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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Mar 23. 2020

마스크 쓰지 말라는 프랑스와 캐나다

캐나다와 프랑스인들은 마스크 없어도 걱정하지 않는다?



"한 달 전에 네가 한국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이제야 이해하겠어"


캐나다 친구가 말했다.

불과 일주일 만에 코로나 19가 유럽과 북미대륙에 현실이 되고 일상이 되다. 그 전에는 한국에 있는 나를 걱정하던 그들이 이제는 반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청정지역에서 마스크를 쓰라?


지난 17일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이동제한령' 발표했던 날 오후에 전화통화를 하던 프랑스인 친구는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분통을 터트렸다.


"판타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던 일이 현실이 되었어. 이런 생활을 하게 될 줄이야. 허가증 없이 외출을 하다가는 벌금을 내야 한다는 걸 상상을 해 보기나 했겠냐고. 어차피 파리지앵들 중에서 별장이 있는 사람들은 벌써 다 시골로 갔어"

 

그래도 일단은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마스크 착용', 그리고 '손을 자주 씻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해줬다. 한국의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대서특필되며, 각 나라의 뉴스를 통해 매일같이 소개되었던 까닭에 '때~꾸'라는 도시 이름 또한 프랑스인 친구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발음되어 나왔다.


"마스크? 푸핫~ 마스크를 쓰라고? 말은 알겠는데, 그건 그동안 아시아인들이 주로 쓰는 소품이라고 생각해 왔어. 여기서 그걸 쓰고 다니면 모두들 쳐다보며 놀랄걸. 그건 공기오염이 심한 중국이나 한국에서 필요한 거지"


마스크를 대하는 프랑스인의 자세는 한결같았다. 캐나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캐나다와 같은 청정지역에서 마스크를 쓴다는 일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 아냐?"


라고 반문하는데 순간 그 표현 자체는 설득력이 있었다. 불과 약 6~7년 전부터 미세먼지, 초미세먼지가 일상생활 속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서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는 것 자연스러 일이었다. 러다 보니 코로나 19를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를 꼭 써야 한다는 것은 사실 일상생활의 연장과도 같았다.  또한 작년 봄에 미세먼지 차단을 위해 박스째 구입해 둔 KF94 마스크가 있었던 덕분에 코로나 발병 이후 아직까지 마스크를 구입하지 않았던 이유다.


한 달 전 특정 종교가 이처럼  집단감염을 일으키는 원인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에서는 평소대로 대부분의 국민들이 착실하게 마스크를 쓰고 일상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확산 전파되는 것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문화의 차이?


러나 유럽 국가들에서나 캐나다 등 북미지역에서는 주로 비말감염으로 전파되는 이 전염력 강한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고 또 보호받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마스크 착용이 일상적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다가 마스크를 쓰는 일이 여전히 낯설고 어색한 까닭에 폭발적인 확산을 피할 수 없었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사람들은 규율준수착실하게 따르는 문화 속에서 살지만 여기 캐나다는 그런 사회가 아니야. 그러니 정부가, 국가가 뭘 하라고 해서 그걸 꼭 해야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때문에 마스크를 쓰라고 권고한다고 해서 꼭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받아들이지 않아"


그러면서 캐나다인 친구는 사진 한 장을 보내줬다. 마스크를 쓰고 마트에 장을 보러 온 어느 노부부의 모습을 친구 아들이 찍어 '이걸 좀 보라'며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고  지인들에게 보내주었더라는 것이다.


"봐봐, 여전히 여기서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에 대해 '심리적으로 대단히 불안한 상태' 또는 '무엇인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 등으로 인식한다니까"라고 말했다.


마스크 사용을 자제시키는 캐나다 퀘벡주 총리의 메세지. 우리나라와 너무나 대조적인 이들의 정책은 마스크를 대하는 문화가 다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오늘 캐나다인 친구는 '마스크를 쓰지 말고 의료진들과 필요한 환자들에게 양보하라'라고 캐나다 퀘벡주 총리가 직접 권고(?) 했다며 그 내용을 캡처하여 보내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캐나다에서도 마스크 품귀현상이 시작되었더라는 내용이었다. 쨌거나 쓰고 싶지도 않지만 마스크 재고가 없기 때문에 쓰지도 못한다는 그저 다소 무심한 반응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든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국민 개개인마다 동분서주 노력했고, 부 몇몇의 마스크  매점매석에 분노했고, 정부에 불만을 터뜨렸으며,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스크 5부제 등의 여러 방안까지 강구하며 노력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방식이었다.


