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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다운 김잡가 Sep 06. 2024

[동화] 아기고래 니나

멀고 깊은 바다

둥근달이 유난히 빛나던 밤

커다란 고래 한 마리

부드러운 해초 숲 사이를 뱅글뱅글

물보라가 부르르르

아기고래 한 마리가 포르르르


아기고래 니나는 신이 나서 꼬리를 팔딱였어요.

“그게 바로 나란 말이죠?”

별이 부서져 내린 밤바다에 엄마고래의 자장가가 울려 퍼지면 니나는 마음이 따뜻해져요.

“아무래도 난 달님이 엄마에게 보내준 선물인 것 같아요.”

엄마고래는 커다란 지느러미로 아기고래를 쓰윽 감싸 안으며 말했어요.

“그래, 넌 엄마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이란다.”


니나는 어느새 엄마고래의 배 옆에 착 붙어서 잠이 들었어요.

니나는 엄마의 웅웅대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가장 행복한 그 일을 하고 있지요.


어느 날 아침이었어요.

엄마고래는 니나를 다급히 깨우며 말했어요.

“니나, 우리는 지금 더 멀고 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날 거야.”

“우아! 여행이요?!”

엄마고래는 신나 하는 니나의 입을 막으며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이곳을 벗어날 동안에는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돼. 절대 입을 벌리면 안 돼, 절대로!”

두려워하는 엄마고래의  목소리에 겁이 난 니나는 엄마고래의 배에 착 붙어 헤엄쳤어요.


해초 숲을 지나 한참을 갔을 때, 니나는 바다 위에서 햇빛을 머금고 눈부시게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어요.

그것은 이전에 본 적 있는 조개의 진주 같은 건 아니었어요. 깊은 바닷속 보물선의 보석들도 아니었지요.

니나는 처음 보는 그 빛이 너무 예뻐서 자기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말했어요.

“엄마 저기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앗!”

“니나!”


니나가 정신을 차렸을 때 엄마고래는 슬픔에 잠겨 울고 있었어요.

니나는 엄마를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목이 너무 아파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니나, 넌 인간들이 버린 커다란 플라스틱이 목에 걸린 거란다.”

‘플라스틱?’

니나는 플라스틱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엄마고래는 니나에게 사람들이 만들어 쓰는 플라스틱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어요. 그리고는 니나를 꼭 감싸 안으며 말했어요.

“엄마는 플라스틱을 없앨 수도 없고, 네 목에 걸린 것도 빼줄 수가 없어.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네가 다치지 않게 조심시키는 것뿐이었는데……”

엄마고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어요.

니나의 목에 걸린 플라스틱을 빼내기에는 엄마고래의 지느러미가 너무 커다랬답니다.

니나는 목이 너무 아팠지만 그보다 마음이 더 아팠어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슬퍼하는 엄마의 모습에 눈물이 났어요.


엄마고래는 날마다 니나를 정성껏 돌보았어요.

상어에게 쫓기는 물고기들을 구해주면서 니나의 목 안에 걸린 플라스틱을 빼 달라고 부탁도 했어요.

“구해준 건 고맙지만 혹시 나를 삼켜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니? 미안하지만 그런 무모한 짓은 못할 것 같아…”

아기고래의 입 속으로 흔쾌히 들어가 주는 물고기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답니다.


목 안에 박힌 플라스틱은 시간이 지날수록 니나를 힘들게 했어요.

엄마고래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니나를 보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요.

둘은 날이 갈수록 지치고 야위어갔어요.

니나는 엄마고래의 웅웅대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잠을 잘 때도 예전처럼 행복하지는 않았어요.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니나가 잠이 들고나면 엄마고래는 꾹꾹 눌러 담았던 눈물을 터뜨려 숨죽여 울었어요.

하지만 니나는 엄마가 몰래 울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답니다.

심장소리만 들어도 엄마의 기분을 알 수 있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요?


니나는 사람들에게 점점 화가 났어요. 이렇게 된 건 전부 사람들이 버린 플라스틱 때문이잖아요.

엄마고래가 유독 슬피 울던 날 밤, 니나는 결심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어! 이렇게 아파하기만 할 수는 없잖아!

사람들을 찾아가 따져 물을 테야.

자기들이 책임져야 할 쓰레기를 왜 우리에게 떠넘기는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플라스틱 때문에 왜 우리가 괴로워야 하는지!’


엄마고래가 흐느껴 울다 지쳐 잠이 든 깊은 그 밤에 니나의 모험이 시작됐어요.

‘엄마, 곧 돌아올게요!’


