드라인과 기사의 문자를 변형했습니다. 이번엔 춘장을 붓으로 찍어 문자에 사선을 긋고 기호 안을 채웠습니다. 그러자 상형문자 같기도 하고 아랍 문자처럼 변했습니다. 기사의 사진을 보고 벌어진 사건을 대략 추측할 수는 있지만 이상한 문자로 인해 끔찍한 사건도 다른 나라의 일처럼 멀게 느껴졌습니다. 문자를 변형한 신문을 손으로 먹기 좋은 크기로 찢었습니다. 겉절이의 매콤한 감칠맛을 위해 당근과 양파를 잘게 잘라 넣고 고춧가루, 액젓, 식초, 매실 진액, 설탕, 다진 마늘, 참기름으로 양념을 만들어 무치고 나서 통깨를 뿌렸습니다. 소녀는 겉절이를 집어 맛을 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신문의 진실한 맛을 우려내려고 했는데 양념이 지나쳤나 봅니다. 그래도 양념 맛은 예술입니다. 예술적인 맛을 내는 신문들이 있습니다. 그런 신문들은 기사에 양념을 치듯이 매일 공들여 조작 재생산하니 예술적인 맛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소녀는 양념을 약하게 하려고 손질하지 않은 신문을 잘라서 겉절이에 더 넣었습니다. 

  신문이 제공하는 대중적 정보는 삶의 본질을 꿰뚫는 맛을 내는 향신료입니다. 그러나 이 맛을 아무나 느낄 수는 없습니다. 정보를 되짚어보고 분석하고 편집해야만 느낄 수 있는 깊은 맛입니다. 소녀는 겉절이를 그릇에 담고 밥상을 차렸습니다.

  “식사하세요.”

  노인은 먼저 진간장으로 이미지를 지운 신문 조각에 뜨끈뜨끈한 밥을 싸서 입에 넣었습니다. 틀니가 바삭한 신문을 짓이기는 소리가 났습니다, 노인은 눈을 감고 입을 오물거렸습니다. 소녀가 노인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맛이 어떠세요?”

  “몸에는 좋은가, 영양가가 있냐 말이야?

  “오늘 1면이네요. 꼭꼭 씹어 드세요.”

  “조금 질긴데 맛은 있네!”

  “내일은 묵은 신문이 들어간 갈치조림 해드릴게요.”

  입을 오물거리면서 소녀를 노려보는 노인의 눈빛이 변했습니다. 소녀는 노인의 혼탁하던 수정체가 맑게 빛나 눈을 마주칠 수 없었습니다. 

  소녀는 다용도실에 쌓인 지역신문 중에 밑 부분을 뽑아 왔습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지역 신문은 누렇게 갈변해 있었습니다. 소녀는 신문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습니다. 

  “제주의 구수한 맛이 날 것 같아요.”

  “신문은 버릴 게 없어.”

  “그러게요, 신문은 참 다양하게 쓰여요. 테러리스트가 인질의 몸값을 요구할 때 증거로 사용하기도 하잖아요.”

  “신문이 사라질까 봐 걱정이야.”

  “사라지기 전에 많이 드세요.”

  소녀는 갈변한 신문을 씻어 물기를 짠 다음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노인은 점심을 남김없이 해치웠습니다. 소녀가 식탁을 치우고 퇴근 준비를 하는데 노인이 봉투를 건넸습니다.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소녀는 출장 요리를 시작하면서 노인이 주체적인 맛을 알게 되길 바랐습니다. 노인이 신문 요리를 조금만 더 먹으면 입맛이 살아날지도 모릅니다. 소녀가 매일 신문 요리를 하는 것은 돈 때문만은 아닙니다. 노인에게 신문 요리를 해주면서 노인을 시험 삼아 마음을 움직이는 양념을 개발 중입니다. 소녀는 그 양념이 완성되면 신문 요리에 넣어 가판대를 통해 널리 배포할 것입니다.■



<화가 연미 인터뷰 함축>

“나는 어떤 사회 속에 살고 있고 나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고민하다 신문이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신문은 배치의 미학으로 감정적 영향을 주는 미술 작품이다. 종이 신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갈변하며 사건의 시간성을 표현하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종이 신문의 판매부수는 계속 떨어지지만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신문은 사회를 보는 기록이고 그날 찍어 내는 자체가 공표의 의미다. 신문의 첫 1면이 공유되며 이익, 영향행사, 권위를 형성한다. 신문을 소재로 작업하면서 어떤 기사를 봤을 때 거짓, 왜곡, 진실의 문제 보다는 어떤 이슈를 몰고 가는 방법 그리고 분위기를 띄우는 측면을 연구했다. 사람들은 신문을 보면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나에게 닥칠 영향을 가늠해 보는 것 같다. 인간의 삶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신문을 분석하고 내가 재발행하여 배포하는 작업을 했다. 신문의 기사를 연필로 안보이게 또는 희미하게 덧칠해서 논조의 패턴을 흐트러뜨린 신문을 가판대를 통해 거리 전시를 한 적이 있다.”


<화가 연미 소개>

종이신문을 통해 사회를 관찰하고, 관찰한 결과를 다시 신문에 반영하는 형식으로 신문을 재발행 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2005년부터 종이신문 뒤에 감춰져 있는 사건, 광고, 사진이미지 등의 수집 과 편집 방식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고, 2010년부터는 신문가판대를 제작하여 감상자를 직 접 찾아가는 로드쇼를 진행해오고 있다.2016년부터는 종이신문의 텍스트를 다른 시각으로 정보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화가 연미 대표작품>


작가의 이전글 키키의 체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