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_ 03화
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멋있게 사시네요
지원서를 제출한 다음 주 화요일에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는 글과 함께 그 주 목요일 18시 30분에 면접이라는 안내 문자를 받았다. 교사가 된 이후 면접이라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특성화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취업 준비를 하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준비시키며 면접관 역할을 했던 사람이었고, 특성화고에 입학하기 위해 잔뜩 긴장한 중3 학생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보던 사람인 나에게 면접대상자라는 단어는 약간의 설렘을 갖게 했다. 쉰셋, 이 나이에 오케스트라 면접을 불 줄이야.
면접 시간이 하필 그때 듣고 있던 ZOOM 연수와 시간과 겹쳤다. 강의 시작 전에 오케스트라 면접에 가야 해서 연수 중간에 나가야 된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더니 강사님이 "멋있게 사시네요" 하며 흔쾌히 허락하셨다.
면접 대기실은 문화센터 1층 오케스트라 합주실 및 발레 연습실이라고 되어 있었다. 문화센터라면 내가 잘 아는 곳이었다. 인구 3만 명 겨우 넘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 체육, 문화예술 서비스를 제공하는 문화센터 1층에 위치한 영화관을 종종 이용했던 사람으로서 아무 의심 없이 영화관 쪽으로 갔다.
면접 대기실을 찾아라
면접 대기실이 보이지 않았다. 영화관 직원에게 물으니 그곳은 1층이 아니라 2층이라고 했다. 약간의 계단을 오르기는 했지만 거기가 당연히 1층인 줄 알았다. 지하라고 생각했던 1층으로 가는 계단에는 차단봉이 세워져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와서 1층으로 가는 출입구를 찾았다.
나와 같은 처지로 보이는 30대 후반 정도의 남자분이 나와 같은 코스로 길을 헤매다 면접 대기실로 따라 들어왔다. 면접 대기실 안은 조금은 들뜬 분위기였다.
오케스트라 활동을 오랫동안 해 오던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오케스트라가 뭔지 악기를 한번 시작하면 얼마나 오랫동안 하는지 그때는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다. 다들 나처럼 처음 오는 사람들이 서먹한 분위기에서 대기하고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밖에 없는데 둘러봐도 안 보였다. 교장선생님께 전화했더니 면접 장소가 문화센터인데 문화관으로 잘못 알고 문화관에 갔다가 이쪽으로 오는 중이라고 했다. 교장선생님이 면접 대기실로 들어설 때 대여섯 명이 아는 척하며 인사를 했다. 그분들도 모두 교사겠거니 생각했다.
플룻 배운 적 있으세요?
안내요원이 파트별로 면접을 볼 것이며 플룻 인원이 제일 많아서 맨 마지막에 면접을 보겠다고 했다.
면접관 석 제일 안쪽에 앉은 여자분이 가장 먼저 들어간 나에게 물었다.
"플룻 배운 적 있으세요?"
처음이라고 대답했다. 내 옆에 선 다른 분들도 처음이라고 했고 나와 같이 면접 대기실을 찾던 남자분이 겸손한 어투로 "3개월 정도 배웠습니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스포하자면, 이분은 7개월 후 연말 오케스트라 발표회에서 플룻 독주를 하게 됩니다).
"제가 처음인 분도 어떻게든 연말 무대에 같이 세울 겁니다. 그러니 결석만 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연말 무대에 세울 권한을 가진 분답게 단호하고 확신에 찬 어조였다. 면접에서 떨어뜨리지는 않는구나 싶었다. 지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생부터 촌사람, 플룻을 들었을 때보다 호미를 들었을 때 그립감이 좋은 투박한 손을 가진 사람, 클래식 음악은 공중 화장실에서 제일 많이 듣는 사람인 나는 그렇게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