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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욱 Oct 10. 2020

비둘기의 맛

화가 양경렬 인물스마트소설

<비둘기의 맛-화가 양경렬 인물스마트소설>


  양 화백은 비둘기 백숙을 위해 드럼통을 샀다. 그라인더로 드럼통 절반을 잘라낼 때 튀는 불똥이 밤하늘의 폭죽 같았다. 반으로 잘린 드럼통은 집을 지을 때 사용하고 남은 나무를 때기위한 아궁이였다. 비둘기 대여섯 마리는 너끈히 들어갈 만한 큰솥도 샀다. 비둘기 백숙은 여러 사람이 모여 앉아 친근하게 먹을 수 있고 인간관계가 그대로 반영되는 음식이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겐 다리를 미운 사람에겐 비둘기 계륵을 건네곤 했다. 

  양 화백이 양평 서종면에 땅을 사고 집을 짓는데 들어간 돈은 아내가 받은 대출과 그의 작품 중에 군중을 상징하는 비둘기를 등장시킨 ‘광장’시리즈가 한몫했다. 사람들이 평화의 상징에서 유해동물로 변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않자 먹이를 찾아다니느라 무리 짓지 못하는 모습을 현대인으로 은유한 작품들이었다.

  양평군 서종면 사람들은 남편들보다 아내들이 활발하게 경제 활동을 하다 보니 학부모 모임은 아버지들이 주축이었다. 비둘기백숙은 그가 학부형 모임의 천렵을 위해 준비한 요리였다. 그동안 이사하느라 붓을 못 잡은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지역사회에 빨리 뿌리를 내리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무줄 새총을 들고 산비둘기를 잡으러 뒷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물소리가 나는 곳으로 내려가자 작은 폭포가 나타났다. 그곳에서 학부형모임 회장을 만났다. 회장은 아들과 바위에 앉아 짜장면을 시켜서 먹고 있었다. 그는 주린 배를 안고 내려오면서 깊은 산속까지 짜장면을 시켜먹는 원주민의 힘을 느꼈다. 

  양 화백은 아이들을 초등학교 통학버스에 태워 보내고 이 층 테라스에서 전원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집 앞에 흐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은 비닐하우스와 밭이 펼쳐진 농지고 이쪽은 주택이 드문드문 들어선 산지다. 그는 강 건너편 유기농 채소를 기르는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면 등줄기에서 땀이 났다. 비닐하우스를 얻어 첫 개인전을 준비하던 해 삼십 년 만의 폭염이 왔다. 그는 세 번째 개인전까지 비닐하우스에서 비둘기를 잡아서 그린 다음 맛있게 먹었다. 비둘기를 열심히 그린 결과 강을 건너와 매일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작업실로 내려가서 그리다 만 캔버스를 꺼냈다. 비둘기 한 마리가 비닐하우스 위를 날아 강을 건너가는 풍경화였다. 캔버스를 180도 돌려 보았다. 그러자 비닐하우스가 멀리 떨어진 배경이 되었다. 그는 풍경화를 뜯어보다가 비닐하우스가 반사되어 전원주택으로 바뀐 것처럼 수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양 화백은 강가에 천막을 치고 간이 테이블을 옮겨놓고 장을 보러 갔다. 비둘기백숙을 위해 도시의 비둘기를 잡는 것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캔버스를 짜는 것과 같았다. 좋은 작품의 요소는 낯선 소재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으로 고무줄 새총을 들고 뒷산의 산비둘기를 잡으려 했지만 날쌘 산비둘기를 잡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서울의 변두리를 돌아다니며 살찐 비둘기를 잡아 왔다. 채소와 버섯을 사는 것은 그림의 주제에 맞는 소재를 정하는 것이다. 시장에 그가 좋아하는 표고버섯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대신 노란 빛이 나는 서종면 농가의 목이버섯을 샀다. 먹어보진 않았지만 학부형들이 이곳에서만 나는 목이버섯이 들어간 비둘기 백숙을 먹으면서 이사 온 화가도 이곳 주민이라는 동질감을 느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시장에서 돌아와 먼저 장작불을 피워 손질한 비둘기를 한 시간가량 삶았다. 한여름에 비닐하우스를 얻어 그림을 그릴 때보다 땀이 더 흘러내렸다. 장작불을 조절하며 비둘기를 삶는 것은 캔버스에 젯소를 바르고 시원스러운 터치로 초벌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솥뚜껑을 열고 뜨거운 김을 피해 굵은 소금을 뿌리는데 얼굴의 구슬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는데 여섯 명의 사내들이 천막으로 몰려들었다. 원래 다섯 명이었는데 화가의 집을 구경하고 싶다는 학부형 모임회장 친구가 따라온 것이다. 그가 사내들에게 애피타이저로 두부김치를 내고 식전주로 막걸리를 한 잔씩 돌리자 여섯 사내도 그에게 막걸리를 따라줬다. 그는 빈속에 막걸리 여섯 잔을 받아 마시고 나니 속이 울렁거렸다. 트림을 해대면서 초벌 그림위에 잔잔한 터치로 묘사하고 화면의 강약을 조절하듯이 각종 버섯과 엄나무 그리고 배추를 넣고 한 시간가량 더 끓였다. 특히 계절 버섯과 배추는 국물의 맛을 깊고 깔끔하게 내는 재료여서 넣는 양을 적당하게 조절했다. 그는 비둘기 백숙이 완성되자 솥뚜껑을 열고 흙으로 빚은 커다란 그릇 여섯 개에 비둘기 백숙을 덜었다. 양을 잘 조절했는데도 여섯 그릇이 밖에 나오지 않았고 국물은 조금 남아있었다. 사내들은 먼저 국물 맛을 보고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비둘기 고기를 뜯느라 정신없었다. 사내들은 게걸스럽게 먹다가 약간 붉은 빛이 도는 살과 연약한 다리를 보고 의아에 했다. 그는 장모님이 시골집에서 가둬놓고 지렁이를 먹여 기른 영계라고 얼버무렸다. 딸만 둘인 사내가 그의 몫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살점을 덜어주려고 하자 그는 요즘 손님 대접하느라 자주 먹었다며 사양했다. 그는 남은 국물에 라면을 끓이면 일품이라고 하면서 집에 가서 사리면을 찾았는데 다 먹고 없었다. 할 수 없이 신라면 여섯 개와 대접 일곱 개를 챙겼다. 다시 천막으로 가는 데 사내들의 수다가 들려 나무 뒤에 숨어 엿들었다. 사내들의 눈엔 그가 번뜻한 이층집을 가진 이방인이고 화가라는 직업은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가 라면을 들고 나타나자 사내들의 대화가 끊겼다.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와 비둘기 살을 발라 먹는 소리만 들렸다. 사내들은 비둘기 살을 모두 발라 먹고 나서 남은 버섯을 소금에 찍어 먹고 건배했다. 사내들이 아내를 잘 만나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되는 한량을 위해 다시 건배하자 그는 아내를 잘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몇 년 전부터 비둘기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아 그림을 많이 팔렸다고 했다.    

