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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상 Feb 01. 2021

20. 쇼는 시작되었다

그대로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우리 앞에 남은 건 수 없이 텅 빈 극장에서 반복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이제는 관객으로 가득 찬 여기 이곳에서 하는 것뿐이었다.


언제나 처음은 떨리기 마련인 것처럼 무대 너머로 들리는 관객의 웅성거림이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건 그간의 긴장감과는 조금 달랐다.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의 흥분이었다.


드디어 누군가의 앞에 준비한 것을 보여준다는 것에 대한 기쁨과 만족, 그리고 행복.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거리는 것만으로 이제 쇼는 시작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두웠던 극장의 조명이 켜지자 모든 것들이 숨 가쁘게 흘러갔다. 확실히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에너지가 그대로 느껴졌다. 집중하고 있다는 숨소리, 헛기침, 웃음소리, 그리고 훌쩍거리는 소리까지.


무대 위에서 느끼는 나의 감정들은 그들에게 번지고 있었다. 온전히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장면은 놀라우리만큼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물론 생각지도 못한 장면에서 그들은 웃었고 울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살짝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런 게 다 첫 번째 공연이 주는 기분 좋은 당혹스러움이라 생각했다. 관객의 모든 마음을 예측할 수는 없다. 그리고 관객의 반응에는 정답이 없다. 우린 우리가 준비한 그대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가끔 우리는 살면서 마주하는 수없이 많은 상황에서도 상대의 반응 때문에 위축되는 경우가 다. 말이라도 해보고 실망하는 건 그나마 낫지, 지레짐작에 안 된다 생각하며 입을 다물고 홀로 괴로워하기도 한다.


분명 거절당할 거야, 이 부분은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걸, 내 마음을 표현할 자신이 없어.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걱정을 한다. 그러나 그건 우리의 몫이 아니다. 내가 진심을 다한다 해도 그대로 전달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진심을 다했다는 사실뿐이다. 관객의 반응을 예상할 수 없지만 준비한 그대로 연기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첫 번째 공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정신은 없었지만 개운한 기분이었다. 커튼콜까지 마친 우리는 한 자리에 모여 가벼운 피드백을 나눴다.


연습 때처럼 디테일한 조언이 오가지 않는다. 이미 무대에 올린 순간부터 온전히 극은 배우의 몫이 된다. 배우는 무대 위에서 매 순간 작품을 온전히 잘 전달하고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걸 위해 몇 달간의 시간을 연습으로 쏟은 것이다.


그렇게 서로 칭찬과 체크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홀에서 기다리고 있는 지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기념사진도 찍고 운이 좋으면 저녁 식사도 함께 한다. 다음 날 같은 시간에 또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컨디션 관리가 굉장히 중요한데 무대에 한 번 오를 때마다 받는 에너지로 잘 버틸 수 있었다.


지금까지 연극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만의 이야기였다면 이제는 관람을 마친 관객들과의 이야기로 확장이 된다. 그 장면은 어땠는지, 내가 힘을 준 대사가 잘 들렸는지, 움직임은 어색하지 않았는지,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나 연습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영화나 책, 그림이나 음악 등 각자의 자리에서 예술을 소비한 채 감상을 나눈 적은 많았지만 한가운데에 내가 들어가 있는 작품을 갖고 서로의 감정을 공유한 적은 처음이었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물론 나의 흥분에 비해 그들의 감상은 비교적 차분했지만 말이다.



20. 쇼는 시작되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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