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도시, 남은 교훈 [스바냐 2:4-15]
(가나안 땅을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 남쪽과 북쪽에 있는 민족을 향한 심판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판의 이유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에게 행한 교만한 행동입니다.)
#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 정의롭지 못한 방식으로 부당이익을 챙기는 죄를 용인하지 않으시는 분.
- 불의하고 부정한 세력 아래에서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는 ’ 남은 백성‘을 기억하시며 세상을 뒤집어서라도 그들을 구원하시는 분.
- 교만한 그들의 땅을 영원한 폐허로 만드시는 분.
- 열방을 심판함으로 이방 백성이 헛된 우상을 버리고 참된 신이자 정의로운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여 열방을 구원하시는 분.
- 하나님이 주신 건강과 재물이 하나님을 잊고 이웃을 멸시하게 만든다면, 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분.
# 나에게 주시는 교훈은?
- 성경 본문을 보면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할 것은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을 훼방하고 교만하여졌음이라 ‘ 말씀하신다.
- 하나님의 백성에게 교만한 행동을 하는 이방 족속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다.
- 여기서 ’ 교만‘이란 불의하고 부정한 세력들이 행하는 정의롭지 못하며 부당이익을 챙기는 죄를 짓고, 헛된 우상 숭배를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건강과 재물을 가지고, 이웃을 멸시하면서 하나님을 잊는 그 모든 것을 지칭한다.
- 성경 본문은 이방 족속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 사실 우리도 이스라엘 유다 민족이 아닌 이방 족속인 한민족’이라는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물론 지금의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과 ‘제자들의 복음 전파’ 등 성령이 역사하셔서 믿음으로 구원받아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
- 세상에는 불의하고 부정한 자들이 많다. 이들은 정의롭지 못한 방식으로 부당이익을 챙기기도 하며, 때로는 이웃들을 멸시하기도 한다.
-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건강과 재력을 스스로의 능력과 우상 숭배를 통하여 얻었다고 선포하면서, 특히나 믿는 자들에 대한 핍박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기도 한다.
-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절대 가만 두지 않으신다.
- 그래서 우리는 세상 가운데에 살아가면서, 때로는 힘들고 지치고 낙심하더라도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 추가로 여기서 더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
- 금일 성경 본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모든 게 이방 족속, 즉 현시대의 ‘믿지 않는 이들‘에게만 해당이 되어 우리 ’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움 없이 살아도 되는 것일까?
-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 사실 우리 ’ 믿는 자들’에게는 어찌 보면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지만 크게 드러내지 않고 쉬쉬하는 어두운 부분들이 있다.
- 그것은 마치 신축 아파트 단지 전체에서 하자 이슈가 드러나면, 집값 전체의 하락으로 이어질까 우려되어 입단속 하려는 것과 같다.
-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그 흔한디 흔한 문제들.
- 머리 되신 예수님을 우선으로 두지 아니하고 ‘목사‘를 신격화하는 일부 교회. (’ 목회자‘는 목자, 즉 주님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양육하며 이끌어 주시는 훌륭한 스승이다.)
- ’ 담임 목사’ 자리를 세습하는 교회.
- 말씀을 기반으로 주님 중심이지 않고 목회자 개인의 정치적 신념으로 극우, 극좌 정치활동을 하며 해당 교인들과 세상을 선동하는 교회.
- 불법 땅 투기, 불법 건축물, 교회 재정 공금 횡령 등 법을 존중하지 않는 교회.
- 성추문(추행과 폭행 등)을 저지른 목회자를 계속 용인하고 인정하는 교회와 교단.
- 헌금, 십일조, 건축헌금, 선교헌금 그 외 각종 헌금을 주님의 사명이라는 명목하에, 성령의 이끄심에 의한 자발적인 헌금이 아닌, 설교 말씀 중의 지나친 강조와 명단 언급 등 성도를 물질의 대상으로 보거나 보기 시작하는 교회.
- 자비량 교회 (텐트메이커, 이중직)에 대해 비판하는 자립한 중 대형 교회.
- 부어주시고 채워주시는 물질을 선교지와 개척/미자립 교회에 흘려보내지 아니하면서 과거처럼 건물의 크기와 부피를 늘리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교회.
- 재난 등 세상의 불가항력적인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이웃에 대해 침묵하는 교회.
- 말씀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특정 단어에 혈안이 되어 다른 교회의 목회자를 공격하는 교회.
- 교단이 다르다고 타 교단과의 차이성과 장단점, 주님과 백성들을 향한 가치관과 마음들은 무시하고 오직 자신들의 것만이 옳다며 공격하는 교회(교단).
- 각종 선거철마다 담임 목사의 정치적 성향에 맞는 정치인들을 예배 시간 도중에 인사시키는 교회.
