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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쏠라루시 May 15. 2024

다시, 피아니스트로의 길을 가다

나는 피아노 교사이자, 글 쓰는 작가입니다.


내 본업은 피아니스트입니다. 


학벌에 대한 자격지심과 낮은 자존감에 누군가가 나를 피아니스트라 부르면 매우 부끄러워했습니다. 

‘나는 피아니스트가 아니에요. 그냥 피아노 치는 사람이에요.’가만히 있어도 됐는데, 왜 굳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했을까요. 지금은 이런 말을 했다는 나 자신이 참 부끄럽습니다.     

어려서는 누구든 옆에 앉혀놓고,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합창단, 성가대, 성악, 기악 많은 팀의 반주를 하기도 하고, 피아노 치는 것이 즐겁고 좋았습니다. 피아노를 칠 때 온전히 피아노와 나만이 있는 그 상태가 좋았습니다. 피아노와 함께 할 때만이 비로소 내가 되는 것만 같았어요.      

이런 제가 그 좋아하던 피아노를, 코로나를 핑계로 한동안 거의 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아는 선생님께서 같이 듀엣 연주하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습니다. 갑자기 잡힌 연주라 독주는 부담되고, 듀엣 해줄 파트너가 필요한데 다들 기간이 짧아 거절했나 봅니다. 다행히 저는 초견이 좋은 편이라 연주할 곡을 보니 쉽게 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연주할 행사는 이러했습니다. 


인천 한 지자체에 명사를 초대하는 예정된 지역 행사가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이기도 했고, 당선된 의원이 이 행사에서 감사 인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담당 공무원은 더 잘 준비해야겠다는 부담이 컸을 테고, 지역 아티스트를 초대해서 오프닝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마침 국제문화예술협회가 검색되었고, 해마다 자선공연을 한 이력이 있는 클래식 연주팀이라 섭외가 들어온 거죠. 이 협회는 모두 음악 전공자들로 구성되어 운영되는 음악전문 협회입니다. 협회장 역시 박사과정의 연구하는 피아니스트입니다. 이 선생님과 제가 우연한 기회로 듀엣 연주한 인연이 있어, 제게 연락이 오게 된 것입니다.      



한동안 ‘나는 온라인 비즈니스를 해볼 테야, 작가로 살아볼 테야’ 하던 중 피아노 연주가 새삼 새로운 이벤트로 다가왔습니다. 아마도 제게 피아노는 운명 같은 것인가 봅니다. 코로나 그 긴 시간 동안 피아노 앞에 앉지도 않았던 제가 그런 제의가 들어오자 마자 어떤 반응을 보였게요? ‘우와! 재밌겠다. 네, 선생님 같이 해요’. 부담이 아닌 즐거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피아노를 좋아했는데, 생계 수단이 되니 예전만큼 사랑하지 않게 되었구나.’ ‘그래, 먹고 사는 건 다른 걸로 해결하고, 예전처럼 음악을 즐기며 살아야겠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피아노 연주라는 이벤트가 방황하던 내 머릿속을 정리해 주었습니다. 


사실 살이 쪄서 드레스도 새로 사야 했어요. 대여하는 거랑 구매하는 거랑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서 어울리는 거 한 벌 사서 몇 번 입고는 합니다. 헤어에다 메이크업까지 하려면 비용 부담은 됐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특별한 즐거움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버리지 말자. 즐기자.





인생은 감동과 좌절의 연속



나이 40 중반이나 되었는데, 이제야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깨닫습니다.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그 무엇에 압박당하며 살았을까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삶에 눌려 좋아하는 것을 자주 잊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을 롤러코스터에 비유하곤 하죠. 동감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시절을 보내다가도 우울과 좌절의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고요. 반평생을 살아보니 알 것 같습니다. 인생은 원래 그런 거인 것을. 어려서는 처음 겪는 일들이라 크게 감동하고, 크게 좌절했다면, 이젠 어떤 순간이 찾아와도 매우 놀라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즐기며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나이 많이 든 어르신들은 초연해지나 봅니다. 삶의 희로애락이 다져지고 다져져서.        





  




연주곡 그리그의 노르웨이 춤곡 Op.35




다시 연주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가 어떤 곡을 연주했는지 소개해 봅니다.

우리가 연주한 곡은 그리그의 노르웨이 춤곡 Op. 35, 1, 2악장을 연주했습니다. 이 곡의 2악장은 아기를 위한 음악이나, 태교 음악으로 유명합니다. 2악장을 들어보면 모두 ‘아~ 들어봤어’ 하실 거예요.  첫 주제부는 깜찍하고 귀여운 느낌을 주지만 중반부는 격렬하고 신나게 움직임이 있는 곡입니다. 


반면 1악장은 첫 시작이 심상치 않습니다. 고음과 저음을 옥타브 3연음 리듬으로 시작하는 것이 마치 장엄한 서사를 알리는 나팔 소리 같기도 합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빠르고 경쾌한 리듬과 멜로디는 한껏 무르익은 축제 같습니다.      


오프닝 무대이기도 하고, 다른 연주자도 있어서 노르웨이 춤곡 1, 2악장만 연주했어요. 하지만 이 곡은 모두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4악장 모두 지루할 틈 없이 집중하여 듣게 만드는 재미있는 곡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0분이라 네 악장을 다 연주하지 못한 게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있겠죠? 





피아노는 나의 운명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우연히 찾아온 피아노 연주라는 이벤트. 

이 글을 쓰면서 피아노 연주에 흥분되고 설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네요.      



아하….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작년 가을에도 겨울에도 연주 제의는 끊임없이 있었네요. 강퍅한 제가 거절을 했던 거였어요. 내 마음의 문이 닫혀있다가 이제 조금 열어가고 있습니다.   

    

나를 받아들이고, 용서한 것만 같습니다. 

다행이에요. 다시 피아니스트로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던 것을 버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를 새롭게 살고 싶어 하는 나.


그 새로움은 내가 해보지 않은 무에서 유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 내가 해 온 것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인 것을 깨닫습니다.

내가 가진 것, 내가 해 온 것, 나다운 것. 그것을 벗어나서는 행복해질 수 없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수필집 중에 인생을 축구에 비유한 책이 있습니다. 책 제목은 “45분 인생 후반부 진행시켜”입니다.

제목이 비유를 썼지만, 참 직관적이죠? ㅎㅎㅎ 이 책의 프롤로그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축구라는 스포츠는 인생과도 닮았다. 
하프타임이 팀의 후반전 경기 성과와 계획을 반성하는 것처럼, 

45세는 인생의 상징적인 중간 지점이자 과거를 반성하는 시간이 된다. 

또 경험한 삶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경험한 삶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전환점’ 제2의 인생 사춘기를 겪듯 저는 하프타임의 시점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고 성인으로 성장하듯 나 역시 이전보다 더 멋진 제2의 인생 후반부를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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