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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판 Jul 29. 2024

숨 쉬지 마세요

 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_ 09화

클라리넷 소리를 따라가다


오케스트라 합주가 있던 8월 초순 어느 날 낮. 플룻을 연습하러 학교에 나갔다. 1층 복도에 들어서는데 클라리넷 소리가 들려왔다. 교장선생님도 나처럼 오케스트라에 지원하면서 클라리넷을 처음 불었다고 했는데 방학 동안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제법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노크를 하고 교장실 문을 열었다. 


교장선생님이 클라리넷을 불다가 내려놓았다. 


"플룻 연습 좀 하려고 나왔는데 클라리넷 소리가 나서 반가워서 들어와 봤어요. 그런데 교장 선생님, 클라리넷 정말 많이 느셨네요"


"아, 이게 생각만큼 잘 안되네"


"그래도 교장선생님, 클라리넷은 옆으로 부는 게 아니고 입 대고 피리처럼 불기만 하면 되니까 소리는 잘 나지요?"


(몇 달 후 클라리넷과 플룻, 두 악기를 다 불 줄 아는 분에게 물었을 때 클라리넷 소리 내기가 더 어렵다는 말을 들었을 때야 나는 교장 선생님께 이 말을 한 것이 부끄러웠다.)


교장선생님이 허허 웃었다. 


"이거 소리 내려면 힘들어"


교장 선생님과 나는 자신의 악기가 얼마나 소리 내기 힘든 악기인지를 서로에게 인식시키려 애를 썼다.


여름 방학이 끝난 후 교장선생님은 9월 발령으로 다른 지역으로 가는 바람에 오케스트라를 그만두게 되었다.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돼서 속상하고 그렇지만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에 또 좀 기쁘고, 그런 마음을 함께 나눌 동료가 한 명 사라진 것이다.



혼자 남은 부진아



8월 중순에 오케스트라단도 2주간의 짧은 휴가를 가졌다. 그동안 플룻 수강생 중 교장 연수를 받으러 간 교감 선생님이('높은 라'를 못 불어서 따로 불려 나가 나와 함께 2시간 동안 부진아 특별 지도를 받았던 분) 중도 하차했다. 잦은 출장으로 오케스트라에 빠지는 날이 많아 진도를 따라오지 못해 힘들어할 때 "선생님, 저를 봐서라도 그만두시면 안 돼요, 우리 끝까지 함께 해요" 하며 용기를 북돋아 준 적도 있었는데. 초급반 안에서의 부진아 그룹, 거기에서 이제 나 혼자 남은 것이었다. 


여름휴가 뒤 하반기 첫 수업시간이었다. 


그때까지도 음표도 악상기호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합주할 때 미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쏟던 때였다. 마디를 놓치면 플룻을 불고 있는 옆사람에게 물을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고 마디를 찾아갈 귀도 갖지 못했기에 어떻게든 음표에 집중하며 따라가려고 집중하고 있었다.


제네시스였는지, 로자문데 서곡이었는지,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넘버 파이브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하여간 아주 복잡한 악보였던 것만 기억난다.


지휘하던 단장님이 합주를 멈추게 하고 말했다.


"플룻 3,  O 마디에서 O 마디 넘어갈 때 숨 쉬지 마세요, 숨 참으세요"


다시 합주가 시작되었고 나는 숨을 참으면서 플룻을 불었다. 단장님이 고개를 저으며 지휘봉으로 강연대를 두드렸다. 합주실이 조용해졌다.


"O 마디부터 다시"


그러고는 지휘를 하면서 플룻 초보들이 앉은 쪽으로 걸어왔다. 단장님의 걸음이 내 앞에서 멈췄다. 합주는 계속되고. 단장님은 오른손으로 지휘를 하면서 왼손으로 플룻을 불고 있는 내 왼팔을 잡으며 말했다.


숨 쉬지 마세요


"숨 쉬지 마세요, 참으세요"


숨을 쉴 때마다 가슴과 팔이 그렇게 들썩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단장님이 팔을 잡고 있으니 숨을 쉴 때 팔이 위로 움직이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그제서야 숨 쉬지 말라고 한 곳에서 계속 숨을 쉬었던 사람이 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부분에서 숨을 쉬지 않으려면 복식 호흡으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조금씩 내뿜으며 플룻을 불어야 했다. 그러나 폐활량이 적은 나는 그렇게 길게 끌고 갈 숨이 없었다. 앞마디에서 숨을 다 써버렸으니 뒷마디를 불기 위해서는 또 한 번의 산소 공급이 필요했다. 


숨 쉬지 말라는 곳에서 숨을 쉬면서 소리를 내지 말고 소리가 안 나더라도 숨을 참으라는 뜻 같았다. 숨을 참았다. 그리고 간절히 바랐다. 단장님이 내게서 멀어지길, 이 시간이 제발 빨리 지나가길.




* 슈베르트의 로자문데 서곡(Schubert "Rosamunde" Overture)을 감상하실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

https://www.youtube.com/watch?v=U7q5jhR5DZ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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