- 무속 신앙 등에 빠져있는 정권과 그 지도자들을 위해 회개하라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지 아니하고 그곳에 줄을 서서 안수기도 한다 하면서 정치권에 줄 서는 교회.
- 이단, 사이비에 침묵하며 방관하고 방치하는 교회.
- 그리고.
- 교회 단위가 아닌 ’ 우리들‘.
- 공동체 안에서의 여러 정치질.
- 리더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있어도 무조건적인 줄 서기. (리더 또한 인간이며 많은 기도가 필요한 자리인데 중보기도, 나아감에 대한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편들어주기)
- 본인의 지식과 경험 등, 자신만의 관점(프레임)에 갇힌 편협한 시각으로, 상대방의 신앙생활과 그간 그가 하나님과 동행해 왔던 역사에 대해 입체적인 모습은 보지 못하면서, 단면적인 부분에 대한 판단으로 비판과 멸시 그리고 조롱 등 정죄하는 모습.
- 상대의 연약함에는 무자비하나 스스로의 연약함에는 관대한 모습.
- 본인의 연약함은 ’ 원래’ 그런 거고, ‘직업상‘ 그런 거고, ’ 이렇게 살아왔고 ‘ 합리화하는 모습.
- 주님이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게 맞는 걸 알면서도 본인은 주는 것에 인색하면서 매번 받기만 해야 하는 모습.
- 교회 공동체에 모인 모든 지체가 세상 속의 삶 한가운데에서 모두 지치고 낙심하고 상심하여 예배와 모임의 자리에 왔음을 모르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힘들고 지치고 상처받은 불쌍한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모습.
- 그러하기에 매번 자신의 힘듦에 대해서만 찡찡거리는 모습.
-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빨갱이라고 극좌라고 말하는 모습.
- 세상과 여러 사람들의 다양성과 다양함을 이해와 배려를 하지 못하는데, 할 생각도 의지도 없으면서, 선교와 전도에 대해서 입으로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스스로 위로하는 모습.
- 남들보다 더 많이 읽고 예배 참여하고 말씀 많이 보았다며, 자신이 보고 듣고 아는 수준이 전부 진리이며 맞다고 주장하는 모습.
- 예배와 나눔의 모임 시간 안에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나눔을 하는 시간 속에 자신이 하고 싶은 쓸데없는 잡담을 하여 주변에 피해를 주는데도 모르며 알려고도 안 하는 이기적인 모습.
- 직업과 외모로 판단하여 다른 지체와는 다르게 대하는 모습.
- 공동체 안에서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축복인지 알지만, 적당히가 아닌 도를 지나쳐서 ‘남미새‘와 ’ 여미새‘ 마냥 남자남자, 여자여자, 소개팅, 배우자, 결혼 외치면서 분위기 흐리는 모습.
- 이성에 눈이 돌아서 대놓고 끼 부리는 모습이 보이는데도, 공동체라서 교회이니까 다들 상처받은 영혼들이고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고 하면서, 적절한 제제 없이 그저 방관하는 모습.
- 특정 지체에 의해 상처받은 영혼이 교회를 출석하지 아니하거나 따로 예배를 드리는 상황에 대해 침묵과 방관, 상처를 준 지체에게 줄서기해서 더 상처 주는 모습.
- 자신의 삶과 고민, 아픔만을 얘기하며 나누기 좋아하고, 다른 지체의 말에는 관심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아니하며 집중하지도 못하는 모습.
- 이와 같이.
- ’ 이웃을 멸시하는’ 교만이라는 범주로 보았을 때, 우리 모두는 안심해도 괜찮을까?
- 누군가는 정작 이러한 묵상과 나눔을 하는 나를 ‘이웃을 멸시하는’ 교만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 그래서 나 조차도 이러한 말씀 묵상과 나눔을 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더 되돌아보게 되며 거울치료처럼 받아들여 스스로에게 엄중한 경고와 조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자 한다.
- 사실 나 또한 한동안 위에 나열한 모습들로 인해 상처받고 낙심하여 ‘가나안 성도(안나가 성도)’였던 적도 있다.
- 지금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 나이지만 지난날의 나의 미성숙한 모습으로 상처를 받았을 지체들 또한 분명 많이 있을 것이다.
- 재물도 건강도 그리고 신앙생활도 모두 허락해 주시는, 주님의 자녀이자 제자로써 한 걸음씩 더 성장하며 나아가기 위해서, 쓴 뿌리와 잔가시들을 쳐내면서 새살이 돋고 더 단단해져가야 한다.
-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주권 아래에서 행하여지는 이 세상, 이 땅은 사실 ‘지옥’이 아니라 ‘천국‘이 아닌가 싶다.
- 저 위 높은 곳의 ’ 천국’에서도 이 낮은 땅 ‘천국’에서의, 이러한 스펙터클하고 다이내믹한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의 재미가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