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순간마다 [역대하 22:1-12]
(아하시야가 예후에게 살해되자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는 유다의 왕족을 모조리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됩니다. 이런 위기에도 하나님은 다윗 왕조를 보존하십니다.)
#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 절체절명의 절망적인 위기에서도 희망과 기회를 주시는 분.
- 우리 삶을 희망으로 이끄시는 분.
- 낙담할 만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살리시는 분.
# 나에게 주시는 교훈은?
- 성경 본문에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더라’
- ’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요 ‘
- ’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
- ’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그가 패망하게 하는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 같이 악을 행하였더라’
- ’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싸우더니 ‘
- ’ 요람에게 가므로 해를 입었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예후를 맞았으니 그는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으시고 아합의 집을 멸하게 하신 자’
- ’ 예후로 하여금 아합의 집을 심판하게 하실 때에‘
- ’ 아하시야는, 숨었더니 예후가 찾으매 무리가 그를 예후에게로 잡아가서 죽이고, 장사하였더라 ‘
- ’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 ’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몰래 빼내어, 숨겨, 피하게 하였으므로 아달랴가 그를 죽이지 못하였더라’
- ’ 요아스가, 하나님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
- 위 본문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하나님의 복을 누리려면 악하고 오만한 죄인의 길에서 떠나야 한다.
- *나는 누구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는가? 그 길이 나와 이웃을 살리는 방향이 맞는가?
- *나의 삶은 자녀들(이웃)에게 하나님을 가르치는 거울입니까?
- *친분이나 관계 때문에 불의한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 죽음이 드리워진 절체절명의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요아스를 살려, 언약인 다윗 왕조를 보존하신 하나님을 보면서.
- ’ 하나님과의 언약’에 관한 무게와 중요성에 대한 고찰과.
-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이로움이 든다.
- 그리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 나의 지난날에 하나님께 무심결 또는 치기심에 ’ 서원 기도‘를 한 거 아닐까?
- 했다면 무슨 ’ 서원 기도’를 했을까?
- 나는 깜빡하고 잊고 있던 그것을 ’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지키실 텐데?’
- 초등부 성경학교 시절의 나는 한때 장래희망으로 ’ 목사님’을 희망했던 적이 있다.
- 그래서 더 두렵다.
- 지금의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 그 어린 시절의 나는 도대체 어떤 ’ 서원 기도’를 하였기에…
- 지금은 도저히 기억이 안 나는데…
- 살다 보니 살아보니 살아가니 그렇다.
- ‘고되고, 돈 못 벌고, 노후 걱정해야 하고, 감정 노동의 최고봉‘인 ‘목사’는 나의 잡플랜에는 전혀 없다는 거.
- 그런데 그게 지금은 반반으로 변했다는 거.
- 그래서 50세 전후로 그 이전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여 목회든 재단이든 후원자든 일반 성도로든 뭐라도 되자라고 마음을 먹은 것 말이다.
- 이성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아도 ‘미친 짓‘이고 ’ 미친 생각‘이라는 게 끊임없이 들지만.
- 머릿속에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긴 해도.
- 가슴이 아리고 슬프고 괴롭고 그런 부정적인 감정은 전혀 없이
- 그저 평온하다.
- 그 이유가 뭘까? 사실 잘 모르겠다.
- 지난날 모교 시절부터 적당히 구역장으로 봉사했고, 총무단으로도 봉사했으면 되었지.
- 본교에서 제자훈련 상반기 이수하고 하반기 진행 중이며.
- 내년도에 1년여 기간의 사역반 할 생각 정도면 되었고.
- 그 이전 모교에서부터 국내 선교 하였지.
- 올초 겨울과 올여름에는 본교에서 해외 선교 했으니.
- 그래도 평신도로서 할 만큼 해보았다 생각하는데.
- ’ 텐트메이커‘를 꿈꾸는 나.
- ‘나의 이상적인 꿈’ 가운데 하나인 ‘텐트메이커’.
- 전혀 낭만적인 삶도 아니고 오히려 평범한 직장인보다 더 치열하게 내 시간 없이 갈아 넣어서 살아가야 할 게 뻔히 보이는데.
- ‘설렘’을 느끼는 건 뭐지.
- ‘꿈’이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막연한 망상, 공상, 그저 헛된 것.
- ’ 현실’이 아닌 ‘허구’이기에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건데.
- 그 ’ 꿈‘이라는 것. ’ 희망‘이라는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게.
- 나 같은 INFP에게는 ‘살아가는 힘’이자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한국나이로 40인 나는. (사실 빠른 87이라 39이지만.. 05학번이라 족보 꼬이기 싫다.)
