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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Feb 17. 2020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찾아가는 과정에 관하여 [4]



1. 사무직의 배신

2. 직업의 자유 국경과 대륙을 넘다

3. 엄마 회사에 왜 안 가요?

4.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5. 내 삶에서 [9 to 6]를 지우기로 했다 (예고)




처음에는 아이 교육을 위한 순수한 목적이었다.

캐나다 퀘벡을 향한 여러 이민정보를 찾아보다 보니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들이 열렸다. 낯선 정보들 속에서 어느 분의 인터뷰를 읽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그분은 소위 워너비 직장을 퇴사를 하고 난 뒤 예기치 못한 IMF 사태로 여러 고생을 하며 한국사회의 이면을 경험했다고 다. 가장으로서 생계가 막막했던 연한 기회에  캐나다로 향했고 기술을 배웠고 이민에 성공했다다. 그의 인터뷰를 읽으며 화이트 칼라였다가 블루칼라로 사는 것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아니 멋졌다. 물론 그분이 겪었어야 할 삶의 무게와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었지만 나는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내가 가고자 하는 이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다.


[사무직의 배신]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방법은 다시 직장인이 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플랜 A는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었고, 이민을 위해 다시 피고용인이 되는 것은 플랜 B였다. 아이 교육을 위한 나의 유학은 플랜 C로 남겨두었다.




어느 신앙심 깊은 이가 매일같이 기도를 했더란다.

"하느님! 제가 꼭 복권에 당첨되게 해 주십시오"

기도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몇 년째 계속되자 이에 감동한 하느님이 응답(!)을 주셨더란다.

"아들아, 내 지난 몇 년간 의 기도를 들었다. 그러나 복권을 사지 않고 기도만 하는구나"



실행하는 것도 능력이었을까

메일을 보내자마자 5분도 채 되지 않아 알림을 울리는 진동을 보며 설마 내 메일에 대한 회신일까 잠시 생각했다.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기엔 너무 빠른 답장이다. 알림 창을 보니 Re: 표시가 되어 있다. 광고메일은 확실히 아니었다. 스크롤을 내려 메일창을 연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내용은 뜻밖이었다.    


"기억하지! 마침 나 3주 후에 한국 출장이 예정되어 있는데 그때 시간 되니? 참, 너의 이력서 보내주는 거 잊지 마 ASAP"


4년 만에 연락한 뜬금없는 내 이메일에 더없이 놀라운 회신이었다. 더구나 5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한 이 빠른 회신 속도에서 긍정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3주 후에 한국출장이 예정되어 있다니 참으로 시기도 절묘하다 생각했다. 단 몇 문장에 한동안 잠식되어 있었던 심리적 불안에서 잠시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 거였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이후로 '만약 이 메일을 쓰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상상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달력을 살펴보니 P가 한국출장을 온다는 3주 후는 제도 시험이 예정된 그즈음이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듯이 지난 3개월을 몰입해 준비해 온 시험이었다. 쩌면 시험날짜를 꿔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래도 좋았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P는 2주 동안 중국 출장을 떠나 3주 차에 서울에 올 예정이므로, 빠르게 연락할 수 있도록 카카오톡 아이디를 보내왔다. 그때부터 내 일상을 바쁜 플랜 A 모드로 살면서 플랜 B의 시간도 겸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그 과정은 사실 즐거웠다. 바쁘게 모드 전환을 하며 사는 것이 삶에 활기를 주었다. 어쩌면 둘 다 가능하겠더라는 자신감마저 차올랐다.




새로운 시작, 작이 좋았다.

며칠 후 P는 5일 한국출장기간 동안 자신이 할 업무에 대해 미리 알려줬다. B2B 미팅이 여러 개 예정되어 있었고, 그중엔 현장 방문도 있었다. 이런 업무는 오랫동안 해왔으니 낯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여러 업무를 읽어낼 수 있었다. 각 업체별 현황과 P의 출장 목적을 파악했다. 그동안 논의해 왔던 한국 파트너사들과 중요 계약을 하기 위해 부사장인 그가 직접 오는 것이었다. 이번 일에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11월 초겨울 서울 거리에는 겨울비에 젖은 낙엽이 뒹굴었다. 동기들과 저녁을 먹으며 수시로 시간을 확인했다. 맥주를 두 잔 마시고 먼저 일어나 P와 약속한 시간을 맞춰 지하철을 탔다. 인천공항에서 곧장 호텔로 와서 체크인을 한 그와 만나기로 했으니, 약속 장소는 호텔 로비였다. 역에 도착할 즈음 톡이 울린다. 택시가 길을 잘못 들어 원래 목적지가 아닌 인근 다른 호텔에 내려주었다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당황했을 상황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바빠졌다. 동선을 바 출구로 나와 몇 걸음 걸으니 커다란 캐리어 한 개와 기내용 캐리어를 세워놓고 서 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다.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그는 4년 에 보았음에도 여전했다. 




난처한 상황에 빠진 그를 도와줄 구세주로 느껴졌을까. 예의를 차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반가움 가득한 표정으로

"그럼! 이렇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택시에서 내렸는데 갑자기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 한국 돈 환전 안 해서 난감한 상황이었어"

라고 답한다. 안심하라고 일러주며 가까운 거리라 택시가 오지 않을테니 걸어가자고 제안했다.


"좋아. 서울은 퀘벡에 비하면 하나도 춥지 않아서 밤에 산책하기에 딱 좋은걸"


이라고 호기롭게 화답하는 그와 마치 며칠 전에 만났던 이들처럼 캐리어를 하나씩 나눠 들고 상적인 대화를 하며 길을 걸었다. 오랜 시간 여행자로 살았고, 잦은 출장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던 나에게는 익숙한 상황이었다. 겨울비는 흩뿌려지고 있었고, 젖은 도로는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일요일 저녁 차량통행이 줄어든 서울 밤거리는 조용했고 그것은 매우 아름다웠다.


가방을 풀고 로비로 내려온 P와 일주일 동안 진행될 업무 이야기를 했다. P는 여러 소개를 했고, 자세히 설명했다. 그의 퀘벡식 프랑스어 악센트를 듣고 애써 웃음을 찾는 나를 보고는 장난스럽게 험험~ 헛기침을 하며 다시 말하기도 했다. 여러 의견을 주고받으며, 오랜만에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밤늦은 시간 모든 피로를 잊게 했다.




I accept myself unconditionally right now

산다는 것은 숨이 붙어 있는 한 모두가 똑같이 주어진 양의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이고, 그 질을 결정하는 것은 의지와 노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 게다. 그동안 나의 의지는 충만했겠지만 그 질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을 해 볼 기회가 없었다. 많은 날들에서 운이 좋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숨이 벅차기도 했다. 왜 이렇게 삶이 팍팍하냐고 투정하는 나에게 "그게 사는 거야"라고 말해주었던 지 초연함이 부러웠다. 매 순간을 필요 이상으로 열정 불태우며 살았던 나는 그래야만 한다는 자의식의 과잉으로 인해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사람으로 피곤했고 스스로에게 지갔다.


제는 더 멋질 것도 없고 더 특별할 것도 없는 나의 일상을 돌아다봤다. 스스로 찾아 다시 채워 나가는 것, 난  내 삶 가능하다면 천히 그리고 조금씩 리셋하고 싶었다.


그리고 출장 일정을 모두 마친 후 P는 내게 엄청난 제안을 했다.



다음 이야기는 [직장이 아닌 직업을 찾아가는 과정에 관하여 5 - 내 삶에서 [9 to 6]를 지우기로 했다]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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