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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욱 Oct 10. 2020

나이키 영양밥

화가 유용선 인물스마트소설

<나이키 영양밥-화가 유용선 인물스마트소설>


  역겨움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나이키가 들어갔다고 밥맛이 이렇게 떨어질 수 있을까. 매스꺼움에 구토가 나올 뻔했다. 계속 씹어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서 겨우 넘겼다. 수저로 뽀얀 밥알을 헤집어 비닐 재질의 나이키 로고를 찾았다. 젓가락으로 더듬이처럼 삐져나온 로고 끝을 잡아당기자 승리의 여신 ‘니케’의 상징이 구부러져 있었다. 밥과 나이키 로고를 뭉쳐 한입에 들어갈 크기로 다졌다. 입을 벌려 밥덩이를 털어 넣었다. 생닭발을 씹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개 껌 같은 루이뷔통 가방 손잡이보단 먹을 만했다. 껌처럼 변한 나이키 로고를 혀로 굴리다가 삼키는 척 목울대를 움직였다. 입꼬리를 올린 다음 입을 닦는 척하면서 나이키 로고를 손에 뱉어냈다. 

  나이키 에어맥스 디자인 공모 대상 ‘신광’은 서울의 네온사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24시간 네온이 켜진 서울의 밤을 표현하기 위해 갑피는 블랙이고 물결 같은 라인 장식은 빨강, 파랑의 네온 빛깔이다. 새벽부터 다섯 시간 동안 줄을 서서 한정판 ‘신광’을 샀다. SNS에 자랑했더니 반응이 장난 아니었다. 산 가격의 다섯 배까지 올랐으나 팔지 않고 먹방의 희생양으로 삼기로 했다. ‘신광’의 나이키 로고를 뜯어내고 갑피에 구멍을 내고 잘라냈다. 잘라낸 갑피를 잘게 썰어 밥에 넣었다. 

  다시 한 숟갈 입에 넣고 천천히 씹다 도저히 넘길 수 없어 카메라를 껐다. 얌전한 포르노는 성욕을 자극하지 못하듯이 식욕을 자극하기 위해 과장된 몸짓으로 먹는 행위에 주력했다. 그런데 조회 수가 올라가지 않았다. 식욕을 자극하는 음식 포르노는 실패였다. 연구 끝에 시도해 본 것은 먹는 소리였다. 마이크를 설치하고 수저질 소리와 씹는 소리를 담아 보았으나 조회 수는 올라가지 않았다. 예쁘고 세련된 음식에서 벗어나 나만의 식탁을 차린다는 콘셉트로 내 작품에 등장한 유명 브랜드 상품이 들어간 밥을 지었다. 나이키 영양밥은 표정 관리가 안 된 것 같았다. 식탁을 정리하고 돌솥에 나이키 영양밥을 안치고 다시 촬영 준비를 했다.  

  새로 차린 밥상에 폐차장에서 건진 롤스로이스 범퍼 밥을 올렸다. 범퍼를 분쇄하여 고운체로 걸러내는 과정은 편집할 수 있게 미리 찍어 두었다. 롤스로이스 범퍼 가루를 프라이팬에 살짝 볶았더니 붉은 기가 살짝 돌았다. 롤스로이스 범퍼 가루를 밥에 뿌렸다. 밥에 달라붙는 가루는 콩고물을 같기도 하고 색깔로 봐서는 커피 가루에 가까웠다. 먼저 담백한 맛을 즐기기 위해 아무 간을 하지 않고 롤스로이스 범퍼 밥을 한 숟갈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철저히 혼자였던 샌프란시스코 유학 시절에 러닝 차림으로 백인 기사가 딸린 롤스로이스를 타는 랩 가수를 만났습니다. 자신의 재능으로 백인의 주머니를 털어 백인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의 랩을 따라 하면서부터 마리화나를 끊고 낮에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건물 벽에 그라피티를 했습니다.”    

  잠시 카메라를 작업실 벽으로 돌려 내 작품들을 하나하나 클로즈업하면서 설명했다. 

  “내 작품에는 항상 포장하고 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먹는 행위를 통해 그들을 풍자합니다. 과시하는 현대인의 표현을 위해 빛의 삼원색 빨강, 초록, 파랑으로 만들어지는 색을 사용하고 검정 테두리 선으로 마무리합니다.” 

  작품 소개를 끝내고 카메라를 밥상으로 돌려 녹화를 계속했다. 맛있는 표정, 신기해하는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입을 우물거리다 겨우 삼켰다. 

  나이키와 롤스로이드 촬영분을 확인했다. 표정이 굳어있었다. 밥그릇이 작아 보였다. 밥맛 나는 세상을 꿈꾸는 자의 밥그릇은 아니었다. 밥알에 윤기도 부족했다. 밥그릇을 큰 것으로 바꾸고 윤기 나는 밥을 위해 햅쌀을 꺼내 씻었다. 밥에 넣을 나이키 운동화 갑피 조각도 큰 것으로 골랐다. 밥을 안치고 카메라를 점검하며 ‘밥맛 나는 밥상‘의 성공을 기원했다. 거울을 보며 맛있어 까무러칠 것 같은 표정을 연습해 보고 나이키 영양밥부터 다시 녹화했다. 

