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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May 27. 2020

실외 인공 암벽장에 도전했다

파트너를 믿고 함께 호흡하는 것!



그야말로 생초보가 말이다.

클라이밍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한 이래 암벽화를 신어 본지 몇 번 되지도 않은 상태로 실외 인공 암벽장에 갈 기회가 생다.


실내암벽장에서 적어도 두세 달은 연습해야 가능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먼 미래가 바로 오늘이 된다고 생각해 보면 시간을 단축하여 얻어지는 기회비용이란 그저 감사한 일!


사실 나를 클라이밍의 세계로 이끌어준 선배님의 제안은 너무나 유혹적인 것이었다.


"실외 암벽장에서 10시 30분부터 운동하겠습니다"


아이 등원 준비하며 아침밥을 먹이다 받은 그 메시지에 가슴이 뛴다. 당장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빠르게 떠올려 본다. 약 몇 시간은 비울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모든 것 번개처럼 빠르게 진행하여 약시간보다 약 40여분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거대한 인공 암벽장을 바라보고 서 있노라니 아찔하다. 도대체 인간어떠한 동물이기에 이처럼 고난을 거듭하며 도전하기를 즐긴단 말인가. 15m 높이의 실외 인공암벽장에는 초보 라인부터 고수들 매달릴 수 있다는 블랙라인까지 약 10개의 코스로 준비되어 있었다.


들고 온 것은 암벽화뿐인데, 현장에 있던 선배님과 코치님들 덕분에 순식간에 허리에 벨트가 채워지고 (하네스 - 처음엔 얼핏 듣고 하기스인 줄 게다가 모두들 하나씩 차고 있는 모습이 기저귀 같아서) 어느새 초보코스 앞에 서서 8자 두 번 묶기 (목숨줄이라고 배웠다)가 내 하네스에 걸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두근두근 가슴은 뛰는데, 이 두근거림이 설레서인지 두려워서 그러한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선배님께서 한 차례 오르는 모습을 보여 주시고는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줄을 잘 잡아줄 테니까 (빌레이고 한단다) 걱정 말고 올라가라고, 이 줄은 1.5톤 가량을 버티는 인장력이 있어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단다.


시작 전에 클라이밍은 예의부터 배우는 운동이라고 하여 빌레이를 해 주는 선배님께 곱게 인사를 하고 홀에 발을 디디며 팔을 뻗었다.


하네스에 연결해 묶어주는 목숨줄! 오르고 내려오고 무한반복에서 얻어지는 값진 깨달음. 클라이밍은 운동만이 아니었더라는 사실.


난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여기까지 겁도 없이 왔고, 15m에 도전하기도 거침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만큼 올라갔을까... 갑자기 아래가 내려다 보이는데 생 처음으로 고소공포증을 느꼈다.


그 순간부터는 팔을 어떻게 해야 할, 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도 생각이 안 나고 그저 떨어지고만 싶었다. 그런 내 심리를 반영하듯 두 허벅지는 미친 듯이 떨기 시작했다. (이런 걸 '오토바이 탄다'라고 표현한단다)


"나 내려갈래요. 그만 할래요!"


외쳤지만, 아래에서 선배님들이 소리쳐 주신다.


"왼발 왼쪽 홀로 한 칸 더, 그다음 한 손 뻗고! 조금만 더 올라가"


도무지 내 맘대로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저 혼신의 외침을 들으며 망설이고 있는데, 내 몸이 팽팽한 줄로 당겨지기 시작한다. 빌레이 하는 코치님께서 포기하지 말라고 줄을 당겨주고 있는 거였다.


그 힘에 여차저차 온몸을 떨어가며 한 칸 한 칸 다시 위로 오르기 시작했고, 내 끝까지 하고야 만다 결심하고 나니 어느새 맨 위 홀에 두 손을 합하고 "완료"를 외칠 수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진짜 울고 싶을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는 표현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것이 뭐라고 15m 벽을 타고 올라와야 겸손함을 배우다니! 살아가야 할 세상이 다시 보이는 듯했다.


줄을 타고 내려와 빌레이를 해 준 코치님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혼신의 힘으로 외쳐준 선배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는데, 눈물 앞을 가리고 온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여러 선배님들이 다시 벽에 오르는 것을 보며 영혼이 털린 채로 앉아 있는데, 클럽 회장님이 오셔서 물으신다. 어떤 운동을 했었냐고. 테니스 조금이랑 수영, 요가 정도라고 답하자 신체 유연함을 만들어 주는 요가가 많은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소질이 있어. 잘할 수 있는 신체조건이. 30분 쉬고 한 번 더 올라가 봐요"


네? 네?


두 번째 빌레이는 그 클럽 회장님께서 직접 잡아주셨다. 첫 번째와는 다르게 고소공포증을 덜 느꼈던 덕분에 홀를 잡고 오르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중간에 그만하고 떨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혼신의 힘으로 외쳐주시는 선배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아무 걱정 말고 오르기를 계속하라는 마법처럼 들렸다. 그 덕분에 나는 집중하여 마지막 홀까지 잡아내는 힘을 낼 수 있었다. 렇게 세 번을 완료하는 동안 클라이밍 혼자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내 착각 완전히 깨뜨려졌다. 은 2인 1조로 오르는 이와 줄을 잡아주는 빌레이 둘의 호흡이 중요한 운동이었 것이다.


도대체 이 힘든 고난을 즐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하게 했지만, 사실 그럴 여유도 없이 선배들이 싸온 김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부지런히 2인 1조로 돌아가며 끊임없이 오르기를 반복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몸풀고 오르고 쉬고, 또 쉬었다 오르는 재미를 찾았라는!


서로를 믿고 오를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이것이 첫 실외 인공 암벽장에서 15m를 얼떨결에 세 번이나 오르며 얻은 소중한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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