좌: 마스크 착용을 보는 캐나다인들의 시선은 건강염려증의 과잉(?), 우: 마스크를 쓰니 마치 거위가 된 것 같아! 라고 투덜대며 착용사진을 보내온 프랑스인 친구


프랑스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이동제한령으로 인해 대부분이 재택근무로 업무를 이어가지만, 은행 전산 책임자인 또 다른 친구는 그럼에도 계속 출근을 한다고 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냐는 나의 물음


"마스크 재고가 없어"


라고 그 또한 무심하게 답했다. 아니 마스크를 꼭 써야 한다는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현재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노약자와 의료기관 종사자들 등 꼭 필요한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일반인들 마스크 사용을 자제시키고 있다고 한다.  전염병 속에서 캐나다와 프랑스의 마스크를 쓰지 말라는 정부 권고사항이 리나라에서였더라면 가당키나 했을까.


"캐나다에서 연간 1만 명이 인플루엔자로 사망한다는 것을 알아?"


오히려 캐나다 친구는 되물었다. 마스크는 마스크일 뿐인 것, 로나 바이러스는 코로나 바이러스일 뿐인 것이라는 그들의 생각. 지역 확산을 막기 위해, 전 국민이 힘을 합쳐 이겨내기 위해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참고 견디기보다는 정부의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안 걸리면 되는 전염병쯤이야 하고 마는 '저짝'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쯤면 요지부동한 그들의 한결같은 개인주의와 통제불능 & 스크는 우스꽝스럽다 여기는 오만함에 웃프다는 생각마저 든다.


랑스인 친구는 이틀 만에 마스크를 쓴 사진을 보내오며 마스크를 쓴 이 툭 튀어나온 거위 부리 같다고 놀림을 받았더라며 여전히 불평했다.  일부 대형마트에서는 을 세워 5명씩 들어갈 수 있도록 입장 제한을 하기  시작했으며,  시간대에는 70세 이상 고령자들이 우선적으로 장을 볼 수 있도록 배려다고 전해왔다.


이제 프랑스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긴장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다. 그 마트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한 두 명이나 마스크를 썼을까 말까라고 한다. 대다수의 캐나다인들이나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플루엔자와 동급이라 바라보는 걸까.



오죽했으면 이동을 제한해야 했을까


분명히 통제가 안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한마디로 얼마나 말을 안 들어 쳐 먹는 국민성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프랑스 마크롱 정권에서는 죽했으면 이동제한령을 공표하고 어길 시 135유로부터 시작되는 벌금을 부과하는 극한 엄포를 놓아야 했을까 싶다.

프랑스 내무부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아 작성하는 다소 형식적인 절차이지만 법적책임을 물을 수 있기에 가볍게 볼 종이 한 장이 아니다. 어길시 벌금은 135유로부터 시작한다



위기에서 빛난 국민성


이쯤고 보면, 우리나라는 이번 코로나 19를 계기로 잠재되어 있던 국민성을 제대로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소위 '국뽕'을 자극하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다. 다만, 바다 너머에서 오랜 시간 대한민국을 바라보았던 사람으로서 국정농단 -> 탄핵 -> 정권교체를 이루어가는 동안  피 한 방울 흘리는 이 없이 평화롭고 민주적이었던, 그리고 동요됨 없이 묵묵히 각자의 위치에서 일상을 살아내었던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런 잠재력이 한국의 극한 현대화를 지나오는 동안 여러 시련과 수난을 겪으며, 충분히 묵혀지고 단단하게 다듬어져 이 어려운 시기에 제대로 발휘되고 조명되는 계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대한민국인들의 속도 빠른 DNA를 자극하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라는 신문명의 발달과, 그 안에서 꽃 피운 커뮤니티의 발달, 그리고 온오프라인 두 공간을 살아가며 민주적으로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어쨌거나 20 세기말 & 21세기 초, 두 정권에서 누린 정치적 & 문화적 자유가 꽃피워낸 온라인 커뮤니티의 발달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의 성숙한 국민성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일각에서는 CCTV와 신용카드 사용으로 사생활이 전부 공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확진자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물론, 나 또한 그런 생각을 가져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확진자가 됨으로써 주변에 많은 접촉자들이 번거로운 상황에 놓이는 것에 대한 우려가 더 크게 작용했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공동체 의식, 나뿐만이 아니라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이동을 최소화하는 이 건강한 연대의식을  이번 코로나 19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깨달은 바다.


사재기를 하느라 바쁜 사람들과 대비되는 우리나라  국민성과 정부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품격 있는 국가로 거듭나고 잠재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대한민국, 위기는 기회였, 훌륭한 시민의식을 가진 이들이 사는 2020년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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