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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Jun 02. 2020

편식을 위한 변명

그깟 콩이 뭐라고 너를 아프게 하니



아이에게 아침밥을 먹이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은 다 똑같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하지만 나처럼 자신의 입에 밥을 떠 넣기를 죽도록 싫어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매번 전쟁 같은 식사시간을 각오해야 한다. 무엇 때문인지 이유를 모르겠어서 밥을 물고 있는 아이를 키우는 일은 지금까지 엄마로서 수많은 좌절감만을 느끼게 했다.

그런 이유로 나도 점점 식사를 준비하는 일에서 소극적이 되었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돌아오는 식사시간이 되면 오뚝이처럼 아이에게 한입이라도 더 벌려 먹이고 싶은 마음이 찾아왔다. 모성애란 이토록 지극한 것이어서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기쁨을 그 어찌 말로 다하리.  


아이는 체구도 작았지만, 식도 또한 여느 아이들과는 다르게 크지 않았나 보다. 입을 크게 벌려 뭘 먹지도 않았고, 먹으려는 의지도 딱히 없었다. 한 입에 무엇을 물고 삼키는 일을 매우 어려워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의 편식을 정당화하게 되는 시간으로 변질됐다. '그래, 뭐라도 먹어. 너 좋아하는 거라도 먹으면 돼'라고 되뇌며, 아이가 먹고 싶다는 것들을 합리화했다. 그건 음료수였다.




아이는 유독 음료에 열광했다. 뽀로로 음료부터 시작해 아이키커 등 단맛이 나는 마실 것들은 그가 가장 선호하는 '식사'가 됐다. 그걸 보는 지극히 이성적인 엄마는 물론 없다. 나 또한 아무거나 퍽퍽 잘 떠먹는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엄마로서 호통도 쳐 보고, 회유도 해 보고, 협박도, 거래도 해 봤다. 그러나 아이의 고집 또한 만만치 않아 우리는 수시로 부딪혔다.


그런 과정에서 중재자로 나선 외할머니의 지극한 내리사랑으로 아이는 통통해졌으며, 키도 자랐다. 여전히 또래들보다는 작지만 나름 열심히 성장하고 있음을 초보 엄마는 끝내 인정했다.   


오늘 아침에 아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별도의 비타민을 갈아 넣은 우유 한 컵을 마셨고, 그가 좋아하는 홍이장군을 앞에 두고, 나는 김에 밥을 싸서 두 세 숟가락이라도 먹이려고 옆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러자 김을 싼 밥을 오물거리다 엄마의 호통에 꿀꺽 삼켜버린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나 콩은 먹고 싶지 않아요"


"그래? 콩이 싫어?"


"네, 콩은 너무 싫어요"


그 순간 내 유년시절이 떠올랐다. 편식을 모르고 자라던 나였음에도 유일하게 먹을 수 없었던 단 하나의 곡물!




태어날 때부터 어찌나 통통했던지 하얀 살결에 하도 포동포동해서 별명이 '백돼지'였던 나였다. 유년시절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막내 외삼촌은 아직도 나를 '백돼지'로, 우리 집에서 임용고시 시험을 준비해 현재 모 초등학교 교감인 대수 삼촌은 여전히 나를 '하얀 돼지'라 부를 정도로 나는 시골에서 아무거나 잘 먹고 자라는 건강한 아이였다.   


그런 나에게 유일하게 먹을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음식은 바로 검은콩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매일 아침 밥상에 내 밥을 떠놓으시고는 꼭 검은콩을 여러 개 올려놓으셨다. 그리고 내가 콩을 먹는지 아닌지 확인하셨다. 그것은 마치 고문과도 같았다. 엄마가 옆에서 보고 계시는 터라 안 먹을 수 없어 밥과 함께 콩을 떠 넣고는 밥은 먼저 삼키고 콩은 입안에서 굴렸다.


그렇게 밥 한 공기를 다 먹고 나면 콩 여러 개만 입안에 남았다. 때로는 엄마 몰래 마당에 나와 학교가는 길에 콩을 퉤퉤 뱉어 버렸고, 때로는 엄마의 매의 눈초리에 걸려 억지로 꿀떡 삼켜야 했다. 단 한 번도 그 콩을 씹어본 적이 없다. 마치 돌과 같이 느껴져 씹을 수 없는 이상한 식감이 그런 거부감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런 내가 마흔이 넘어 내 아이를 마주하고 앉아 있다. 아이는 콩이 너무 싫다고 한다. 자, 나는 무엇이라 답했어야 옳았을까?


"응, 먹지 마. 나중에 다 먹을 수 있어. 그럼 밥만 먹자"


"알았어 엄마"


라고 반갑게 답하는 아이에게 콩은 빼고 밥만 골라 김에 싸서 입에 넣어주며 생각했다. '괜찮아. 이깟 콩 몸에 좋다고 해도 먹기 싫으면 그만이지. 어차피 나중에 크면 다 먹을 텐데'라고 말이다. 아이는 모처럼 자신의 의견이 반영된 엄마의 결정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식사를 끝냈고, 우리는 평화롭게 아침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 안에 저장된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를 내 아이에게는 피해 갈 수 있거나, 최소화해 주는 것으로 이 육아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편식에 대한 변명, 말 같지도 않은 합리화, 그럼에도 오늘 아침 나의 선택은 옳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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