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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 25.10.13. 월.

버리고 버려진 요아스 [역대하 24:17-27]

by 김모찌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는 하나님을 버립니다. 그 결과 하나님도 그를 버리십니다. 그는 은인인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성전 뜰에서 죽일 정도로 타락합니다.)



#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 진노하셨지만,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분.


-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께 버림받는다 ‘고 경고하시는 분.


- 불편함이 우리를 깨우칠 계기가 되길 바라며 계속 말씀하시는 분.


- ’ 여호야다‘처럼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는 존중하시는 분.


- ‘말년의 요아스‘처럼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는 멸시하시는 분.



# 나에게 주시는 교훈은?


- 성경 본문에서 ‘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 ’ 우상을 섬겼으므로 ‘


- ’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 ‘


- ’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 ’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 ’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


- ’ 일 주년 말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고 올라와서, 모든 방백들을 다 죽이고 노략’


- ’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들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 ’ 요아스가 크게 부상하메 적군이 그를 버리고 간 후에 그의 신하들이, 반역하여 그를 그의 침상에서 쳐 죽인지라 ‘


- ’ 그의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죄에서 돌이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 *성숙한 사람의 지도를 받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실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 *언제까지나 그에게 의존할 수 없습니다.


-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자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 *잘못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한다고 권력, 혹은 폭력을 동원해서 그 사람을 제거하려 든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내가 틀렸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 위 본문의 내용을 간단하게 비유를 하자면.


- ‘ 반지의 제왕‘ 작중 ’ 로한’의 왕 ’ 세오덴‘은 간신 ‘ 그리마‘를 통한 ‘ 사루만’의 주술로 인해 정신줄을 놓고 피폐하게 있다가 ‘ 간달프’에 의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 위 영화의 경우처럼 ‘ 하나님‘ 께서는 악한 신하들로 인해 하나님을 저버린 ‘ 요아스‘ 또한 마찬가지로 ‘ 스가랴’를 보내어 경고하시며 돌이킬 기회를 주셨으나.


- ’ 조선’의 ‘ 태조 이성계‘가 아들인 ‘ 태종 이방원’이 보낸 사신들을 죽이거나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았던 ‘ 함흥차사’의 사례처럼.


- ‘ 하나님의 경고’가 듣기 싫었던 ‘ 요아스‘는 오히려 ’ 스가랴‘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죽이며 ’ 경고’와 ’ 돌이킬 기회’를 저버린 것이다.


- 그 이후에는 하나님의 ‘정의 구현‘으로 요아스 또한 ‘ 비참한 죽음’에 이른다.


- 문득.


- ’ 서울의 봄‘에서 황정민 배우가 찰지게 하였던 대사가 떠오른다.


-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 근데.


- 그 상대가 강하고 쌔도 너무 초월적인 존재인 게 문제이다.


- ’ 하나님’ 앞에서 감히?


-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 할 거 아니냐 이 말이다.


- 한 때 유행했던 인터넷 밈 단어를 빌리자면.


- ‘ 능지 수준’ 박살이 아닌가 싶다. (지능 수준)


- ‘ 하나님’의 역사를 ‘ 요아스‘ 그 당사자 또한 분명 직접 겪어봐서 알 텐데.


- ’ 다윗 왕조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지키심으로.


- 죽을 목숨인 자신을 건지시고 왕으로 세우신 이가 바로 그 ’ 하나님‘인데.


- 여호야다의 죽음 이후의 요아스의 행보는 정말로 비상식적이라고 보이지만.


- 요아스의 그러한 선택과 결말의 가장 큰 본질은.


- 요아스 그 자신이 곧 ‘ 왕‘이었기에.


- 자신의 ’ 왕’ 자리를 포함한 세상 그 모든 것의 ‘ 주인’이신 ’ 하나님‘을 망각하고.


- ’ 왕인 자신’을 본 것이다.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 예전에는 순하고 정감 있던 사람인데, 높은 자리에 올라가더니 사람이 거만해졌다는 둥.


- 사람이 달라졌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고는 한다.


-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지만.


- ’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우리는 ’ 학업‘, ’ 직장’, ‘ 이사’ 또는 ‘ 낙심하고 상처받아’ 교회를 옮기는 경우가 있어서.


- 새로운 교회를 알아볼 때 ‘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 그 교회의 ‘ 목사님’이 누구인가가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 ’ 목사님‘ 한 분을 보고.


- 가까운 거리의 교회를 마다하고 30분 ~ 1시간여 거리라도.


- 기꺼이 찾아간다.


- 교회의 문화, 시스템, 거리.


- 모두 중요하긴 하지만.


- 교회 담임(당회장)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제일 중요하게 본다.