- ’ 작가(드라마/영화/소설/웹소설)’라는 ‘꿈’.
- 그 ’ 꿈‘을 베이스로 ’ 텐트메이커‘라는 꿈.
- 그럼 ‘노후‘는?
- ‘텐트메이커’로서 ‘작가’의 수입으로 노후 준비가 안되었다면..
- 나이 60세~70세 넘어서 ‘정신병동’ 또는 ‘요양병원’ 간호사로 일하면 된다.
- 고령을 넘어 초고령인구 사회의 일원일 나에게.
- ‘간호사 면허증‘은 파지를 줍기 위해 출혈 경쟁을 하지 않게 하시려고.
- 지난날의 나에게 ‘하나님께서 부어주셨던 작은 계획’이 아니었을까?
- 사실 예전에는 안정적인 연금과 정년 보장이 되는 ’ 소방공무원 구급대원‘이 꿈이었기에.
- 달려왔으나.
- ’ 하나님의 빌드업’을 통해 30대 후반에 ’ 나의 세계‘가 무너졌다.
- 그래서 지금은 ’제2의 인생, 삶’이라고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 남들처럼 평범하게.
- 적당한 나이에.
- 적당히 벌어가고 모아가며.
- 살아가고 싶었다.
- 캠퍼스 커플, 사내 커플, 교회 커플, 소개 커플 등.
- 길어봐야 3~6개월 이내의 텀 안으로는 연애도 지속적으로 하고.
- 30 초반에 연봉 5천을 찍고.
- 많은 수입은 아니지만 통장에 500만 이상도 찍어가며.
-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도 있었지만.
- 요 3년여 전부터 해서
- 올초에는 ’ 나르시시스트’인 줄 몰랐던 사람에게 뒤통수 제대로 맞기도 하고.
- 운영하던 쇼핑몰 경영악화로 파산도 겪어봤고.
- 그로 인해 ‘사람’ 자체가 무너져서.
- 2년여의 결혼 생활도 끝이 났다.
-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다.
- 잘 다니던 건설회사 그만두지 않았다면.
- 결혼식 올리고 바로 혼인신고를 했었다면.
- 혼인신고를 하고 1년~1년 반 이내 목표로 출산 계획을 잡았다면.
- 쇼핑몰 사업 자리 잡기 전까지 2~3년은 출산 계획을 미루자고 하지 않았다면.
- 파산 절차 과정 가운데에 혼자만의 동굴로 어둠으로 심연으로 가지 않았다면.
- 나도. 그 사람도. 그리고 나와 그 사람과 관련된 주변 분들께도 슬픔과 아픔, 분노, 괴로움 등.
- 피해를 드리지 않았을 건데.
- 지금쯤 퇴근해서 육아 도와주고.
- 같이 육퇴 해서 넷플릭스 보면서 치킨을 뜯을 텐데.
- 더 잘살아보겠다고.
- 이게 돈이 된다고.
- 당장의 돈에 눈이 멀지 않았다면.
- 처절하게 무너졌을 때 하루라도 빨리 ‘내 안의 어둠’이 아닌.
- ‘주님’께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힘을 달라고 바라봤다면.
- 어땠을까도 싶다.
- 지금은 간간이 그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는다.
- 서로의 일상 등 안부도 묻고, 같이 키우던 강아지 양육비용을 건네주기도 하고.
- 서로의 기도 제목을 듣고 중보 해주기도 한다.
- 파산으로 인해 ’ 나는 무너졌고’.
- 그러한 나로 인해 ’그 사람 또한 무너졌다 ‘.
- ’ 3년’여의 시간이 되어간다.
- 연애 때부터.
- 부부였을 때까지.
- 해주지 못한 것들.
- 상처 주었던 모든 것들.
- 그것들이 더 많고 컸기에.
- 미안하고.
- 또 미안하고.
- 그저 미안하다.
- ‘좋은 사람‘이었는데.
- 나로 인해 ’ 심신’이 ‘영육’이 모두.
- 상처를 입었고.
- 무너졌고.
- 아프게 했던 것들 모두.
-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 ‘하나님’께 정말로.
- 감사하다.
- 내 나이 50대, 60대 또는 7~80대가 아닌.
- 30대 후반에.
-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들 중 여러 개를.
- 두드려 맞게끔 하신 것에 감사하다.
- 나이 들어서 두드려 맞으면.
- 과연 나는 일어날 수 있었을까?
- 일어나기야 하겠지만.
- 지금 만큼의 회복은 어렵지 않았을까?
