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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Sep 04. 2020

생후 8개월 촉감놀이 망한 이유

삶은 계란은 안된다고 어디에서도 말해주지 않았다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엄마가 되고 더구나 해외에서 감히 육아를 하면서 매일같이 하는 일은 가장 규모가 큰 국내 카페에서 정보를 찾는 일이었다. 그육아 대백과사전과도 같았고, 급한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육아가이드였다.


아이 생후 일주일 동안 초보 엄마가 는 여러 기이한 경험을 한 뒤로 매일같이 [생후 00일]을 키워드로 넣고 검색을 하여 그와 관련된 게시글을 전부 읽는 것은 육아도서 수백 권 이상으로 가치가 있었다. 해당 날짜에 검색된 수많은 육아맘들의 고민과 댓글을 읽으며 육아지식을 습득하고 하루하루 정보를 바탕으로 아기에게 적용하고 관찰해  나갔다.


그러던 즈음 [촉감놀이]라는 새로운 육아방법을 알게 되었고, '나도 우리 아이에게 한 번 해봐야겠다'라는 용기를 얻었다. 주말 어느 날 남편과 상의하여 집에 있는 재료로 간단하게 실천해 보고자 계란을 몇 개 삶았다. 그러는 동안 아기를 유아의자 부스터에 앉히고 벨트를 단단히 매어 안전사고를 예방했다. 아기 옷이 더러워지지 않게 최대한 팔을 걷어 올리고, 잔뜩 기대를 하게 며 삶아진 계란이 식기를 기다렸다.


"쨘~ 시하야 봐봐. 이건 삶은 계란이야. 꼬꼬닭이 낳은 알인데 우리가 먹을 수도 있어. 노란색과 하얀색이 보이지? 한 번 만져볼래?"


 초보육아는 무지한 부모와 오로지 현명한 아이만 있을 뿐!


아기는 신이 나서 두 팔을 휘두르며 따끈한 계란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남편과 나는 소파에 누워 잠시 휴식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아기가 즐거워 내지르는  꺅꺅~ 돌고래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지는 거실에서 평화로운 그 찰나의 여유가 꽤나 달콤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잊을 수 없다. 벽과 식탁과 의자와 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크고 작은 계란 부스러기들을 보는 순간 남편과 나는 매우 심란해졌다. 옷은 물론이고 아이는 머리끝까지 계란 부스러기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저렇게 신이 났는데 조금 더 놀게 하자...라고 합리화를 하며 치우는 일을 미뤘다. 그러다 도저히 저 꼴(!)을 두고 볼 수 없어 부랴부랴 내가 아기를 씻기려 욕실로 데려가고, 남편이 뒷정리를 하기로 했다.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노는 아기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 거실로 향하던 나는 이상한 냄새를 감지한다.


"이게 무슨 냄새야?"

"물티슈로 닦았는데 냄새가 더 심해지네"


그것은 바로 계란 비린내! 아이가 놀던 식탁 주위로, 타일 바닥으로 다가갈수록 더더더 강해지는 계란 비린내를 맡는 순간 구토할 것만 았다. 그건 물티슈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청소 세제를 동원해 박박 닦아내고 환기를 한참이나 한 후에야 비로소 편해졌다. 거의 한 시간을 촉감놀이 뒷처리로 보낸 셈이었다. 10분 쾌락을 위해 한시간여 극한 노동을 한 후에야 왜 어쩌다 계란으로 촉감놀이를 시도했던가 그 무지를 깊이 통탄했다. 그렇게 마무리가 된 전쟁 같은 육아현장!


삶은계란 사건 이후 아이의 촉감놀이는 치우기 쉬운 걸로 바뀌었다. 테라스 화분에 고이 고이 길러 맞이한 쌈채소 첫 수확! 이 또한 아이에겐 오감만족이었으리라!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 아기들이라면 한 번쯤은 엄마를 이와 같은 대환장파티로 초대할 것이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볶음밥을 먹이려다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사건현장!
열심히 만들어 준 볶음밥이 순식간에 바닥에 널부러지는걸 보는 일은 갈등의 시작이고, 자책과 후회로 귀결된다.


촉감놀이라는 이름의 아기 주도 이유식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바나나, 당근 등 보다 쉬운 재료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 초보육아동지들에게 권고한다. 절대로 절대로 삶은 계란은 촉감놀이 재료로 사용하지 말 것일 지어니! 나같이 육아에 무지한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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