  해가 지면서 서늘한 바람이 불었지만 그는 땀이 계속 흘러내렸다. 솥에 물을 조금 붓고 아궁이에 장작을 더 넣었다. 비둘기 백숙 국물이 끓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등지고 서서 신라면을 뜯어 면만 솥에 넣었다. 소주를 거덜 낸 사내들은 입맛을 다시며 닭백숙 국물로 끓인 라면을 기다렸다. 그는 대접 일곱 개에 라면을 골고루 분배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사내들은 라면 대접이 테이블에 놓이자마자 가져가서 먹기 시작했다. 

  사내들은 모두 잔을 채우고 건배하면서 그림 그리는 사람이 요리도 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딸만 둘인 사내는 그가 닭백숙 전문점을 차린다면 마을의 경기가 살아 날 거라고 하면서 그의 레서피를 열심히 받아 적었다. 사내들이 따라준 미지근해진 소주가 그의 텅 빈 속을 훑어 내렸다. 그는 국자로 솥을 휘저었지만 버섯 하나 남지 있지 않았다. 배가 든든해진 사내들은 맥주와 수박을 먹고 일어났다. 모두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와 악수했다. 그는 드디어 지역사회에 편입된 것 같아 기뻤다. 

  사내들이 가고 상을 치우면서 상에 떨어진 노란 목이버섯을 주워 먹었다. 처음 맛보는 노란 빛 목이버섯의 맛은 밋밋했다. 행주로 비둘기 뼈를 대접에 쓸어 담는데 신라면 건더기 수프가 보였다. 갑자기 속이 뒤틀렸다. 그는 비닐하우스를 빌려 그림을 그리던 시절 끓여 먹었던 비둘기라면 맛이 떠올랐다. 허기가 졌을 때 맞은편 비닐하우스에서 훔친 표고버섯과 비둘기 살을 넣어 끓인 라면이었다. 그는 몇 년 전 비들기가 들어간 라면이 왜 맛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는 집에 가서 남은 라면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그냥 냉장고에 넣어둔 소주 한 병만 들고 왔다. 아직 식지 않은 솥에 물을 조금 붓고 장작불을 다시 피웠다. 비둘기 육수가 금방 끓었다. 라면 수프 한 개와 건더기 수프를 전부 솥에 넣었다. 얼굴의 구슬땀이 뚝뚝 떨어졌다. 찬 소주를 한잔 마시고 국자로 팔팔 끓는 국물을 떠서 후후 불어가며 마셨다. 그는 온몸이 훈훈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에게 비둘기가 들어간 라면은 허기가 지면 간절해지는 소울 푸드였다. 

  강 건너 달빛에 반사된 비닐하우스들이 정겨워 보였다. 그는 라면을 국물을 남김없이 마시고 나서 맥주잔에 소주를 채워 한 번에 들이켰다. 강바람이 한나절의 열기를 몰아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씨가 남아 있는 장작으로 불을 붙였다.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 길게 내뿜었다. 바람을 타고 허연 담배 연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는 돗자리에 누워 담배를 피웠다. 이사 와서 별을 자세히 본 것은 처음이었다. 밤하늘엔 그를 위한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화가 양경렬 인터뷰 함축>

“내가 생각하는 비둘기는 대중과 개인 그리고 그룹으로 비유됩니다. 평화를 상징하던 것이 어느새 닭둘기가 되고 더 나아가 유해동물로 변해 버린 거지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바라보는 정치권의 변천사와 정치인이 바라보는 대중의 변화가 이상할 정도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닮아 있습니다. 평화의 상징, 정보의 전달이었던 비둘기는 이제 도시 곳곳에서 무리가 아닌 한 두 마리 씩 개인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작품에 비둘기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화가 양경렬 소개>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를 졸업.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독일 함부르크 조형 미술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지금까지 10번의 개인전과 2016년 광주신세계 미술제 우수상. 2016년 양주시립 장욱진 미술관 뉴 드로잉 프로젝트 입선. 2015년 서울예술재단 포트폴리오 박람회 우수상을 수상했다. 최근 작품에서는 인간의 이중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선택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품에 반사적 선택에 대한 고민이 강한 이미지로 표출되고 있다. 작품에서 나타나는 반사는 모두가 다르게 생각하는 시각의 반사이다. 반사적 선택은 살면서 진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반문이고 쇼펜하우어가 말한 자신의 자유의지를 표출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화가 양경렬 대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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