- 예배 시간에 드리는 ‘ 찬양’과 ‘ 기도’는 온전히 나의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 예배 시간에 받는 ’ 설교 말씀‘은 전적으로 ‘ 목사’님의 입을 통해


- ‘ 성도’에게 일방향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 말씀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 성도’의 입장에서 ‘ 목회자‘의 존재감은.


- 매우 크다.


- 전 세계적으로 좋은 목회자분들이 정말 많지만.


- 특히나 우리 대한민국에는.


- 주님께 크게 쓰임 받는 목사님들이 정말 많다.


- 그래서 미국과 더불어 우리는 큰 축복을 받은 것인데.


- 문제는.


- ’ 여호야다’처럼 하나님을 존중하는 목사님들뿐만 아니라.


- ’ 초심을 잃은 말년의 요아스‘처럼 하나님을 멸시하는 목사님들도 계시다는 것이다.


- 몇 가지만 뽑자면.


- 성추문(희롱, 추행, 폭행 등)을 행했거나 하고 있는 목사.


-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목사.

(교회 공금 횡령, 땅투기, 각종 비리, 지나치게 무분별하고 과도한 각종 헌금 강요)


- 자녀에게 교회 세습을 하는 목사.


- 극우/극좌 집회 주도 및 참여, 지지하는 목사.


- 무속신앙 정권에 협조했던 목사.


-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는 목사.


- 세상과 교회의 많은 낮은 자들을 바라보지 않는 목사.


-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 목사.


- 선교하지 않는 목사.


- 사명감과 진실함, 콜링이 없이 입시 점수에 맞춰 신학대학/대학원 진학 후 할 게 없어서 안정적인 직업인으로만 바라보고 하는 목사.


- 교회와 교단의 비리에 눈 감는 목사.


- 자성의 목소리와 개혁을 요구하는 이들을 짓밟는 목사.


- 다른 목회자분들의 명설교를 훔쳐 설교하는 목사.


- 비성경적인 내용으로만 설교하는 목사.


- 이단과 사이비에 침묵하는 목사.


- 그 외에.


- 하나의 감투, 직함, 명함, 간판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의 인정욕구를 충족시키고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거나, 했거나, 하고 있는 장로/권사/집사(서리와 안수) 그리고 각종 리더들 (교회학교교사, 간사, 리더, 팀장, 순장, 구역장, 총무단, 회장단) 및 찬양대 등.


- 리더그룹과 평신도 구분 없이 교회 내에서 정치질, 이간질, 편 가르기 하는 자들.


- 이러한 ’ 가라지‘와 같은 자들로 인해 ‘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 상처 입고 낙심하여 예배의 자리를 떠나 ’ 가나안 성도’ (교회 안나가 성도)가 생성이 되고 있다.


- 또한.


- 이런 더러운 부분들로 인해 교회에는 ‘ 다음 세대’가 보이지 않는다.


-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 개신교’ 인구가 줄고 있다.


- 과연 무교인 이웃들에게 제대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건가?


- 특히나 요즘의 청소년들과 2~30대의 청년들에게 통하는 선교를 하는가?


- 대형 교회는 더 커져서 초 대형교회가 되며, 미자립 교회는 끝내 목회를 포기하고 먹고사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 평신도로 돌아가는 현상 등.


- 점점 더욱 크게 양극화되고 있는 현 교계.


- 여전히 밥그릇과 자리싸움에 혈안이 되어 타 교회의 성도 빼오기에만 급급한 현실.


- 이러한 내용들은 사실.


- 이전의 묵상들에서도 많이 기록하였던 부분이지만.


- 이러한 내용들을 자성의 목소리로 용기 내어 설교시간에 말씀하시는 몇몇 대형 교회의 목사님들도 분명 계신다.


- 그래서 아직 대한민국의 교회는 하나님께 더 크게 쓰임 받으리라 생각한다.


- 위와 같은 교계의 아픔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분명 아는 내용들이기도 하겠지만.


- 알면서도 굳이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으시려는 분들도 분명 계시리라 본다.


- 중요한 건 ‘ 평신도‘이자 ’ 성도‘이고 여러 봉사의 자리에서 각종 리더로 쓰임 받거나 받았거나 받을 우리들은.


-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 교회는 ‘ 주님‘이 머리시며 ‘ 나‘와 ‘ 우리‘는 몸으로서.


- ’ 목사님’이 주인이 아니다.


- ‘ 목사님‘과 ’ 장로~집사‘, ’ 평신도’ 모두의 교회이다.


- 앞서 몇 가지 예시의 여러 좋지 못한 모습의 ’ 목사님’들을 나열했는데.


-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존중하시는 좋은 목사님의 아래에서.


- 양육을 받는 동안 많은 은혜와 축복으로 감사와 평강, 성령 충만이 있을 건데.


