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늘어나면서 여기저기 바삐 현장체크를 하러 다니며, 상담과 실측, 그리고 설계까지 하느라 분초 단위로 쪼개며 산다.
잠은 멀어졌고, 홍삼제품은 눈에 보이는 대로 먹으며 체력을 보충한다. 어느 날 아이가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다시 왔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모습이 잊히지 않아 운전하는 길에 가슴을 치며 울음을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죄책감은 없다. 그보다 아이의 영유아기에내 최선을 다해 키워냈다는 자부심이 더 크다.그러는 한편으로는 지금은 사업 초기니까 조금만 더 참아보자, 몇 달은 세팅하느라 바쁠 테고, 점차 안정기에 접어들면 이 미치도록 바쁜 것도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무실 운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정신없이 바쁜 날들이 몰아쳤고, 휴일이 가장 반가운 날이 되었다. 추석 연휴는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려온 휴식이 될 거라 예상하였지만 연휴 하루 빼고는 공정은 계속 이어졌다. 그 바람에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아이를 태우고 함께 돌아다녀야 했다. 외할머니에게도 휴식은 필요했다.
이동 중에 아이가 잠들면 유모차에 옮겨 태우고 현장마다 들러점검(감리)을 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육아만 하던 그때와 합쳐져 일을 하는 더 극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이가 옆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말이다.
"엄마랑 같이 있어서 너무 좋아" 하는 녀석을 태우고 여러 현장을 들른 후에 그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레고 장난감도 사주고, 치킨을 사서 맛있게 먹을 생각으로 신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아이가 묻는다.
"엄마!"
"응?"
"나중에 내가 어떤 여자랑 결혼하고 아기를 낳으면 그때 엄마가 우리 아기를 돌봐 줄 거야?"
엥... 벌써부터 이 녀석이 나의 노후계획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한황혼육아 여부를 묻는다.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아 내 새끼 하나 키우는 것도 정신적+육체적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힘들게 버텨왔거늘 나보고 손주를 키워달라고?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육아다. 핏덩이든 젖먹이든 더 이상 내 삶에서 새로운 생명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내내 간절했다. 아이가 온갖 잔병치레로 아팠기에 더 그러했겠지만 입원 살이 간병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살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육아를 탈출하려 노력했다.
다행히도 시간이 흘러 극한 영유아기를 보내고 난 후에야, 병원을 가는 횟수가 한 달에 한 번 꼴로 줄어들고 나서야 이제 좀 살만하다 싶은데 뭣이라고? 너의 아이를 키워달라고? 내 손주를 품에 안아볼 생각은 단 0.000001% 따위조차 하지 않아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짐작도 할 수 없겠지만 어쨌거나 난 분명히 농(Non)이다!
어서 육아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아이가 그의 사춘기를 마음껏 즐기는(!) 동안 나는 나에게 집중하며 온전한 시간을 쓰고 싶은 마음뿐인데 뭣이라 육아를 또 하라고? 순식간에 우주의 모든 기를 모은 방어기제가 발동했다. 그러나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나는 할머니가 돌봐주시니까 나중에 내가 결혼하면 엄마가 할머니가 되고, 그럼 엄마가 내 아기를 돌봐주어야지"
아이는 외할머니의 전적인 돌봄으로 자라고 있다. 아이 스스로 "엄마는 바쁘니까 할머니가 해 줘"를 말하는 일상을 살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말이다. 현실이 이렇게 슬픈 것이라니...
내 여태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너를 키워냈건만... 네가 기억하는 것은 할머니가 너를 돌봐주었다는 현실뿐이구나...
"네가 결혼하고 아기를 낳으면 결혼한 너의 아내와 직접 키워야지. 아빠도 시하가 아기 때는 그랬잖아."
라고 볼멘소리로 답하자 아이는 지지 않고 말한다.
"그때 우리는 일을 하느라 바쁠 테니까 엄마가 할머니가 되면 우리 아기를 돌봐주어야지"
말문이 탁 막힌다는 표현을 어디에서 들어봤더라. 말문은 막혔는데 너무 웃겨서 큭큭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쥐방울만 한 녀석이 결혼한다는 것도, 아기를 낳는다는 것도, 맞벌이로 일을 하느라 바쁠 거라 생각하는 것도 귀엽고 (벌써 노동의 신성함을 알고 있다니!), 그럼 그들의 아기는 누가 돌봐줄 것인가를고민했다는 사실과 그에 대해 묻는 것도 너무 귀엽다.
하지만 그 어떤 초귀여운 질문을 받는다 해도 나는 농( Non)이다. 이기적인 어미는 아이를 바라보며 최선의 방법을 말해줬다.
"너희들 아기는 아기의 외할머니에게 돌봐달라고 하면 되잖아"
육아를 하며 깨달은 것은 엄마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것이었다. 아이에게는 이렇게도 많은 엄마의 손길이 매 순간 필요한데, 그리고 자라고 나서도 이렇게나 많은 엄마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데 친정엄마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말이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
내가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그 일 년 동안 육아는 대부분 친정엄마의 몫이었다. 손주를 온갖 사랑과 정성으로 돌봐주시면서도 힘든 내색 없이 오로지 자식의 선택과 결정을 묵묵히 지지하고 응원해 주셨던 엄마!
육아로 너무 힘들어하는 나를 볼 때마다 더 가슴 아파하셨던 우리 엄마! 잘 먹이지를 못한 18개월 아이를 데리고 한국 친정에 들어왔을 때 그런 아이를 '방아깨비' 같았지만 차마 말로 할 수없었다 하시며 아이 살 찌우기에 열과 성을 다하셨던 엄마!
매일같이 아픈 아이를 안고 2층 계단을 힘들게 올라가는 내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며 힘들어하는 나보다 더 가슴을 치셨던 우리 엄마다.
"그러게 일하면서 혼자 편하게 살지 뭣하러 이 고생을 해"라고 말씀하시며 엄마는 나를 질책하기도 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예쁜 집에 앙증맞은 미니미만 하나 더 추가되어 아장아장 걸어 다닐 것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이런 육아는 예상에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자라면서 많은 것들이 좋아졌고, 편해졌지만, 여전히 아이는 엄마 또는 할머니의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아니 그건 딸인 내가 여전히 친정엄마를 필요로 하기 때문인 이유가 더 먼저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모계사회가 태초에 인간이 생겨난 이후로 유지되었던 자연의 순리라는 것을. 어쩌면 아들 하나 둔 이기적인 엄마의 핑계일지도 또는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사회상의 합리적인 현상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오늘도 아이를 돌봐주시다 잠에서 깨어 내려가신 엄마는 그의 딸이 하루 종일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역정을 내셨다. 그런 엄마의 호통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로와 안정감을 느끼며 잠을 청하노라니 이 얼마나 아늑한 친정살이던가!
나의 사랑하는 친정엄마께 무한감사를 드리며, 언제고 이 글을 읽을 나의 아들에게 엄숙히 전하노라니 육아는 외할머니의 손길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미래의 장모님께 잘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