니나는 있는 힘을 다해 헤엄쳤어요. 지나가며 마주치는 바다친구들은 모두 니나를 말렸지요.

“얘야, 그곳은 위험하단다.”

“사람들은 정말 나빠. 잡히면 큰일 나!”

“동물원에 잡혀가기라도 하면 어쩌니…”

“사람들을 찾기 전에 상어에게 잡아먹힐지도 몰라!”

하지만 누구도 아기고래의 모험을 막을 수는 없었답니다.


낮에는 해님이 밤에는 달님이 니나가 가는 길을 비춰주었고, 파도는 니나가 헤엄칠 수 있게 도와주었어요. 이따금씩 바람이 다가와 지친 니나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어요.


이윽고 플라스틱을 처음 본 곳에 다다랐어요.

햇빛을 머금은 플라스틱들이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어요. 니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굳게 닫고 더 힘껏 헤엄쳐 나갔습니다.


익숙한 냄새가 나는 해초 숲을 지날 때쯤, 니나는 너무 지쳐있었어요. 점점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그때였어요. 니나의 머리 위로 어마어마하게 큰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딱 멈추어 섰어요.

그리고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지요.

“조이! 이리 와서 좀 보렴!”

갑자기 물고기들이 황급히 도망치며 니나에게 소리쳤어요.

“아가, 어서 피해야 해! 이건 사람들의 배야! 사람들은 아주 나쁘단다!”

“나쁘지, 나빠! 사람들은 모두 나쁘지!”

겁에 질려 도망가는 물고기들을 보는 순간 용기에 가득 찼던 니나도 덜컥 겁이 났어요.

하지만 니나는 지느러미 하나 꼼짝 할 수가 없었어요. 한 소녀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거든요.

말로만 듣던 ‘나쁜 사람’은 아주 아주 작았어요. 얼마나 무시무시하기에 저렇게 작은데 다들 벌벌 떠는 걸까요?

니나는 온몸이 얼어붙어서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긴 여행에 너무 지쳐 더 이상 헤엄칠 힘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나쁜… 사람이다…!’

니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답니다.


니나가 눈을 떴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어요. 니나는 이곳이 바다가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어요. 평생 맛보고 느꼈던 바다냄새가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그곳은 굉장히 비좁았어요. 


낯선 곳을 둘러보던 니나는 바다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소녀와 다시 눈이 마주쳤어요.

“아빠! 아기고래가 깨어났어요!”

니나는 겁이 나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서 따져 물을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소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어요.

“아기고래야 안녕? 몸은 좀 어떠니?”

니나는 기분이 영 좋지 않았어요.

‘쪼그만 게 누구한테 아기라고 하는 거야?’

니나는 고개를 휙 돌렸어요.

“어머! 너, 인사도 할 줄 아는구나!"

니나는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소녀를 노려보았어요.

“이거 고맙다는 눈빛인거지? 그렇지?

역시! 난 처음부터 우리가 잘 통할 줄 알았다니까!"

소녀는 니나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다시 재잘거리기 시작했어요.

“넌 아기고래인데도 엄청 크구나!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아기고래를 가까이에서 보다니 정말 꿈만 같아!”

소녀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뚫어지게 바라보자 니나는 갑자기 심장이 쿵 내려앉았어요.

‘혹시…… 내가 너무 예뻐서 동물원으로 데려가면 어쩌지?’

니나의 두려운 마음을 알 리 없는 소녀는 계속해서 말을 했어요.

“우리 아빠가 네 목에 걸린 플라스틱을 빼주셨어. 한 번 볼래?”


소녀의 두 손에는 뾰족하게 찢겨 나간 커다란 플라스틱 조각이 들려있었어요.

그때서야 니나는 목이 아프지 않고 몸도 한결 가뿐해졌다는 걸 느꼈어요.

니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참 이상하다…… 나쁜 사람들이 왜 나를 도와주었을까?’


소녀는 니나의 시선을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재잘거렸어요.

“나는 조이. 여덟 살이야. 아빠가 그러시는데 네가 조금 더 동생이래.

우리 아빠는 고래박사님이야. 아빠와 처음으로 항해를 하던 중에 널 만난 거야.

이것보다 더 완벽한 행운이 또 어디 있겠어?

그런데 넌 날 보자마자 기절을 해버렸잖니? 나 정말 너무 속상했어.

아기고래가 깨어나게 해달라고 내가 얼마나 기도를 했는지 아니?

아마 내가 태어나서 한 기도 중에 제일 간절한 기도였을 거야.”

니나는 끊임없이 재잘대는 소녀의 수다가 귀찮기도 했지만 왠지 듣기 싫지만은 않았어요.