- 우리의 삶이라는 게 ’ 요아스‘의 말년처럼.


- 참 스승과 같은 ’ 좋은 목사님‘, ’ 리더분들‘과 늘 함께 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장담을 할 수 없다.


- 모든 것이 ‘ 주님의 영역‘이기에.


- ‘ 요아스‘가 ’ 여호야다’를 만나 살고 왕이 되고, 그가 죽고 주변의 악한 신하들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멸시하는 자가 되기까지의 그 모든 ’ 광야’들이.


- ‘ 나’와 ’ 우리‘ 그 누구라도 비슷한 상황의 ’ 광야’에 들어가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 그래서 ‘ 하나님‘과의 1:1 집중을 하는 것도 좋지만.


- ‘ 나‘ 혼자만의 예배의 자리에서 시작을 해서.


- 언젠가는 ‘ 나‘ 외에 ‘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며.


- 이러한 관계 안에서 ‘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 배려’를 할 줄 아는 ‘ 성숙한’ 신앙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 흔히 ’ 배려’는 지능의 문제라고 한다.


- ‘ 배려‘가 없고, ’ 배려심’이 떨어지는 사람은 지능이 낮다고 한다.


- 앞서 우스갯소리로 ‘ 능지 수준’이라는 인터넷 밈 단어를 인용했지만.


- ’ 서로의 다름‘을 ‘ 존중‘ 하고 ‘ 이해‘ 하고 ‘ 배려‘ 하는 그 모든 것을.


- 모르면 배우면 되는 거고.


- 공부는 다 때가 있다고 하듯이.


- 좋은 교회에서.


- 좋은 목사님과.


- 좋은 형제님들.


- 좋은 자매님들과 함께.


- 좋은 배움의 시간들을 가져야 한다.


- 그것이 ’ 성경 아카데미‘ 이기도 하고.


- ’ 제자 훈련’이기도 하지만.


- ‘ 선교‘를 준비하는 과정과 선교지에서.


- ’ 팀모임과 조모임’에서.


- ’ 신학교(대학과 대학원)‘ 에서.


- 또는 지금 출석하는 본교회 외에.


- 타 교단 또는 타 교회의 좋은 목회자분의 설교 말씀을.


- 예전에는 ‘ 테이프나 CD‘ 였지만.


- 지금은 누워서나 앉아서나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어디서든 보고 듣고 할 수 있는 시대이기에.


- 여러 ‘ 신앙서적‘과 ’ 성경책‘, ’ 말씀묵상집’을 활용하여.


- 스스로 ’ 정도’가 무엇인지.


- ’ 참된 진리’와 ’ 메시아‘, ’ 나의 진정한 주인되신이’.


- 무엇이 옳고.


- 무엇이 옳지 않은지.


- 온전히 성경적으로.


- 온전히 주님의 시선으로.


- 온전히 주님의 마음으로.


- 온전히 주님의 제자로서.


- 살아가는 훈련을 하자.


- 훈련을 통해.


- 나의 연약함도 알아채고.


- 나의 강인함도 알아내어.


- 주님의 전신갑주를 두르고.


- 세상이라는.


- 거짓과 미혹이라는.


- 어둠과 더러운 것들로부터.


- 영적승리를 하자.


- 주변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골리앗 앞에 아무도 나서지 못할 때.


- 홀로 다윗이 나아가 주님과 함께 하였으므로.


- 능히 이겨 승리하였던 것처럼.


- 우리는 언젠가 믿음의 동역자의 부재의 상황에 맞닥뜨린다 하여도.


-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 그 과정에서 때로는.


- 하나님의 경고를 누군가를 통해, 나의 잘못된 모습을 지적받는다거나.


- ’ 주님’ 주시는 마음으로 ’ 나’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를 누군가에게, 지적을 할 수도 있다.


- 흔들리지 말자.


- 그 중심이 ’ 나와 우리‘ 가 아니고.


- 중심이 ’ 주님‘이 시라면.


- ’ 스가랴‘처럼.


- ‘ 여호야다’처럼.


- ‘ 하나님‘을 존중하여 나아가자.


- 성장하는 신앙, 성숙해지는 신앙, 차고 넘치는 은혜로 평강이 임하는 신앙, 악함에 대적하는 신앙으로.


- 때로는 느리게.


- 때로는 빠르게.


-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 방향성이 중요하다.


- 광야면 어떠하리.


- 예루살렘이면 어떠하리.


- ’ 주님’이 계시고, 내가 있고 우리가 있는 이 땅 그 어디든 간에.


- 바로 그곳이 천국이니.


- 넘어진다 해도 일어나면 그만이니.


- 두려워하지도 말며, 담대히 나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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