- ’ 고난‘, ’ 광야‘, ’ 아라비아’ 가운데서도 나와 함께 계시며.
- 동행하시는 주님.
- 주님의 섭리 안에서.
-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기에.
- 정말이지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어도.
- 모두 역사하시기에.
- 때로는 두렵기도 하지만.
- 때로는 기대되기도 하다.
- 사실 아무리 힘들었어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 ‘개 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말처럼.
- 한 번 사는 인생.
- 기껏 스스로 목숨 끊어야 한다는 이유가.
- 그깟 돈 때문이라면.
- 억울해서 눈을 과연 감을 수 있을까?
- 원래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다.
- 근데 나만 힘든 것도 아니고 원래 다 힘들다.
- 행복이 삶에서 10~30%이고.
- 불행과 고난이 삶에서 70~90%라도.
- 저 작은 찰나의 행복이라는 과일을 맛봤기에.
- 다시 저 ’ 행복’이라는 과일을 맛보고 싶다는 ‘꿈‘.
- 그 ’ 꿈’이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 ‘하나님’은 기회를 주시는 분이다.
-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끄시는 분이다.
- ‘사람’은 나약하다. ’나‘와 ’ 우리‘도 나약하다.
- ’ 나의 세계‘가 무너지고.
- 다시 맞이한 ’ 세상‘과 ’ 교회’ 공동체를 보면.
- 참 재미있다.
- 다양한 사람이 산다.
- 이효리가 이상순에게 이런 조언을 받아서 행한다는 것이 있다.
- ‘사람은 원래 이상하다고 생각해라 ‘.
- 그러다 보니 나중에 ’ 좋은 사람’이면 좋은 거고.
- 역시 ’ 이상한 사람’이었다면 알고 있었으니 역시나고.
- ’ 시절인연’에 집중하는 ‘나‘는.
- 지금의 시공간 안에서 ’ 이상한 사람‘들을 본다.
- 아주 잘 본다. 생각 보다도 너무 많다.
- 최근까지 ‘저 사람은 왜 나잇값을 못하나?’.
- 싶었지만.
- 지금은 이효리가 활용하는 이상순적 사고방식에.
- 추가로.
- ‘저 사람은 아픈 사람이다 ‘.
- ‘많이 아픈데, 고쳐지지 않는 사람이다’.
- ’ 정신병동‘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많이 봐왔던.
- ’ 알콜릭‘ 등 무수한 정신질환 환우분들이.
- ’ 상태 호전‘ -> ’ 퇴원‘ -> ’ 유지 실패’ -> ‘재입원‘의 반복처럼.
- 어차피 말해줘도 귓등으로도 안 들을 거고.
- 잠시 개선을 한다 해도.
- 결국 반복할 것이라는 것을.
- 사람은 절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처럼.
- 말이다.
- ‘원래 그런갑 보다 ‘라고 생각하던 나는.
- ’ 아픈 환자다’.
- ‘정상이 아니다’.
- ‘정상인의 범주로 생각하지 말자 ‘.
- 그러니 ’ 병동에서 환자 대하듯이 대하자’.
- ‘감정을 넣지 말자 ‘.
- ’ 깨진 밑 빠진 독에, 나의 감정을 쏟아부어 넣지 말자 ‘.
- ’ 지속적으로 채우고 공급되는 나의 감정과 사랑을‘.
- 선한 영향력으로.
- 다른 이들에게 온전히 채워서 보내주자.
- 그래서 ’나‘에 더 집중하기로.
- ’ 부어주시고, 채워주시는’.
- ‘주님’께 더 집중하기로 하였다.
- 어차피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 ’ 주님‘만이 ’ 주님의 때’에 사람을 변화시키신다.
- ‘나‘와 ’ 우리‘는 ’ 주님‘께 집중해야 한다.
- ’ 내가 걸어온 삶, 신앙생활‘ 그 모든 게.
- ’ 주님’ 안에서의 것이다.
- 지난 ’ 광야‘에서의 시간들로 비록 남들보다.
- 잃은 것이 더 많고 이루지 못한 게 더 많을지라도.
- ’ 모세‘와 ’ 바울‘의 아라비아 반도에서의 시간들처럼.
- ‘나’라는 원석을 겸손하게 하고자.
- 애정을 가지시고 조금이라도 더 다듬으시려 하신.
- ‘주님’의 그 깊은 ’ 사랑’을 생각하면서.
- 다시금 주실 기회들을 생각하며.
- 그것이 ’ 만남‘ 이든, ’ 물질‘ 이든, ‘건강’이든, ’ 가정’ 이든, ‘직장’ 이든, ‘꿈’ 이든.
- ‘언약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