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청혼받는 육아

결혼하고 싶어 하는 본능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by 뿌쌍




오랜 시간 떠나 있었던 친정에 들어와 육아를 하다 보니 잊고 있었던 청년기 내 물건들이 일상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재미있는 건 그 물건들을 내 아이가 좋아하고, 의미 있게 여긴다거나 즐겨 사용하는 모습을 볼 때다. 잊고 살았던 20대 나의 추억을 오늘의 내 아이와 함께 나누는 것은 꽤나 낭만적이며 감동적인 순간이다. 특히 아이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앙증맞은 두 손에 들고 "엄마, 이건 뭐예요?"라고 물을 땐 답을 하기도 전에 심장이 뛴다. 깨질까 봐...



2000년 10월이었다. 터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일이다. 유럽대륙과 아시아대륙을 잇는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비잔틴-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이라는 수도명의 역사적 변화, 소피아성당의 모스크벽화 복원 등 기대했던 여행에 대한 설레임이 채 갸시기도 전에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당시 쓰고 있던 프랑스 프랑을 (당시엔 유로화로 화폐가 통일되기 전이었으므로) 환전하기 위해 공항 환전소에 들렀다. 몇 백 프랑을 내밀자 환전소 아저씨의 재빠른 손동작으로 돌아온 건 수십다발의 지폐였다. 이걸 다 나보고 가지라고요? "정말 이게 이 돈이 맞아요?" 를 몇 번이나 물었다. 처음엔 부자가 된 기분에 우쭐하기도 했다. 하지만 평소 숫자 울렁증을 가지고 살고 있던 내가 엄청난 숫자로 이루어진 그 지폐 다발을 집어 들고 완전한 패닉 상태에 빠져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지금이야 몇 억동을 가지고 하노이에서 분짜 한 그릇을 사먹는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 때는 그랬다는 말이다. 그때부터 매번 소비를 할 때마다 이 돈이 과연 원화로 얼마인가를 고민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괜한 빈곤(!)에 여행의 즐거움은 반감되었다. 그래서 더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스탄불 추억들이 남았을 테다.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여행 중 우연한 기회에 보스포스 해협을 바라보는 이스탄불 어느 거리를 걷다 그리스 정교회 미사를 만나게 되었다. 조용히 뒤에 들어가 그들의 의식을 관찰하던 중 헌금을 걷기 위해 (밀가루) 포대자루 여러 개가 신도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포대자루에 이미 넘쳐나는 지폐를 꾹꾹 눌러 담는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고서야 깨닫게 된다. 아무 가치도 없는 화폐, 그리고 극심한 인플레이션 속에서 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한 사회를...


자국 화폐 가치가 없을 때 흔히 사용하는 달러보다 독일 마르크화를 우선하는 터키인들이었다. 세상에 살다 살다 독일 아닌 곳에서 마르크화를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놀라운 일이었다. 흔히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지배체제에 대해 이런 비교를 한다. 영국은 자국 식민지에 도로를 (infrastructure) 남기고, 프랑스는 자국 식민지에 문화를 (culture) 남기고 하지만 독일은 그 흔한 거리 이름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그렇듯 빈곤한 식민지 지배화를 가지고 있던 독일이건만 어쩌자고 터키에서는 그들의 화폐를 자국 화폐 이상으로 가치를 부여하며 만날 수 있었던 것일까?


19세기 오스만 제국 시기 독일은 협력하였고, 그 이후부터 터키와 독일은 교류가 많아졌다. 많은 터키인들이 이주를 하였고,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 독일이다. 그러다 보니 가족애& 효 사상에 끔찍한 아랍인들답게 고국에 남은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벌어 보냈으리라 예상했다. 히틀러가 전쟁으로 자멸할 것이라 예측했던 터키의 위대한 지도자 아타튀르크의 선견지명에 2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는 독일의 추축국에 속하지 않았다. 나중에 연합군으로 들어간 것은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그럼에도 독일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고단한 여행 덕분이었을까, 2012년 독일에 살 때 프랑크푸르트의 케밥집들을 다니는 것은 늘 재미있었다. 시내 곳곳에 널린 어느 케밥집에 들어가 식사를 해도 이스탄불 여행 이야기를 풀어대면 그 후손들이 보여주는 세상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나라를 살고 있는 이민자들에게 고국에 대한 정서를 물어볼 때 나타나는 다양한 반응중에서 터키인들이, 그의 후손들이 보여주는 고국에 대한 향수는 지극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지난한 여행을 마치고 출국을 하던 아타튀르크 공항에서였다. 비행기를 타기 전 가지고 있던 터키 리라를 아낌없이 다 쓰고 갈 참이었다. 몇 백만 리라를 내고 카페에서 차이를 넉넉하게 마셨음에도 돈이 남았다. 이 놈의 돈은 써도 써도... 결국 수중에 남은 지폐 그 가치와 비슷한 아이템을 하나 골랐다. 그것이 바로 대충 그려진 듯한 저 물고기 그림의 단지다. 벌써 20년이 더 지난 이야기고, 물건이다.


