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없는 시간에는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육아다!
깔끔을 떠는 성격이다 보니 해 먹고사는 문제보다는 치우고 사는 문제에 좀 더 치중하는 편이다. 매의 눈으로 집안의 먼지 밀도를 따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사노동은 고단한 일이 된다. 특히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는 몸 하나 움직이기도 싫은데 분주히 청소기를 밀고, 물걸레로 닦고, 욕실 청소를 하는 일이 귀찮다. 여름에는 온몸에 힘이 남아도는 듯 바지런을 떨지만 저체온증 인간에게 겨울나기는 혹독하기만 하다.
해외에서 살던 기간 중 약 8년 동안은 집안일을 대신해 주는 가사도우미 분이 있었다. 운이 좋았다. 그러다 보니 혼자 조용히 살며 딱히 치울 것도 없었겠지만 가사노동은 정말이지 오랜 시간 내게서 잊힌 행위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서 몸만 빠져나와 한껏 치장하고 하이힐을 또깍거리며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해 돌아오면 말끔해진 집에서 지내는 것이 얼마나 삶의 질을 우아하게(!) 높여 주었던가. 과분할 정도로 오랜 시간 누리며 살아왔다. 앉으면 눕고 싶어진다고 편의를 추구하는 욕망이 정점에 달했을 때 극한 육아가 시작되었다. 한국에 들어와 친정에서 육아를 하며 가사노동까지 해야 했던 나에게는 이보다 더 지옥 같은 건 없었더라는 말이다.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가사노동에 익숙해지니 나름 그 안에서 재미도 찾았다. 특히 빨래를 꺼내 팡팡 털어 옷걸이에 하나씩 가지런히 널어두며 (줄 세우기 강박증) 집안의 습도를 높이는 기쁨 같은 것 말이다. 청소를 마친 후 모든 창문을 닫고 야사 하이페츠 (Jascha Heifetz)의 바흐 연주곡 Preludio를 틀어놓고 창가에서 가만히 햇살을 밟고 서 있는 기분도 참으로 좋다. 깨끗한 공기로 바꾼 공간에서 청결한 향기를 맡으며 정돈된 살림살이를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행복하다.
그러나 육아라는 '생물'은 그런 정적인 삶의 여유를 시기 질투하고 대립하는 집단이다. 때문에 나에게 주어지는 이 찰나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청소를 할 시간이면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잠깐 맡기거나, 아이가 등원하고 집안이 비워진 시간에 했다. 그러면 아이는 돌아와 매일 삼시 세끼를 먹듯 어지르고 노는 것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나는 지난겨울부터 이 모든 가사노동을 혼자 있는 시간에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즉,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쓰기로 결심한 것이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어질러짐과 치움! 초토화 시켜놓고 떠난 아이의 빈자리. 어지르기 끝판왕 아이와 정리정돈의 고수가 함께 사는 법을 찾아 나가는 과정은 육아의 한 부분이 되었다.
출산 전에는 극한 미니멀함을 추구하던 사람이었는데, 육아가 시작된 이후 그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치워도 치워도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와 발에 밟히는 저 오색빛깔의 알록달록한 장난감들 때문에 정말이지 미쳐 돌아갈 지경이었던 적도 있었다. 게다가 치워 놓으면 한 시간도 못가 확대 재생산되는 저 어질러짐이 내 집안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한 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허나 아이에게 죄가 있는가... 아이는 그러려고(!) 태어나 나름의 과정을 즐기며 성장하고 있는 것을 (게다가) 부모인 내가 탓할 수는 없다. 매일 반복되는 지겨운 치움의 일상을 살던 내가 아이 세 돌이 되면서부터 아이에게 한 집에 사는 가족으로서 연대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어지른 것은 너야. 그런데 왜 엄마가 다 치워야 하니? 왜 엄마가 다 해줘야 하는데?" 그런 엄마의 물음에 아이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힘이 들어서요" 그 대답이 나오자마자 얼마나 부적절하며 잘못된 생각인지를 조목조목 설명해줬다. 그렇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아이에게 가족의 공식 구성원으로서 정리정돈과 청소에 책임을 묻기 시작하게 된 계기다.
혼자 청소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아침잠에서 깨어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나면 일단 먼지들이 눈에 들어와도 두 눈 딱 감는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한다. 그 시간은 안타깝지만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이다. 그리고 오후에 하원한 아이와 함께 집을 치운다. 그가 전날 어질러 놓은 장난감들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민다. 그리고 아이 식판과 함께 설거지를 한다. 가사노동은 딱 하루에 한 번 한 시간 내로 줄였다. 내가 집안일을 하는 동안 아이는 부지런히 엄마 심부름도 한다. 부탁하면 이리로 가져오고, 저리로 가져다 놓고, 판돌이 의자를 놓고 올라가서 필요한 건 꺼내고 등등 직접 다한다.
아이는 이제 그 스스로 물티슈를 가져가 우유 마시다 흘린 바닥도 직접 닦고, 요플레를 먹다 바르며 가지고 놀던 장난감 자동차도 세차한다며 쓱싹쓱싹 닦아낸다. 조금만 더 크면 다 할 줄 아는 것을 뭘 그리 일찍부터 시키냐는 친정엄마의 타박이 이어지지만 난 굽히지 않는다. 똥 닦아가며 죽을 고생을 해 지금껏 키워냈으면 내 할 일은 다 했다. 생존의 시간을 넘어왔으니 이제부터는 교육의 시간이라는 생각이다.
세 돌이 지났으면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더 많아져야 하는 법이고, 어지르면 치우는 것도 배우고, 엄마가 가정을 위해 어떤 노동을 하는지도 보고 알아야 한다. 요즘 아이는 "싫어! 내가 스스로 할 거야"라는 말을 부쩍 자주 한다. 또한 엄마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며 관심을 갖고 해 보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며칠 전 변기를 청소하는 내 옆에서 "엄마 내가 할게"라고 아이가 말하는 순간 흐뭇한 엄마 미소로 답해 줬다.
"응. 잘 봐. 아들, 때가 되면 부탁할게" (어차피 크면 너도 다 해야 해)
좀 전에 하원하는 아이에게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냐 물어보니 '개똥구리'를 먹었다고 진지하게 답하는 장난꾸러기다. 아직까지는 말 앞뒤가 다르다(!)는 여러 애로사항이 있지만 40개월 아이는 그에 적합한 삶의 무게와 책임을 갖고 매시간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