“근데, 너, 엄마를 잃어버린 거니?”

‘아…! 엄마…!’

엄마라는 말을 듣는 순간 니나는 갑자기 슬픔이 밀려왔어요. 엄마 몰래 떠나온 모험 길이 이렇게 이별이 될 줄은 몰랐거든요.

니나는 엄마 생각에 더 이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답니다.

‘내 소식을 들으면 엄마도 금세 기운이 나실 텐데…

내가 다시 엄마의 자장가를 들으면서 잠들 수 있을까…?’

니나는 엄마가 너무나 그리웠어요.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돌아가면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지요. 하지만 지금은 낯설고 좁은 곳에 갇혀 있는걸요.

고래박사님이라는 소녀의 아빠에게 평생 잡혀있게 되는 건 아닐지, 말로만 듣던 동물원으로 가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과 두려움이 몰려들었어요.


그때,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바다에서 정신을 잃기 전 들었던 목소리였어요.

“조이, 우리는 아기고래의 건강이 좋아지면 다시 깊은 바다에 놓아줄 거야.”

'엄마에게 돌아갈 수 있겠구나!'

니나는 순식간에 모든 걱정이 사라졌어요.

이 순간만큼은 자신을 아기고래라고 하는 것이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니나의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차올랐어요.

한편, 소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어요.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거라. 네가 일주일 동안 열심히 보살펴준 덕분에 아기고래가 다시 엄마고래를 만날 수 있게 되었잖니?”

‘일주일이라고?’

니나는 깜짝 놀랐어요. 잠깐 정신을 잃었던 시간이 그렇게 길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소녀의 아빠가 니나의 목에서 플라스틱을 빼내주었고, 소녀는 매일매일 곁에서 간호를 해주었던 거예요.

니나는 소녀와 아빠에게 고마움을 느꼈어요. 자기를 불행에 빠뜨린 ‘나쁜 사람’에게 고마워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에요.

‘사람들이 모두 나쁜 건 아닌 것 같아. 적어도 조이와 아빠만큼은 정말 멋진 사람들인 걸……’


그날 이후, 소녀와 아빠는 니나를 건강하게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 더 열심히 돌보아주었어요. 덕분에 니나는 점점 건강을 되찾아갔어요.

그리고 소녀와도 가까워졌어요, 생각보다 아주 많이요.

니나는 특히 조이의 맑은 웃음소리가 좋았어요. 조이의 웃음소리는 마치 엄마 심장소리를 들으며 잠들 때처럼 기분이 좋아지게 하거든요.


어느 날 밤.

“조이, 내일이면 아기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줄 수 있겠구나.”

“내일이요?”

아빠의 말에 소녀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가득 차올랐어요.

니나도 이번에는 마음이 영 이상했어요. 엄마를 만날 생각에 기쁘고 설레기도 했지만 꼭 그런 기분만 드는 게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아직 어린 니나는 이것이 무슨 마음인 건지 표현할 수가 없었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어느새 니나의 곁을 지키며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작은 소녀, 조이가 좋아졌다는 사실이에요.

니나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어요.


다음날 아침, 바다로 나갈 준비를 마치고 배에 올라탄 소녀가 아빠에게 물었어요.

“아빠, 내가 아기고래랑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럼! 너희는 친구잖니.

친구는 언제 어디서든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단다.”


소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성큼성큼 아기고래에게 다가갔어요.

“너랑 헤어지기 싫지만…

그래도 네가 바다로 돌아갈 수 있게 돼서 기뻐.

너와 함께 한 시간들, 정말 행복했어."

소녀는 꾸역꾸역 말을 마치고 와앙- 울음을 터뜨렸어요.

니나도 주르르 눈물을 흘렸어요.

‘조이, 사랑스럽고 따뜻한 너의 웃음소리를 꼭 기억할게.’


깊은 바다에 달빛이 스며들 무렵, 익숙한 바다냄새가 나는 익숙한 해초 숲 근처에 다다랐어요.

니나가 평생 맛보고 느꼈던 그 바다에 돌아온 거예요.


첨벙!

커다란 배는 니나를 안전한 곳에 풀어주었어요.

바다로 돌아간 니나는 소녀를 한동안 바라보았어요.

‘조이,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소녀도 니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어요.

‘니나, 멋진 어른이 돼서 꼭 다시 만나자!’


소녀의 배가 점점 멀어져 가요.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져요.


멀고 깊은 바다

둥근달이 유난히 빛나던 밤

커다란 고래 한 마리

부드러운 해초 숲 사이를 뱅글뱅글

물보라가 부르르르

아기고래 한 마리가 포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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