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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상 Feb 05. 2021

22.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기


일상은 빠르게 채워졌다. 벚꽃이 필 무렵 중간고사가 시작되었고 연기 전공 수업과 커뮤니케이션 전공 수업을 병행하며 쏟아지는 과제에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그렇게 바쁘다면서 저녁에 술잔을 기울일 여유는 있었고 바쁜 만큼 뿌듯한 시간들이 지나갔다.


대학생활이라고 하면 학점을 잘 받거나 동아리 생활을 잘하거나 캠퍼스 커플을 하는 것 중 하나만 하면 잘한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이왕이면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자는 마음에 꽃 피는 봄을 맞아 신입부원을 모집하는 부스를 기웃거리며 늦깎이 복학생도 받아줄 만한 동아리를 물색했다. 이미 전에 경영학부 학회에서 한 번 고배를 마신 터라 조심스러웠는데 하나의 동아리에서 인터뷰를 하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었던 것들 중 하나가 공부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고등학생은 대학 입시라는 목표만을 바라보고 달려가기 때문에 취미나 관심사는 옆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비록 논술을 공부한다는 핑계로 방학이면 영화를 닥치는 대로 봤고 짧게나마 내 생각을 남겨 기록하곤 했지만 말이다. 매주 발간되는 영화 관련 주간지를 구독하기도 했고 언젠가 영화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는 몰랐지. 이렇게 연극 영화를 전공하게 될 줄 말이다.)


지금처럼 많은 콘텐츠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게 영화는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창구 중 하나였고 꿈을 키울 수 있는 도구였다.


막상 영화와 연극을 공부하는 학생이 되자 더 이상 영화는 내게 유희의 대상이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마음 편하게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여행을 떠났다면 이제는 종이와 펜을 들고 각 시퀀스와 배우의 캐릭터 연기를 분석하곤 했다.


물론 이러한 접근 역시 새롭기도 하고 배울 점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영화 자체를 소비하는 방식은 달라져있었다. 자연스럽게 과제와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찾아보는 용도로 전락했는데 그때 그 시절의 순수한 감상이 그리워졌다. 영화 자체만으로 행복하던 그 모습을 찾고 싶어 영화 동아리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며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었지만 꼰대 소리를 들을까 봐 참았다.




연극영화과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오, 그러신가요? 그러면 배울 점이 많겠네요.

복학생에 학번도 높습니다.

괜찮습니다. 지난 학기에 가입하신 분도 학번이 더 높으세요.


이렇게 두 개의 질문만으로 내 마음은 굳혀졌고 첫 모임에 조심스럽게 참석했다. 신입생 시절에는 연영과 행사가 무조건적으로 우선이었기 때문에 학과 외의 활동은 거의 금지였는데 이런 자유가 선배의 맛인가 싶기도 했다.


다 같이 동아리실에 모여 영화를 보거나 미리 본 사람들이 모여 다 같이 감상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굉장히 신선했다. 그간 학문적으로만 접근했던 내 생각과는 다르게 그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꾹꾹 눌러 말하고 있었다. 잊고 있던 나의 순수한 열정이 다시금 느껴지기도 했고 이들의 이야기가 점점 더 궁금해졌다.


방학 때면 직접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단편영화를 촬영하고는 연말에 상영회도 했다. 나도 한 작품에 출연을 한 적이 있는데 함께 우당탕탕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신선하고 재밌었다. 날것의 감정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각자 다른 전공의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공통점은 모두가 영화를 사랑한다는 점이었다.


감독 이름이 하나 나오면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술술 튀어나왔고 폭넓은 지식으로 서로의 감상을 즐길 수 있었다. 전공 수업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눈을 반짝거리며 학술적으로 어떻게 수업이 이뤄지는지 알고 싶어 했다.




우리는 때로 가진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잊고 지낸다. 익숙하니까.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향유했던 것들이 해야 할 것들로 마주하면 하기 싫어진다. 사실 달라진 건 영화가 아니라 내 마음일 텐데 말이다.


좋아하는 걸 함께 나눈다는 것. 이것만큼 시간을 도둑맞기에 딱인 일이 또 있을까. 공강 시간에도 시험 기간에도 언제 어느 때든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속에 아주 커다란 안정감이 자리를 잡았다. 우린 많은 밤을 지새웠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22.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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