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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판 Jul 28. 2024

내겐 너무 어려운 A (2)

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_ 08화


합주실에서 나가야만 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나가야 되는데, 앞뒤에 보면대와 의자가 꽉 차서 나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와 같이 지명을 받은 분이 악보와 플룻을 챙겨 들고 강사님과 함께 나가는 것이 보였다. 내가 나가야 연습이 시작되므로 나는 속히 그 자리에서 사라져야 했다. 합주실 안 사람들은 모두 내가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뒤로 가야겠다 싶어서 클라리넷 연주자들이 앉아있는 줄로 몸을 틀었다. 클라리넷 줄 제일 안쪽에 앉은 여자분이 옆 의자에 클라리넷을 비스듬히 얹어두고 허리를 숙여 뭔가를 하고 있어서 일어선 나를 보지 못했다. 의자에 있는 악기 조심할 것, 이것은 플룻 강사님이 첫 시간에 강조한 것이다. 몇천만 원짜리 악기도 있으니까 부딪히지 않게 항상 조심하라고 했다.


클라리넷에 부딪힐까 봐 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딱 중간에 갇힌 꼴이었다. 그때 클라리넷 옆에 앉아있던 큰 나팔 부는 팀(금관악기 팀, 트롬본, 트럼펫 뭐 이런 거. 모두 남자분들) 두 분이 과하게 친절한 몸짓으로 보면대를 몸 쪽으로 잡아당기며 길을 터줬다. 지금 네 마음이 어떨지 말 안 해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부진아 맞춤형 수업 시간


'높은 라'를 불지 못해 쫓겨난 부진아 두 명과 강사님이 발레 연습실에 오붓이 앉았다. 강사님은 낮에 회사에서 일하다 손을 다쳐서 플룻을 불 수 없다고 했다. 


강사님이 자세를 다시 잡아줬다. 플룻을 든 오른팔을 위로 조금 더 들어 앞으로 내밀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더 기울이라고 했다. 


강사님이 건너편 합주실에 있는 사람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소~오~ㄹ"하면 우리가 솔을 불고, "라~~~"하면 라를 불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마음껏 세게 불었다. 아까는 그렇게 나오지 않던 '높은 라' 소리가 났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높은 솔부터 높은 도까지 부는 연습을 했다. 그렇다고 두 시간 내내 플룻을 분건 아니었다. 플룻도 불고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강사님이 플룻을 4분 정도 불면 꼭 몇 분은 쉬라고 말했다. 연습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하루에 이십 분 정도만 하라고도 했다. 그것도 일주일에 한두 번이면 된다고. 소리가 잘 나지도 않는데 계속 연습하다 보면 스트레스받아서 질려버린다고 했다. 


나와 같이 음정 연습을 한 분은 이웃학교 교감 선생님이시다. 그전에도 출장으로 몇 번 결석을 하셨는데 곧 교장 자격 연수를 받으러 가야 해서 오케스트라 연습에 더 많이 빠질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연수받으러 갈 때 플룻을 들고 가서 연습해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플룻 강사님이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자기는 어디 가서 음악 한다고 티 내고 그런 것 싫어한다고 했다. 악기는 연습하면 되는 기술 같은 건데 뭐 대단한 거라도 되는 양 그러는 게 싫다면서 자기는 절대 그런 티를 안 낸다고 했다.


2옥타브 도까지 소리를 내는 건 레슨으로 치면 1년짜리 과정이라고 강사님이 말했다. 플룻 시작 3개월째에 '높은 라'를 못 불어서 합주실에서 쫓겨났다고 창피해하거나 좌절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합주실에서 쫒겨난 두 사람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졌다. 감사했다.


부진아 맞춤형 개별 수업의 효과를 실감했다. 이때까지의 연습 시간 중 가장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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