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_ 10화
배드민턴 이야기
나에게 오케스트라를 권한 A는 내가 플룻을 시작할 때 배드민턴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 학교 체육관에서 배드민턴 레슨을 받지 못하게 되자 A는 주말에 본가에 갈 때마다 배드민턴 레슨을 받고 왔다. 그러다 여름 방학 전 학교에 체육관 매니저가 배정되었는데 감사하게도 그분이 그때부터 우리에게 배드민턴을 가르쳐 주셨다.
단기속성으로 대회용 배드민턴 복식 기술을 가르쳐 달라는 나의 어이없는 요청에 미소로 답하신 그분은 기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었다. (배드민턴도 할 말이 많지만 이곳은 플룻 이야기를 하는 자리니만큼 이 정도까지만) 그렇게 배드민턴 대회를 준비한 지 5개월째 되던 달, 대회 일주일 전 토요일이었다.
아침에 학교 주변을 산책하는데 날이 너무 좋았다. 날도 선선하니 좋으니 동네 뒷산이라도 가볼까 생각하다 마음을 바꾸었다. 산에 갔다가 무릎이라도 다치면 배드민턴 대회에 지장을 주니까 저녁나절에 자전거나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헬맷을 챙기던 남편이 핸드폰이 거추장스럽다며 집에 두고 가겠다고 말했다. 내가 먼저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다 관사 아래 노인회 건물 앞에 설치된 자전거 바람 넣는 기계 앞에서 멈췄다. 남편에게 바람을 넣어달라고 했다. 남편이 자전거 두 대에 바람을 빵빵하게 넣었다.
그곳에서는 남편이 먼저 출발했다. 인도로 타고 가다가 강변에 있는 자전거 도로로 가려면 어느 지점에서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서 인도 가까운 차도로 가고 있었다. 갑자기 차량 통행이 적은 곳이긴 하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에 인도로 가고 싶었다.
그전에도 몇 번 그쪽에서 인도로 올라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날도 평소처럼 편의점 앞 인도로 올라가는데. 이상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툭, 하고 올라가던 곳인데 자전거 앞바퀴가 5센티 정도의 턱을 넘지 못하고 턱을 따라서 비스듬히 미끄러지는 것이었다. 어...어...
자전거 이야기
그대로 자전거와 함께 인도로 넘어졌다. 쿵~ 왼쪽 어깨가 먼저 부딪혔다. 그다음에 등이 바닥에 닿고 마지막으로 헬멧을 쓴 머리가 바닥에 살짝 닿았다. 둘러봐도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한번 눌렀다가 핸드폰을 가져가지 않겠다고 한 말이 떠올라서 바로 끊었다.
달리던 속도가 워낙 느렸고 천천히 넘어졌기 때문에 일어나서 바로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줄 알았다. 자전거를 세우는데 자전거 목이 360도 돌아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기는커녕 끌기도 힘들었다.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읍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관사가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왼쪽 어깨 통증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울고 싶었다.
집에 와서 누워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라, 폰을 가져갔었단 말이야?
"왜 안 와, 지금 여기 OO교에서 기다리고 있어, 빨리 와"
너무도 해맑은 목소리였다. 부인이 넘어졌는지 어쨌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신나게 달렸을 남편이 미웠다.
왼쪽 다리는 부어오르고 있었고 왼쪽어깨가 아파서 몸을 뒤척이기도 힘들었다. 토요일 저녁이라 병원에 가봐야 사진도 못 찍을 게 뻔했다. 남편이 붙이는 파스와 안티푸라민을 사 왔다.
A한테 뭐라고 해야 하나, 얼마나 놀라고 실망할까, 같이 배드민턴 대회를 5개월이나 준비해 왔는데, 배드민턴 대회를 앞두고 코로나에 걸리면 안 된다고, 아무 데도 다치면 안 된다고 서로 당부하고 서로 주의하며 지냈는데.
파스를 붙인 왼쪽 어깨와 멍들어 부어오른 왼쪽 다리 사진 2장을 보냈더니 카톡으로 ㅠㅠ가 잔뜩 오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다행히 왼쪽이라 배드민턴 대회에는 나갈 수 있다고 말했더니 '대회가 뭐가 중요하냐, 대회는 내년에도 나갈 수 있다, 치료 제대로 안 하면 평생 고생이다'며 말렸다. 다행히 다친 곳이 왼쪽이라 배드민턴 치는 데는 지장 없을 거라며 안심시켰다.
뮤지컬 이야기
일요일 저녁에 문화센터 공연장에서 뮤지컬 공연이 있었다. 유명 록밴드의 리드 보컬이 나오는 뮤지컬이었다. 어깨가 아파서 도저히 뮤지컬을 보러 갈 수 없었다.
남편에게 혼자라도 보고 오라고 했더니 가서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데 왜 못 가냐고 타박했다. 얼마나 아픈지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나는 절대로 뮤지컬을 볼 가지 않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A가 카톡과 전화로 한 말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다.
"선생님, 선생님이 뮤지컬도 못 볼 정도면 배드민턴 대회에 나가면 안 돼요, 배드민턴 대회에 나가겠다는 분이 뮤지컬을 못 본다? 그건 배드민턴 대회에 나갈 몸이 아니라는 거예요, 대회에는 내년에 나가면 되니 무리하지 마세요"
결국 나는 배드민턴 대회에 나갈 몸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뮤지컬을 보러 가야만 했다. 신나는 공연이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손뼉을 치지 않았다. 어깨가 아파서 손뼉을 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커튼콜 때 배우들이 함께 사진을 찍자며 관객을 모두 일으켜 세웠으나 그때도 나는 일어서지 않았다.
옆자리에 있던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흥분하며 가운데로 사진을 찍으러 가려다 내 쪽으로 몸을 기우뚱할 때 "으으아아악" 부딪히지기도 전에 소리를 질렀다. 그분이 놀라며 몸의 중심을 잡아서 다행히 내 몸과 부딪히지는 않았다.
플룻 이야기
플룻은 들 수 있을 줄 알았다. 가벼우니까. 그런데 왼쪽 팔이 플룻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그 주도, 그다음 주도 오케스트라 연습에 불참했다. 플룻은 못 불어도 결석만은 하지 않겠다던 다짐은 그렇게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