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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Feb 12. 2021

4세 아들의 첫 연애편지

글씨를 몰라도 마음을 주고받는 법을 터득하는 아이들


엄마가 일하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할 거야!



아직 만 4세!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했다. 게다가 하루하루 일이 늘어날 때마다 지 몸과 마음도 그 미안함에 한몫을 했던 터라 아침에 아이의 등원을 준비하며 물었다.


"시하야 엄마 일 그만할까"


"아니, 엄마 일해"


"엄마가 일하면 시하와 함께 있어주지도 못하고 매일 늦게 올 텐데 그래도 괜찮아?"


"응, 괜찮아"


"그냥 엄마 일 그만하고 시하한테만 집중하면서  있을까?


"아니 엄마가 일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지!"


"으응?"


"엄마가 일하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할 거야!"


아이다운 솔직하고 독창적인 표현에 웃음이 쿡쿡 터졌다. 그렇게 한 번 웃다 보니 피로가 싹 씻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행복했다. 이렇듯 엄마를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아이가 내심 대견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다.


녀석은 분명 아직 어린데 이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 투정이랄 것도 없이 늘 의젓했다. 옷자락을 잡고 매달려 징징거려 본 적이 없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 엄청난 에너지로 공들인 '태교의 힘'이라 자부하기도 했다.  편 생각한다. 아이는 분명 그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노력하고 있음이 틀림없는 거다.라고. 




지난주 일요일, 모처럼 함께 느긋한 주말을 보내며 집 옆에 있는 호젓한 목장길을 산책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리, 상쾌한 공기, 바람소리, 정신이 맑아지고 밝은 에너지가 채워졌다. 그런데 30여분 걸리는 목장 정상까지 올랐다가 비탈을 내려가려니 네 살 아이 힘에 부쳤나 보다. 걸어가기 싫다며 안아달란다.


육아를 시작하면서 나를 진짜로 힘들게 했던 것 중에 하나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잠이 부족해도, 끊임없는 정신적 압박도 그래그래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첫돌 무렵부터 엄마만 찾는 아픈 아기를 두 팔에 안고 버텨내야 하는 건 어느 순간 '진심으로' 한계가 왔다.


손에 무거운 걸 들고 다니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던 내가 꼬물거리는 아이를 볼 때마다 모성애의 괴력으로 번쩍번쩍 들어 올렸다. 경추부터 척추를 둘러싼 모든 절 기관이 뒤틀졌다는 것을 막연히 짐작했다. 아이가 포동포동해질수록 내 몸은 하루가 다르게 천천히 망가져 갔다.




"이 녀석이~ 기 위해 나온 산책인데 내려가는 길이 힘들다고 업어 달라면 어떻게 해. 조그만 걸어가 보자"


라고 말했지만 설득되지 않는다. 아이는 완강히 버티고 섰다. 어쨌거나 이제 무게가 20kg에 육박하는 아이를 안는 것은 더 이상 무리다. 절반은 이기적인 투털 거림으로 또 절반은 무한한 모성애로 말하며 아이에게 등을 내어준다.


"아고~ 우리 시하는 언제 크나. 어서 빨리 자라야 하는데"


 등에 밀착된 아이의 무게를 느끼며 어부바를 하고 일어서려는데, 내 목을 자신의 두 팔로 꼭 감싸 안은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난 빨리 크기 싫어"


"왜?" 


아이 에 물음표가 커졌다.


"내가 빨리 크면 엄마는 죽잖아"


아.......

그 순간 두 눈에서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가 싶더니 도무지 멈추는 법을 모르겠더라.


"아니야. 엄마는 시하가 빨리 자라도 그 옆에 계속 있을 거야"


라고 애써 말했지만 터진 눈물은 비탈길을 내려오는  오솔길을 적셨다. 내 몸의 진이 전달되어서였을까. '엄마 울어?'라고 등에 얼굴을 기댄 아이는 재차 물었지만 '아니 엄마는 너무 행복해서 웃고 있어'라고 애써 답했.




"아이다운 표현이다"라고 한 지인분은 말씀하셨다. 그렇듯 목장길 산책에서 느낀 감동이 다 가시기도 전이었다. 이튿날 아이 유치원 가방에서 노란색 쪽지를 발견했다. 깃꼬깃한 종이를 펼치며 옆에 있는 아이에게 물었다.


"시하야 이게 뭐야?"


"응, 연애편지야"


"연애편지?"


"응, 윤이가 나한테 줬어"


그 순간 아들을 둔 어미로서 느낀 감정에 대해 후술 하자면.......

만4세 아이가 받은 첫 연애편지다! 우리아이는 아직 가나다라도 모르는데 편지를 쓴 여자아이는 한글을 제법 깨우쳤나 보다.
글씨는 몰라도 하트가 엄청 많다고 말하며 연애편지라고 설명하는 아들을 보면 이 녀석들의 세계가 한없이 신비롭다.



 아들이 어느새 이렇게 컸나 싶은 뿌듯함, 내 아들이 이런 편지를 받는 대상이 되었다는 대견함, 내 아들을 위해 이런 편지를 썼을 여자아이에 대한 고마움(!) 등등의 감정이 묘하게 교차되었다.


"윤이가 누구야?"


라고 관심 있게 물으니 아이는 같은 반 친구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빈이랑 경쟁하고 있어"


"경쟁? 왜?"


"우빈이도 윤이를 좋아하거든. 그래서 우빈이랑 경쟁 중이야" 


벌써 한 여자를 두고 경쟁심리를 펼치는 녀석들의 세계에 웃음이 큭큭 터져 나오는 신비한 경험을 하노라니 우빈이에게 지지 말고 윤이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말해줘야 옳은 엄마일까 생각해 본다.


이렇듯 4세 아이는 엄마의 눈물 콧물을 빼어가며 감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힘든 영아기 육아는 잊혀 가고 감동을 받는 일만 남아 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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