  “이 밥그릇은 조선시대 성인 남성의 밥그릇입니다. 당시에는 밥맛이 무척 좋았다고 합니다. 오늘은 밥맛을 잃은 여러분을 위해 나이키 영양밥을 먹어 보겠습니다.”   

  나이키 한정판 운동화 갑피로 만든 조림 반찬통을 카메라 가까이 가져가서 보여줬다. 채 썰어 간장에 볶은 갑피가 서로 엉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손가락으로 몇 점을 집어 먹는데 밥솥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밥솥을 식탁으로 가져왔다 뜸을 들이는 동안 먹방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순간만큼이라도 힐링 되길 바랐다. 

  밥솥 뚜껑을 열었다. 뜨거운 김이 퍼졌다. 밥주걱으로 밥을 위아래로 잘 섞은 다음 밥그릇에 가득 폈다. 

  “유행한다고 건강에 좋다고 해서 무작정 먹지 마십시오, 자신만의 신념으로 밥상을 차리십시오.”

  윤기가 나는 밥알들이 뽀옥뽀옥 갓 낳은 알처럼 통통했다. 젓가락으로 나이키 로고를 골라낸 다음 밥 한 숟갈을 떠서 그 위에 로고를 얹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한 숟갈을 털어 넣고 입을 다물고 수저를 천천히 뽑아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입을 천천히 오물거렸다. 

  “감미로움이 나를 사로잡습니다. 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을까요. 혀에서 피어난 기쁨이 온몸으로 퍼지는 중입니다. 모든 걱정이 한순간 사소하게 느껴집니다.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밥이 녹아 넘어갔습니다.” 

  수저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들어냈다. 뽀얀 밥알 사이에 박혀있던 나이키 한정판 운동화 갑피가 드러났다. 오그라든 갑피를 밥과 한입에 들어갈 크기로 뭉쳤다. 입을 벌려 밥덩이를 털어 넣었다. 나이키 한정판 운동화 갑피가 씹히는 순간 설익은 내장이 터진 느낌이었다. 눈을 질근 감고 혀를 굴려 꿀꺽 삼키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이키 영양밥 녹화 분을 올리고 나서 조회 수를 확인해 보니 저번 루이뷔통 가방 손잡이 밥 때보다 더 떨어졌다. 도대체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갑피를 잘라내서 샌들처럼 변한 나이키 한정판 운동화를 신고 저녁을 먹으러나갔다. 

  유명 레스토랑에 하루짜리 팝업스토어를 열렸다. 사람들이 미국에서 건너온 한정판 햄버거를 먹기 위해 길게 줄 서 있었다. 나도 줄을 섰다. 수제 햄버거 250개 한정이었는데 다행히 햄버거를 사 먹을 수 있는 팔찌를 받아보니 아슬아슬하게 250번이었다. 너무 좋아서 팔찌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데 사람들이 샌들로 변한 운동화를 보고 수군거렸다. 갑피가 다 찢겨나갔지만 나이키 한정판 디자인을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이번엔 갑피가 아니라 신발창으로 밥을 지어봐야겠다.■    


<화가 유용선 인터뷰 함축>

“어렸을 때부터 먹는다는 행위에 집착했어요. 먹는다는 것. 다가가기 쉽고 가장 손쉽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에요. 내가 부릴 수 있는 사치는 음식이죠. 가격대비 만만하니까요. 또 바로 채워지잖아요. 어느 순간 내가 많이 먹고 있더라고요. 외로울 때 참기 힘들 때. 사람만나는 것이 싫어질 때 더욱 그래요. 내 작품은 대중적인 코드, 풍자의 개념이 들어간 나의 이야기에요. 작품의 테마는 온갖 재료로 요리해서 먹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죠. 햄버거가 주 소재로 등장하는데 미국 유학시절 흑인들의 돈을 의미하는 은어 빵, 치즈, 베이컨 이런 요소가 다 들어 있는 것이 햄버거가 와 닿았어요. 그런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 상쾌한 느낌의 RGB컬러를 사용해요. 빛에 의한 색, 인상파의 기운을 가져오는 것이죠.”


<화가 유용선 소개>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화가는 학창시절 힙합과 패션에 빠져 자신이 갖고 싶은 자동차, 시계, 신발 등을 그리며 독자적인 화풍을 키워갔다.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는 화가는 가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요리들을 레서피북에 그리다 작업방향을 찾게 된다. 올해 32살이 된 그는 여전히 그것들을 좋아하며 갖고 싶은 것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요리하여 화폭에 옮기며 작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화가 유용선 대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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