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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욱 Oct 10. 2020

창 너머 그곳에

화가 윤정선 인물스마트소설

<창 너머 그곳에-화가 윤정선 인물스마트소설>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창을 넘어온 햇살이 바닥에 사각형을 드리웠다. 공기 중의 먼지가 맴도는 햇살을 보자 탈출하고 싶었다. 지독히 불편한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기분 전환, 휴식으로의 탈출이었다. 목적지는 영국 세븐시스터스와 브라이튼으로 정했다. 유학시절 추억을 따라 시골 주택의 정원과 양떼를 구경하고 하얀 절벽 아래로 내려가 일광욕을 한 다음 배를 타고 작은 도시로 넘어갈 것이다. 그곳의 골목을 더듬으며 밀크티를 마시고 싶다. 탈출을 위해 며칠 전까지 붙들고 있던 골목길 풍경화를 포장하기로 했다. 절제와 단순화로 봄 햇살이 드리운 그림자를 표현했는데 그냥 두었다간 더 묘사하고픈 충동이 생길 것 같았다. 포장지를 테이블에 깔아 놓고 벽을 마주 보게 세워 두었던 그림을 돌렸다. 100호 캔버스 한쪽에 종이가 붙어있었다. 물감이 덜 말라 종이가 달라붙은 모양이었다. 온종일 그 부분을 복원할 생각에 맥이 빠지는 순간, 이럴 수가! 손바닥만 한 종이가 달라붙은 것이 아니라 그 부분이 하얗게 지워진 것이다. 마치 그 부분을 남기고 그림을 그린 것 같아서 증발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오래된 집의 깨진 타일 벽을 그릴 때였다. 줄눈을 묘사하던 중 흐르는 물감을 어디서 멈출 것인가 판단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사이 물감은 나무뿌리처럼 균열을 만들며 멋들어지게 화면을 갈랐는데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오늘 난데없이 손바닥만 한 화면이 증발하면서 화면이 흩트려졌다. 증발한 화면을 살펴보는데 그 부분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에 의존하여 골목길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찍어 놓았던 풍경사진을 찾으려고 서랍을 열었다. 잡동사니를 들치는데 낯선 향기가 났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나서 코를 킁킁거린 끝에 낯선 향기의 근원을 찾았다. 서랍 깊숙이 감춰두었던 오래된 그림 일기장에서 나는 향기였다. 일기장을 꺼내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진하게 덧칠한 연필 스케치가 펼쳐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와 손잡고 걸었던 저녁나절의 골목을 그린 그림이었다. 하늘엔 훤한 달이 떠 있다. 달이 나를 따라오는 것이 신기했던 시절 달을 표현하려고 하늘을 연필로 까맣게 덧칠했다. 새 연필을 깎아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열심히 칠했던 것 같다. 일기장에서 막 깎은 흑심의 향이 났다. 눈을 감고 향을 음미했다. 흑심의 향기는 나를 몇 년 전의 골목으로 데려갔다. 

  종로3가 지하철역 근처 뒷길로 들어선다. 오래된 한옥이 고층빌딩 사이에 잡풀처럼 돋아있다. 연필로 그린 풍경에서 시작된 기억은 색이 없는 모노톤이라 더 아득하게 다가온다. 이 골목의 시간은 따로 떨어져 정지한 것 같다. 투명한 공속에 갇혀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구경하는 기분이다. 한차례 비를 뿌렸던 먹구름사이로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보도블록에 머금은 빗물이 증발한다. 달팽이가 응달로 달려간다. 골목의 나무 몇 그루와 담벼락과 보도블록 사이에 낀 이끼가 싱그러운 향을 발산한다. 추억의 장소는 향기를 낸다. 추억은 향기를 머금었다가 조금씩 방생하며 은밀하게 속삭인다.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없는 골목의 향기를 내 것으로 하고 싶어 구도를 잡고 골목 풍경의 한 부분을 자른다. 

  추억의 향기를 통해 떠올린 골목 풍경의 한 부분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스케치를 했다. 감쪽같이 증발한 부분에 그려 넣으면 어울릴 것 같았다. 그 장소는 어떤 전환점이 된 곳임이 틀림없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추억의 장소를 탐색하면 왜 그림의 한 부분이 증발했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메라를 들고 종로구 익선동으로 달려갔다. 오후의 햇볕이 만든 사선의 그림자가 드리운 좁은 골목을 헤매며 추억의 장소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비슷한 장소인 것 같아 가까이 가서 보면 이내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골목 입구의 담벼락이 비슷하여 모퉁이를 돌아서면 벽을 뚫어 통유리를 끼운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골목 어디에도 예전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좁은 골목을 헤맨 끝에 축대 옆 계단에 앉아 하늘과 땅이 붉은 기운을 버리고 푸른 기운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감상했다. 시간이 지나자 무성한 나뭇잎들이 번들거리는 검은색으로 변했다. 언뜻 보이는 나뭇가지들이 굵어질 때 어디선가 싱그러운 향기가 났다. 향기를 따라 걸었다. 또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자 작은 꽃잎이 날렸다. 가로등 불빛 때문인지 땅에 떨어진 꽃잎은 연한 핑크빛이고 꽃이 만발한 나무는 솜사탕을 붙여 놓은 것 같은 나무는 선명한 핑크빛이다. 솜사탕 같은 나무 밑에는 등받이가 없는 벤치가 있었다. 이 골목이 연극무대의 배경 같다고 느끼는 순간 생각이 났다. 그와 여기에 앉아 영화 이야기를 했었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의 이야기는 천국으로 가기 전에 거쳐야 하는 림보가 배경이다. 세상을 떠난 영혼은 림보에 7일간 머물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을 골라야 한다. 림보에서는 그 추억을 짧은 영상으로 재현해 영혼을 위로해 주는 이야기다. 림보에서 재현한 영혼들의 소중한 추억 중에 벚꽃이 흩날리는 벤치가 등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벚꽃 대용으로 사용한 핑크빛 색종이를 보는 순간 색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내가 영화를 보고 나서 그동안 물감을 익숙하게 사용했지만 색 자체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깨달았다는 이야기를 한 다음부터 그는 분홍색 옷을 즐겨 입었다.

