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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쏠라루시 May 15. 2024

음악과 글로 표현하는 세상

피아노 교사에서 글을 쓰는 작가로.



어려서부터 음악과 아이들을 좋아해서 음악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사범대나 교대에 갈 만큼 좋은 성적이 못 되어, 학교 음악 교사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꼭 학교가 아니어도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면 꿈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해본 아르바이트가 음악학원 보조교사였습니다. 이때 나는 음악 전공이 아니었지만,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도 오랫동안 해왔고, 내가 중학생일 때 초등학생들을 가르칠 만큼 교회학교 교사 경력도 많았습니다. 어린 교사 시절 나의 반주에 맞추어 아이들이 노래하고, 나의 이야기에 아이들이 재미있게 반응하며 듣는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저는 조금 어렵고 힘든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 두 분의 관계는 좋지 않아 매일 큰 소리로 싸우는 소리를 들어야 했어요. 부드러운 말투, 칭찬, 사랑의 말들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여기며 자랐습니다. 어쩌면 제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밝은 미소를 보며 대신 보상받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비록 나는 듣지 못하고 컸지만, 대신 내가 많이 해주겠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한테, 가족한테 따뜻한 말을 듣고 자라는 친구들이 부러웠거든요. 저와 같은 아이들이 있다면 내가 대신 해 줄게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따뜻한 말, 이해하는 말, 사랑하는 말, 부드러운 말, 인정해 주는 말’


나에게서 나오는 이런 말을 듣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저 역시 행복해집니다.    

       

어쩌면 저는 내가 행복해지고 싶어서 아이들을 예뻐하고 사랑했나 봅니다. 떠들고 웃는 아이들의 소리, 함께 피아노 치고 노래하는 모습. ‘선생님~!’하며, 나를 따르고, 나를 사랑해 주는 그 순수한 마음을.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아이들을 사랑한 것 보다, 아이들에게서 받은 사랑이 더 큽니다. 봉사하는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봉사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위로받았다는 그 말이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음악학원 보조교사로 시작한 일이 반을 맡아 관리하는 담임교사가 되고, 원장님을 대신해서 전반적인 관리를 하는 주임 교사까지.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내 평생 직업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에게 이보다 더 잘 맞는 직업이 있을까요? 친구들도 항상 말합니다. 


‘미정아, 피아노 교사가 너한테는 천직인 것 같아.
우리 중에 네가 제일 행복해 보여.’     


20대 초중반 나이의 친구들은 학업과 취업으로 고민이 많습니다. 그들 눈에 이런 내가 마냥 행복해 보이나 봅니다. 저도 인정합니다. 나의 일이 즐겁고 좋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항상 좋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고급반 아이들을 가르치려니 레슨에 한계를 느끼게 됐어요. 전공자로서 더 전문가답게 가르치고 싶어졌습니다. 피아노 치며 마냥 즐겁기만 한 애송이 교사에서 좀 더 성숙해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학교를 알게 되었어요. 일반대학보다는 등록금 부담이 적었습니다. 신학 대학 피아노 전공으로 바로 입학을 했습니다. 그 덕에 4년제 음악학사를 취득하게 되었고, 졸업 후 독일에 다녀오는 경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전공자로서 당당히 개인 레슨 위주의 수업을 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직원이 아닌 나의 교습소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내 학원에서는 피아노뿐 아니라 음악감상과 노래 수업, 리듬악기 리코더 합주 수업까지. 다양한 특강과 함께 듀엣 연주도 많이 했어요. 음악은 어렵고 힘들게 배우는 게 아닌 즐겁고 행복한 일인 것을 느끼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교사가 행복해 하니 행복 바이러스는 동네에 점차 퍼져나갔어요. 학원 주변에 많은 아이가 우리 학원을 오고 싶어 했습니다.      


처음에 몇 번은 교회나, 연주 홀을 대관하여 연주회를 했습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연주회였지요. 그러다 점차 욕심을 내게 됐습니다. 연주자와 그 가족들만 함께하는 연주회보다는 많은 사람을 오게 하는 특별한 연주회를 해보겠다고요. 한 번은 그랜드피아노가 있는 큰 카페를 빌려서 컨벤션 파티처럼 했어요. 예쁘게 음식도 차려놓고 동네 사람들, 친구들 누구든 올 수 있는 연주회를 기획했습니다. 물론 대성공이었지요. 평생에 기억될만한,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며, 아이들과 학부모님 모두 좋아했습니다.

      


예쁘게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고 무대에 서는 아이들.맛있는 음식 먹으며, 구경하는 친구들과 가족들. 행복 바이러스는, 더 많이 퍼져가서, 모두 모두가 즐거운 연주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행복 바이러스를 잡아먹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집어삼켰습니다. 

마음에 가득했던 행복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니, 삶의 의욕마저 잃게 되었습니다. 

두려움과 조바심이 앞섰습니다. ‘내가 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피아노’ 이 일은 내 삶의 전부였습니다. 생각이 멈추었고,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학원 운영은 계속 유지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2~3년간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미래를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까지 엉뚱한 곳에 혹해서 돈을 많이 써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1인 기업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둥 퍼스널 브랜딩을 해야 한다는 둥 주변에서 여러 소리들이 있었어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만 쳐지고 있는 것 같아. 조바심과 두려움은 나를 더 궁지로 몰아갔습니다. 소위 말해 FOMO가 온 거지요. 트랜드에 뒤처지는 것 같아,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온 몸을 휘감았어요.      


30대 초반. 지금 코로나로 겪는 우울감만큼이나 마음이 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그 생각은 진심이 아니었는지 살고 싶어서 마음 치료, 심리에 관한 책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살고 싶어서 독서하게 되었고, 코로나로 우울해진 시기 역시도 책을 찾게 되었습니다.

      

나의 커리어가 무너지고, 생계 수단이 끊기는 게 두려웠던 나는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심리 책이 아닌 성공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다시 자신감을 느끼게 해주는 책들이 많아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허황한 생각마저도 커졌습니다.      

책을 보다, 강의도 찾아보게 되고, 그러다가 온라인 비즈니스라는 걸 알게 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 건지. 마치 불나방처럼 뭔지도 모르고 미친 듯 뛰어드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하와를 꼬시는 뱀처럼.

‘이것만 먹으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져 지혜를 갖게 돼’


‘이것만 배우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돼’ 나를 유혹하는 손길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방황하고 헤매다가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무얼 좋아하는지 찾게 되었습니다.     

 






조용히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마구마구 수다 떨 이야기들을 글로 쓰는 것이 재밌습니다. 그런데 혼자만 이야기하면 좀 재미가 없기도 해요.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고 반응하면, 신이 나서 즐거운 수다를 떨 듯 글을 써나갈 것 같습니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 봅니다. 내가 피아노 교사로 살아온 경험과 새로운 돌파구가 되어줄 글 쓰는 일. 글을 쓰다 보니 내 안의 불안과 초조함도 사그라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아이들과 지내온 많은 에피소드. 그 안에서 깨닫고 배운 것들.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 후반에서 겪게 되는 경험을 연재하며 기록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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