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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Feb 10. 2020

XS 사이즈를 포기하지 않겠다

출산 후 체중 25kg를 극복한 이야기



45-48kg.

약 20년이 넘게 변하지 않는 숫자다.

물론, 초중고 기간 내내 이 이상을 넘어가지 않았으니, 체중 50kg 이상을 살아 본 날들이 많지 않다. 그렇다고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아니고, 먹고 싶은걸 참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다이어트와는 관계없다. 국내 다이어트 시장이 10조 원 규모라는데, 그 시장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으니 운이 좋은 걸까.


20대 초반, 나는 신장이 좋지 않았다. 그때 열흘 동안 단식으로 몸을 다시 리셋하지 않았더라면 금 어떤 모습이었모를 일이다. 다이어트 목적이 아닌 치료를 목적으로 체계적인 단식을 한 덕분에 건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체질이 변했고, 선호하는 식단이 달라졌으며, 1차적인 먹고사는 문제에 초연해지게 되었다. 삼시 세 끼를 먹고사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된 덕분에 무엇을 먹지 않아도 좋은 공복을 즐기게 되었다.




하다 하다 이제는 애 낳는 얘기까지...


하지만 나에게도 75kg였던 적이 있었다. 체중계에 나타나는 숫자에 희비가 엇갈리는 업 앤 다운의 시간이었다. 출산그 이후 이야기다.


내 소중한 신체의 일부를 훼손하기 싫다는 이유로 '내 차라리 배를 가르리라' 결심하며 선택형 제왕절개를 택했다. 아기만 나오면 25kg는 금세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눈물을 뚝뚝 떨구는 남편 손을 잡수술 대기실에서도 생 처음 기록한 75kg이라는 가공할만한 숫자 별로 놀라지 않았다. 출산이 두렵보다 다시 날씬한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더 컸다. 조금만 있으면 모든 것에서 불리했던 이 신체조건, 태교 하느라, 아기를 지키기 위해 화내지도 못하고 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했던 시간들도 오늘로 다 끝날 일이었다.


'이제 아기 곧 만날 거예요'라는 소리가 들리더니 배가 푹 꺼지는 느낌이 나며 렁찬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아~ 시원하다'라고 생각했다. 후련한 마음으로 잠시 잠들었다가 눈을 떠 보니 아기를 안고 감격에 젖어 울고 서 있는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병원이 떠나가라 울던 아기는 어느새 조용히 잠들었나 보다. 감긴 아기의 두 눈에 발라진 약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 내게 남편은 "감염되지 말라고 발라놨대. 걱정하지 마. 다 정상이야"라고  말해줬다. 그 말에 안심하고 다시 잠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투명 플라스틱으로 된 요람(?)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아기의 실루엣이 보였다.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해냈다는 감동에 펑펑 울다 또 잠들었다. 마취가 완전히 풀 깨어난 나에게 남편이 "여보 이제 일어나서 시하 얼굴 좀 봐"라고 말했을 때는 출산한 다음날 아침이었다. 24시간이 지났던 것이다.


출산 첫날 본 아기의 모습은 감동이었다. 내가 이런 일을 해냈다는 가슴 벅찬 뿌듯함이었다.




"응"이라고 답하며 몸을 일으키려는데, 어랏~ 가뿐하지가 않다.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을 만져보니 내 몸 같지 않다. 코끼리처럼 부어오르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두 다리에 퉁퉁 부운 손은 내 평생 처음 보는 낯선 것이었다.


답답하다며 빨리 소변줄을 빼 달라 요청하고, 남편의 도움을 받아 겨우 일어나 거울을 본 나는 비명을 질렀다. 거울 속에 비친 눈, 코, 입조차도 퉁퉁 부어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상상했던 출산 후 날씬해졌어야 할 그 모습은 어디로 갔던가. 케이트 미들턴, 조지 왕자 낳고 하루 만에 왜 그랬니! 


분명 내 몸에서 나온 아기가 옆에 있는데도 몸은 출산 직전 그대로였다. 순간 망연자실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남편 너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여보, 당신 도라에몽 같아" 포대자루와 같은 분홍색 산모복 위에 호빵만 얼굴이 얹혀 있는 모습, 남편의 솔직한 표현에 순간 큭큭~ 웃음이 터졌다. 수술한 배를 고통스럽게 부여잡은 건  다음이다.  


하지만 웃고 있기에는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 출산 후 산모로 견뎌내야 하는 여러 상황 속에서 나타난 호르몬 변화는 무서웠다. 아니 내 정신력이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걸 빠르게 되돌려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때부터 일체의 식사를 거부했다. 오로지 삼시 세끼 나오는 미역국과 하루 2리터 물만 마시며 병원 복도를 걸었다. (루 물 2리터 마시기는 10  계속된 나의 루틴이었다)


"그래그래, 누워만 있지 말고 많이 걸어야 회복이 빨라. 산모님 잘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하던 집도의 원장님의 격려에 더 큰 힘을 얻었다. 나는 수시로 의자에 앉아 아기를 돌봤고, 지긋지긋했던 수액을 뽑고 팔이 자유로워졌을 때부터는 많은 일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조리원에 입소하며 내심 기대를 하였건만, 몸무게는 여전히 73kg다.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기가 2.6kg+태반+양수 그럼 아무리 못해도 최소 10kg는 자연스럽게 빠졌어야 하는데 대체 무슨 우여곡절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러다 불현듯 산후 부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달았다. 기가 그대로 남아 푹 퍼진 아줌마가 되는 건 내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순간 정신이 바짝 들었더랬다.