눈을 반짝이며 물고기 단지를 들고 서 있는 아이 옆에 키를 낮추고 앉아 그의 귀에 대고 속삭여준다. "이건 엄마가 스무 살 때 터키라는 나라 이스탄불 도시를 여행하면서 산 물건이야" "그럼 엄마한테 소중한 거예요?"라고 물어 "그렇지! 엄마는 엄마의 추억들을 나중에 엄마 아이가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바라왔었어"라고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20대 때부터 난 책을 사면 항상 첫 페이지에 메모를 해 두었는데 보다 의미가 큰 책에는 '나중에 내 아이가 이 책을 보게 되면...'으로 시작되는 문장도 함께 적어두곤 했다. 엄마의 추억을 공유하게 된 아이는 그때부터 그에게 소중한 것을 이 곳에 넣어두기 시작했나 보다.


두 달 전, 일주일 정도 일이 있어 바빴던 데다 이틀은 일이 늦어지는 바람에 호텔에서 지내다 집으로 돌아왔더랬다. 그동안 외할머니와 잘 지내고 있던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목에 매달려 "엄마 사랑해"를 외쳐댔다. 뽀뽀를 멈추지 않는 아이를 2층으로 데려와 깨끗이 씻겨 로션을 발라 주고 옷을 입히고 머리를 빗겨 잘 준비를 마쳤다. 그러자 아이가 내 손을 잡아 끈다. "엄마 일로와 봐요" 하기에 원하는 대로 끌려가 보니 물고기 단지 앞으로 간다. 그리고는 뚜껑을 열어 손을 넣고 뒤적뒤적하더니 "엄마 반지~" 하면서 체리 두 개가 박힌 핑크색 반지를 꺼낸다. "엄마가 좋아하는 핑크색!" 하면서 내 손에 끼워준다. 너무 작아서 새끼손가락에 겨우 들어가는데 절반도 안가 멈춘다. "엄마 이 반지 꼭 끼고 있어" 하기에 "응? 불편한데... 알았어"라고 말했더랬다.


그리고 침대에 올라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려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한쪽 팔을 머리에 대고 베개에 기댄 채 나를 바라보더니 "엄마, 우리 결혼할까?"라고 묻는다. 어찌나 기대에 가득 찬 해맑은 표정이었던지, 게다가 또 어찌나 멋진 남자의 모습이었던지 아이의 이런 모습에 가슴이 쿵~ 한다. 심쿵이다! 어미로서 세상에 아이를 내어놓고 키워온 감동이라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래, 나중에 엄마와 꼭 결혼하자"라고 답하자 아이는 "내가 머리도 더 커지고, 배도 자라고, 다리도 자라면 그럼 엄마와 결혼할 수 있지?"라고 묻는다. 감동으로 눈물 콧물을 흘려대는 엄마를 아이는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책 읽어주는 내 목소리를 듣다 잠에 들었다.


(나중에 육아유경험자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아이의 이런 심리는 엄마와 며칠 동안 떨어져 있었던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을 거란다. 즉, 엄마로부터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 어필해 보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프로포즈를 그런 맥락에서 보면 감동의 질과 양이 배가 된다)


좌: 아이가 새끼손가락에 끼워준 프로포즈 반지 중간: 아이 보물창고 우: 모로코에서 사 온 거북이, 아이는 꼭 아기거북이를 어부바 한 상태여야 한다며 어미등에 올려둔다.


아이는 그 이후로 시시때때로 물었다. "엄마 반지 꼈어?"라는 아이에게 "응? 깜빡했는데"라고 답하면 쪼르르 달려가 물고기 단지에서 반지를 꺼내와 새끼손가락에 끼워준다. 하지만 절반도 들어가지 않는 그 반지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손가락이나 손톱에 뭘 달고 다니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마다 이불 정리를 하다 반지가 발견되면 물고기 단지에 넣어두고 아이는 또 꺼내와 내 손에 끼워준다. 어제는 옆에서 뽀로로를 보고 있는 아들 녀석이 눈치 보여 새끼손가락에 반지를 걸고 키보드를 치다 불편함에 화딱지가 나서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이 반지를 꼭 끼고 있어야 하니?"라고 하니 아이는


"응, 우리 나중에 결혼할 거니까 엄마가 이 반지를 꼭 끼고 있어야 해"


라고 말하며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보고 있던 뽀로로에 집중한다. 아~ 아무 대답을 할 수 없는 감동이다. ㅠㅠ


이렇게 매일 무조건적이며 집요한(!) 생후 40개월짜리 청혼을 받으며 아이는 나에게서 점점 더 특별해진다. 장난감들 속에서 체리가 두 개 박힌 이 반지를 보고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에게 주겠다고, 그리고 결혼을 하겠다고 생각했을 그 순수한 동심을 어떻게 훼손시키지 않을지를 생각해 본다. 하지만 어차피 너한테 여자친구 생기면 다 끝이잖아!!


남자아이를 키우는 많은 엄마들이 이미 경험했을 테니 이런 글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한 번쯤 들어볼 법한 이야기, 남자아이는 엄마에게, 여자아이는 아빠에게 결혼하자는 깜찍한 말이 육아를 하느라 지친 부모의 마음을 얼마나 많이 위로해 주었던가. 태어나 가장 예쁘다는 이 시기에 아이에게 받는 프로포즈는 매일 계속되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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