  종로구 익선동 골목 탐색에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그와의 추억만 더듬다 작업실로 돌아왔다. 손바닥만 한 화면이 증발한 골목길을 그린 풍경화 앞에 앉았다. 뻥 뚫린 하얀 사각의 구멍은 보는 각도에 따라 어떤 세계로 이동하는 입구 같았고, 내 인생을 가둔 틀 같았고, 밖으로 향해 열린 창문 같았다. 그는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는 디지털 노마드였다. 낯선 도시의 호텔에 도착할 때마다 창을 배경으로 영상 메시지를 보내곤 했었다. 나는 그가 모니터에 등장할 때마다 그의 소식보다는 호텔 창밖으로 펼쳐지는 도시의 풍경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애정이 식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첫 개인전을 준비하고 무사히 치르는 사이 그는 나에게서 증발했다. 개인전이 끝나고 그의 블로그를 탐색했다. 그가 마지막 소식을 전한 여행지 북경에서 찍은 사진을 확대했다. 그곳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갇혀있는 비밀스러운 장소였다. 자금성의 붉은 담장 앞에 탐스러운 목련꽃이 활짝 피어있고 그 옆에 그를 따라다니는 여자의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그 북경의 사진을 클릭하여 그곳으로 날아갔다.  

  광장을 향해 걸어가는데 밝은 회색의 잿가루가 날린다. 눈이 오듯 날리는 잿가루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빨간 담장이 길게 이어진다. 담장 끝에 빨간 문이 보인다. 빨간 문은 육중한 나무문이다. 빨간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선다. 황색기와 지붕을 한 건물이 끝없이 펼쳐진다. 건물에서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닮은 그가 고궁의 마당을 내려다보다 나를 발견하고 피한다. 그를 따르는 여자의 옷자락이 계단을 타고 사라진다. 나는 광장을 맴돌다 나가는 문을 겨우 찾는다. 붉은 칠이 떨어져 나간 벽에 작은 통로가 있다. 컴컴한 통로 끝에 은은한 불빛이 보인다. 통로를 빠져나오자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되풀이되는 빛의 명멸이 펼쳐지며 여행이 끝난다. 

  손바닥만 한 캔버스를 만들었다. 여행용 트렁크를 꺼내 그림 도구를 챙겼다. 이번엔 어둠에 묻혀 있는 골목의 향기를 담을 것이다. 채움과 비움의 적절한 간격으로 시간과 공간을 사유해 보기로 했다. 전시회 때 창이 생긴 그림과 창밖을 그린 그림 두 개를 따로 연출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짐을 다 싸고 트렁크를 닫았는데 가슴이 답답했다. 이건 아침에 생각했던 탈출이 아니었다. 트렁크를 열고 짐을 풀어헤쳤다. 백팩에 짐을 간단히 꾸리면서 과감하게 카메라와 노트북을 넣지 않았다. 기억에 새기고 의존하는 여행을 통해 제대로 탈출해 보기로 했다.■  


  

<화가 윤정선 인터뷰 함축>

“시간은 흐르지만 내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 같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의 시간은 흘러가는데 나는 투명한 공속에 갇혀있는 느낌이었다. 그때의 느낌 기억을 떠올리는 매개체를 그렸다. 매개체는 장소나 공간인 경우가 많고 당시 주변에 있었던 사물일수도 있다. 예를 들면 작품에 등장한 내 일기장은 나를 기록하는 것이 시대를 기록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억을 떠올리며 작품에 표현하는 시간성을 포착한다. 작품 화면에 프레임을 그린 것이 있다. 풍경을 담았던 것을 다시 보는 느낌을 주려고 한 것인데 그림에 과거 시제로 이야기 한 것이다. 그림의 일부분을 다시 소품으로 그린 작품도 시간성을 추구하는 작업이다. 기억에 남는 장면, 의미 있는 순간, 그 장면을 다른 각도에 서서 재해석 해본 것이다. 기억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지난 삶에 미련이 많은 모양이다.”


<화가 윤정선 소개>

몸이 허약했던 소녀는 밖에서 아이들과 뛰어놀기보다는 혼자서 그림책을 들여다보고 맘에 드는 장면을 따라 그리며 크레용을 들고 자신만의 세계 속을 여행하는 것을 즐겼다. 그 소녀는 자라서 어렸을 적 꿈꾸던 화가가 되었다.

  호기심 많은 그녀는 여행하는 것을 즐긴다. 여행 중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낯선 여행의 장소가 일상이 될 때까지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무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기억은 공간이기로 하고 시간이기로 하다. 자신의 체험에 기반하여 그곳의 주관적인 인상을 화면 안에 담아낸다. 

  좀처럼 화면에 인물을 담지 않던 그녀가 최근 자신의 뒷모습과 주변 인물의 흔적들을 소극적인 방법으로 그림 속에 등장시키기 시작한다. 이제는 한 걸음 물러나 기억과 기억을 여행하는 자신을 관찰하게 된 것 같다. 

  한국, 영국 그리고 중국에서 수학하였고 현재는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다. 11회의 개인전을 하였고 50여회의 단체 기획전에 참여하였다. 제24회 석남미술상을 수상하였다. 


<화가 윤정선 대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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