조리원에서 2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후마사지를 받으며, 매일 체중을 확인했다. 그리고 미역국과 하루 2리터 물만 마셨는데도 퇴원할 때는 65kg였다. 2주 동안 겨우 10kg 빠졌던 것이다. 이후 조리원을 퇴원하고 나와 3주 동안 혼자 신생아를 돌보는 독박 육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친정엄마께서 도통 음식을 먹지 않고 있는 나를 보고 "넌 어쩌면 그렇게 아무것도 먹지 않니?"라고 걱정하셨지만, 사실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니 먹을 정신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다. 한 시간 두 시간 간격으로 울고 깨어나는 아기에게 먹이고 트림시키고, 기저귀 바꾸고, 목욕시키고 수면교육을 한다며 불 끄고 재우고 하다 보면 24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온 신경이 아이에게 곤두서 있다 보니 수면욕, 식욕을 차례대로 잃어가기 시작했다.


2.6kg로 태어난 아기가 5주 차에 접어들며 5kg를 넘었을 때, 비로소 나는 50kg 반대로 진입했다. 3주 만에 돌아온 남편은 나를 보고 "여보, 당신 어떻게 이렇게 살이 쫙 빠졌어?"라며 놀라워했다. 뿌듯했다. 성취와 만족감 덕분이었던지 출국을 하는 비행기에서부터 잠이 쏟아져 밀려왔다. 그때부터 정상적으로 잠을 자기 시작했고, 제대로 된 음식물을 먹기 시작했다. 것은 내에서 먹은 라면 ㅠㅠ


좌: 다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아기 생후 40일 즈음, 가운데: 아기 백일기념여행 중 Cape Town , Table Mountain에서  우: 생후 10개월 즈음


아이가 백일이 되었을 무렵, 53kg가 되었고, 손 놓았던 테니스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일 한 시간씩 땀을 흘리며 테니스 코트를 뛰었지만 남은 체중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지부진했던 체중계의 숫자가 아이가 첫돌이 될 무렵 드디어 49kg가 되었고, 출산 전 입었던 옷들이 자연스러워졌다. 출산 후 일 년 만에 되찾은 몸이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던 관계로 비록 일 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지만 자신감은 두 배가 되었다. 예전의 몸을 되돌리려는 노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몸소 체험하며 연예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몇 개월 만에 이걸 다 해내는 거야? 75kg에서 48kg를 오가는 간 동안 비만을 바라보는 시선이 상당히 소적으로 변다.




자기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주관적인 경험을 대입시킬 수밖에 없다. 나이 들면서 피부가 중요한가요, 머릿결이 중요한가요, 몸매가 중요한가요 등을 묻는 여자들 커뮤니티에서 글을 볼 때마다 첫 번째가 몸이요, 두 번째도 몸이요, 세 번째도 몸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판을 갈아엎을게 아니라면 말이다. 


비단 날씬한 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남녀 구별이 없다. 한 번 되돌려 놓은 이후에는 특별한 노력이 없이도, 또한 나보다 더 날씬한 친정엄마의 유전자 덕분이기도 하겠지만(제목 사진은 내가 아니라 친정엄마와 아이의 모습이다) 어떤 이유로든 앞으로 XS 사이즈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물론, 타인의 시선을 경계하느라 이 모든 고생과 노력을 기울인다는 말 아니다. 나 자신 스스로가 만족하며, 내가 끊임없이 자기 관리를 하는 그 과정들이 좋은 것이 첫 번째 이유다. 




고가의 PT를 받는 것도 아니고, 뭐 엄청나게 특별한 것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비만하지 않은 부모님의 유전자 믿고 까불지도 않는다. 산후 25kg에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을 만큼 평범한 아줌마다. 이후, 삼시 세 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많이 먹은 다음날은 덜 먹고 몸을 쉬게 하는 조절, 하루 한 시간 요가로 몸을 스트레칭하고 많이 걸으려 하는 노력, 가벼운 몸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하는 자기 관리는 고작 이것이 전부다. 배가 나오거나 비만인 사람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을 가지고 살다 보니 남녀노소 불문하고 날씬하고 건강한 몸을 보는 것은 언제 즐겁다.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어디에서고 티가 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영향인지 41개월 아이는 "엄마, 나 이러다가 뚱뚱보가 되면 어떻게 해?"라고 묻고는 한다. "지금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키로 가지 뚱뚱해지지 않아. 걱정하지 마"라고 답해줘도 아이는 "그래도 싫어"라고 말한다. 뭐 어쩌겠는가, 본인의 생각과 의지가 그러하다면 41개월짜리의 자기 관리를 존중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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