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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상 Feb 03. 2021

21. 내 생애 가장 청춘스러웠던 장면

꺼지지 않는 불꽃 하나


이제는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 되었다.


준비한 모든 공연의 회차가 끝이 났다. 마지막 공연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들뜬 마음을 다 누르지 못했다. 처음이 주는 묘한 긴장감과 달리 마지막이 주는 묵직한 아쉬움이 가슴속에서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나에게 허락된 모든 에너지를 그대로 쏟았다. 그리고 이 풍경을 잊지 않기 위해 시간을 더 쪼개 기억하려 애썼다.


분장실에 있는 의자의 개수와 무대 뒤쪽 대기실에서 나는 낡은 나무 냄새, 먼지를 잡기 위해 뿌리는 스프레이에서 물방울이 날아가는 모습, 다 같이 스트레칭을 하며 하나둘셋넷 둘둘셋넷을 외칠 때 누군가 무릎에서 났던 소리, 비뚤어진 방석을 제 자리에 두며 만진 손끝의 촉감까지. 다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비장함이 느껴졌다.




조명은 어김없이 정해놓은 시간에 켜졌고 작품 역시 대본대로 끝이 났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관객들의 박수가 어느 순간 잦아들고 우리는 무대에서 퇴장했으며 관객들도 하나둘씩 극장을 빠져나갔다.


평소처럼 우릴 보러 와준 관객들과 인사를 하고 텅 빈 무대에서 우리는 다시 모였다. 서로 수고했다는 말로 모두를 위해 박수를 쳤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처럼 환하게 웃으며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은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겨졌다.


그리고 우리는 곧장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무대 철거를 시작했다. 만드는 건 한 세월인데 무너뜨리는 건 한 순간이다. 그러나 모두의 손놀림에 아쉬움은 없다. 그만큼 제대로, 잘, 놀았기 때문이다.


공연을 몇 번 더 해서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무대 위에 남은 미련은 없었다. 게다가 빨리 정리를 해야 일분이라도 빨리 쫑파티 장소로 갈 수 있기에 다들 한 마음으로 바삐 움직인다. 모두의 표정에는 후련함이 있다. 손때 묻은 무대 소품들이 정리가 되고 아까 전만 해도 꽉 찼던 무대는 조금씩 텅 빈 무대로 처음처럼 돌아간다.




쫑파티는 말 그대로 진하게 이어졌다. 다들 뭐가 그렇게 벅찼는지 역시나 우는 사람도 있었고 그 모습을 놀려대며 웃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신나고 들뜬 마음으로 술잔을 부딪치니 취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오늘만큼은 모든 고민들을 내려놓고 그냥 이 시간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었다.


이제는 떠나보내야 하는 ‘우리’와 작별하는 행복한 파티였다. 내 삶에 있어 가장 ‘청춘’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그 날의 기억이지 않을까 싶다. 누구보다 자유로웠고 오직 이 순간은 나에게만 허락된 시간처럼 느껴졌다. 난 충분히 즐길 자격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아름다운 밤으로 기억한다.


몇 달을 매일같이 보던 사람들과 내일부터는 정해진 시간에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애써 담담한 척했다.


마침 개강과 맞물린 시기였기에 우리는 대부분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대학로 무대 위 배우는 다시 학생이 되어 좁은 강의실에 앉아 더 높이 날 수 있도록 나는 연습을 하게 되겠지. 전처럼 마냥 지루하거나 마냥 외롭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전공 수업에는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내 편이 생긴 데다 무대 위에서의 시간들은 내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하나의 불꽃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21. 내 생애 가장 청춘스러웠던 장면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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