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_ 11화
합주실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
앉아있는 내내 생각했다. 오늘 연습 끝날 때까지만 참자, 나가자마자 플룻 강사님께 그만둔다고 말해야지, 그러면 끝이다, 바보처럼 멍하니 앉아있는 이 부끄러움도 끝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합주 시간을 버텼다.
연습을 마치고 나오다 주차장이 가까워졌을 때 나와 같은 초급반 선생님(나보다 한 등수 위의 실력을 갖춘 분, 즉 꼴찌 다음)께 말했다.
"선생님, 저 결심했어요"
"뭘?"
"저 플룻 그만둘 거예요, 이것도 이제 오늘만 하면 끝이다, 연습 시간 내내 그 생각하면서 버텼어요"
"자기 왜 그래, 이때까지 하고서, 지금 그만두면 그건 정말 바보 같은 결정이야"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이웃 학교 상담선생님. 아침에 동네 산책을 하다가 교회에 다녀오는 그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후 많이 친해진 분이다. 플룻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아침에 이렇게 산책도 하는 거냐며 나를 놀라운(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던 분이다. 상담 선생님은 플룻을 배워서 교회에서 연주하겠다는 목표가 있다고 했다. 목표가 뚜렷해서인지 그 선생님의 실력은 눈에 띄게 향상되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나에게 12월에 공연이 끝난 후 내년 4월에 다시 오케스트라 단원을 모집할 때까지 기다리면 너무 많이 쉬게 되니 다른 성인반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서 플룻을 계속 배워야 한다고 했다. 앉아있는 내내 집중이 안된다, 악보가 눈에 안 들어온다, 악보를 봐도 손가락이 빨리 안 움직여진다고 말했더니 그러면 목요일은 배드민턴을 하지 말라고 했다.
"배드민턴이 얼마나 힘든 운동인데 그걸 하고 오니 그렇지, 플룻 부는 날은 배드민턴을 하루 쉬어"
"배드민턴이 더 재미있는데 어떡해요"
그 말을 듣고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잘 가'라는 뜻인지, '그만두면 안 된다'는 뜻인지 오른손을 두 번 흔들면서 차로 걸어가며 상담선생님이 말했다.
"아 어쨌거나 자기 그만두면 안 돼, 오케스트라에 안 나오면 내가 자기네 학교로 찾아가서 데리고 올 테니까 그렇게 알아"
너 아직도 안 그만뒀니?
공연이 다가올수록 합주실 분위기는 예민해져 갔다. 플룻 인원이 제일 많은데 소리가 너무 안 맞는다고 한 단장님의 말이 '너 아직도 안 그만뒀니?'로 들리는 것이었다. 눈치가 보였다. 합주실에서 합주를 따라가지 못해 멍하니 있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끝까지 결석 안 하고 마친다는 건 내 만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합주 시작 전 A로 음정을 맞출 때 또 '높은 라'를 불지 못하는 나에게 오보에 강사님이 플룻 본체를 헤드 끝까지 밀어 넣고 힘을 줘서 불어보라고 살짝 알려 줬다. 이번에도 '높은 라'를 불지 못했다. 그래도 지난번처럼 따로 불려 나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연습시간 내내 앉아있는 게 곤욕스러웠다. 마디를 놓쳐버리고 마디를 찾아 헤매는 나의 눈동자도 어떻게 할 줄 몰라 플룻 위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나의 손가락도 불쌍하게 느껴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케스트라를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서 '가볍게' 즐길 수 없었다. 오케스트라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었으므로. 다른 사람들한테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물론 처음에 비하면 높은 음도 좀 나고 악보도 더듬더듬 따라가는 가는 만큼 늘기는 했다. 합주 시작 전에 또 '높은 라'를 못 불어서 이미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된 상태였다. 플룻이 제일 소리가 안 맞다는 단장님의 말이 나를 지적하는 말로 들렸던 것이다.
관사 주차장에 도착해서 A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에게 오케스트라를 권한 A에게는 말을 하고 그만둬야 할 것 같았다. 오케스트라 연습 시간의 내 모습과 마음 상태를 전하는데 눈물이 찔끔 났다. 슬퍼서 나는 눈물이 아니었다. 지금의 내 모습이 웃겨서 나는 눈물이었다. 합주실에서의 내 모습과 이렇게 하소연하는(그만두지 못하게 붙잡아 달라고?) 내 모습이 우습고도 안쓰러웠다.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들어주며 나를 달래던 A가 악보가 어렵고 복잡해서 그런 것 같으니 자기가 불기 쉬운 악보로 고쳐주겠다고 말했다. 악보를 고칠 필요는 없었다. 악보 탓이 아니었다. 연습 부족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