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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Jun 02. 2020

초저녁 잠이 생겼다

생후 43~44개월에 일어난 변화들



하원한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그의 변신로봇을 가지고 놀자 했다.


오랜만에 받은 오퍼라 그러마, 하고 옆에 앉아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우렁찬 성우 목소리로 악당이 되어 아이 로봇과 싸우고 있는데, 놀고 있는 아이의 기분이 영 좋아 보이지 않는다. 아이에게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 물어보았지만, 그 역시 신통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어딘지 평소와 다르게 시무룩하고, 활기차 보이지 않고, 목소리에 힘이 빠진걸 보니 필시 무엇인가 아이 마음에 상처가 되는  일이 주변에서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부모를 속일 수 있는 자식도 없는 까닭이다.


다음날 아이 손을 잡고 등원을 하는 길에 담임선생님을 만나 물어봤다. 혹시 아이가 친구들과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었느냐고. 그러자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아니요~ 아무 문제없이 엄청 활발하게 잘 놀았는데요!'라고 답했다. 결국 나는 전날 아이에게 일어난 변화를 소상히 들려줬다. 그러자 한참 듣고 있던 선생님은 단박에 그 이유를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아~ 어머님! 그건 시하가 졸려서 그런 거예요. 다른 아이들도 요즘 집에 가서 다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해요. 걱정 마세요"


"네? 졸려서라고요?"


그때서야 아이가 우울하게 보였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었지 생각이 났다.




미루고 미루던 정상 등원이 시작되다. 마스크를 끼고 손 소독을 한 후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시간대별로 학부모와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이 이루어졌다. 코로나 19 여파로 늦어졌지만, 2020년부터 이는 새싹반에서 꽃잎반이라는 형님반으로 올라갔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반 이름에서부터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엄마가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동안 아이는 옆에서 새로 배정받은 교실에 있는 장난감을 조용히 가지고 놀았다. 선생님은 올해부터 해당 어린이집에 새롭게 출근하신 분이라 엄마도 아이도, 선생님도 서로가 낯설었지만 모든 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러던 중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네? 이제 낮잠시간이 없다고요?"


깜짝 놀라워하는 내게 담임 선생님은 나보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답한다.


"네 어머님, 이제 꽃잎반부터는 공식적으로 낮잠시간이 따로 없어요. 모두 활동시간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므로 낮잠이불을 보내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가 피곤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담임선생님은 일부 놀다가 졸린 아이들은 낮잠을 자기도 하지만 보통은 놀이나 특별 활동하다가 하원을 하게 다고 덧붙였다.


성장과정에 따라 전문가들이 그렇게 정했겠지 싶어 이내 수긍하고, 초보 엄마는 아이 성장에 심 기 마음 또한 만끽했다. 어느새 낮잠을 자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랐다니 아이가 한결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게다가 주말마다 낮잠이불을 빨아서 보내야 했던 일거리가 하나 더 줄었다는 사실에 만족감이 더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

아이는 처음 며칠을 우울한 얼굴로 잠을 버티다가 겨우겨우 저녁밥을 먹고 씻고 잠에 들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낮잠을 자지 않고 친구들과 모든 에너지를 신나게 불태우는 대신 하원 하는 길에 차 안에서 잠들기 시작했다. 작스럽게 어느 순간 이에게 초저녁 잠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전에는 후 5시 즈음 집에 와서 간식 먹고, 씻고 놀다 저녁을 먹으면 8, 양치하고 8시 30분~40분 즈음 침대로 가서 책을 읽다 9시 30분께 잠에 들었었다. 그런데 아이가 하원길에 잠에 들면서부터는 저녁 8시나 9시가 되어야 깨어나다 보니, 루틴처럼 이루어지던 저녁시간 모든 것들이 뒤로 미뤄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20시~21시에 일어나 무리 빠르게 씻고 저녁을 먹어도 22시!

그 외에는 도무지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 그만큼 나도 밤 시간이 길어졌다. 아이가 잠든 시간에 많은 일을 하던 이전의 소소한 재미는 늦춰졌고, 그러다 보면 내가 먼저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곤히 잠든 아이를 일부러 깨워 씻기고 먹일 수도 없다.




평일의 일상이 이렇게 바뀌었다만 물론 장점도 있다.

차에서부터 잠든 아이를 일단 침대에 눕혀놓고, 재빨리 도시락을 씻어놓는다. 그리고는 아이 옆에 누워 이렇듯 초저녁에 글을 쓰는 일상으로 바뀌었다. 제발 조금 더 잠을 자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낮잠이 없어진 이후로 초저녁 잠이 자리하면서 하루 조금 더 길어졌지만, 이 또한 성장과정이리. 이렇듯 아이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실시간 경험한다는 것은 부모로 살아보는 일종의 성취(?)라 느껴진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귀염뽀짝이 폭발하는 44개월 아이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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