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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판 Jul 26. 2024

제네시스를 받았다

 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_ 06화

반가워, 나비야



세 번째 시간. 드디어 우리에게도 악보가 나왔다. 한 장에는  '나비야'라고 적혀 있었고 또 한 장에는 '자전거'라 적혀 있었다. 반가웠다.


'나비야'와 '자전거'를 2옥타브로 부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삑삑 대기는 했지만 누가 들어도 '나비야'인 줄은 알게 될 정도가 되었다. 다소 서툴기는 했지만 플룻 음을 타고 나비가 몇 마리 날아다니는 듯했다.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일 나기 십상인 자전거도 비틀비틀 연습실 안을 돌아다녔다. 


이 정도 난이도가 초보인 우리에게 딱 맞았다. 동요나 쉬운 가요 몇 곡을 더 하면서 성취감을 맛보았으면 좋았으련만 이 강좌는 플룻 입문자용 강좌가 아니었다. 연말 오케스트라 무대를 향해 내달려야 하는 과정이었다.


한창 신나게 불고 있는 데 강사님이 악보를 또 들고 왔다. 이번에는 연습용 악보가 아니라 공연용 악보였다. 악보 왼쪽 위에 '제네시스 플루트 파트 3'이라 적혀있었다. 지난주에 합주실에서 들었던 그 멋있는 곡의 악보가 우리에게도 나온 것이었다. 


있어야 할 자리

제네시스  악보를 받고 연습하고 았을 때 상급반에서 한 분이 초급반으로 건너오며 말했다.


"저 쪽은 제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것 같아요"


코로나 전에 1년간 지금 우리를 가르치는 강사님께 플룻을 배운 적이 있다고 했다. 육아휴직을 하고 집에서 종일 아기만 보고 있으니 우울감이 몰려와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돌도 안된 아기를 데리고 나왔다고 했다. 유모차에 앉아서 뻥튀기를 먹으며 플룻 부는 엄마를 기다렸던 그 아이는 지금 5살이라고 했다.


그분이 초급반으로 옮겨와서 이제 초급반이 5명, 상급반이 4명이 되었다. 상급반에는 초반에 플룻 전공자가 한 분 있었는데 그분은 오보에를 배우겠다며 옮겨가고 그 자리에 30대 초반의 여자분이 들어왔다. 공무원이며 플룻 강사님과는 중학생 때부터 알던 사이라고 했다. 서로 묻고 물어서 서로의 직업을 알게 되었다. 초급반 5명은 모두 교사, 상급반은 교사 2명, 공무원 2명이었다.



제네시스고 뭐고 간에



'제네시스'는 상급반에서 두 명씩 나눠 플루트 1과 2를 맡고, 초급반 5명이 플루트 3을 하는 것이었다. 초반에는 조표(음자리표 뒤에 붙는 샵, 플랫)가 붙지 않아 쉬워 보였으나 중간에 임시표(곡 중간에 임시로 붙는 샵, 플랫, 제자리표)가 많아서 어려웠다. 


공연용 악보로 연습을 하니까 동요를 연습할 때와는 달리 급속도로 피곤이 몰려왔다. 연습할 시간을 조금 준 뒤 플룻 소리가 안 나더라도 일단 끝까지 한 번 해보자고 강사님이 말했다.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면 마디를 놓쳤다. 플룻을 든 채로 눈이 악보 위를 하염없이 헤매고 있을 때면 강사님이 와서 손가락으로 마디를 짚어주고 가기도 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한마디 안에 음표가 너무 많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집중력도 떨어지고, 눈이 침침해서 악보도 눈에 잘 안 들어오고, 플룻을 든 팔은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자세가 흐트러지니 그나마 조금 나던 플룻 소리도 안 나기 시작했다. 소리가 안 나니까 의자에 앉아있는 것도 힘들게 느껴졌다.  


제네시스고 뭐고 간에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이 시간에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침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제네시스(Genesis, by Rossano Galante)를 감상하실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

 https://www.youtube.com/watch?v=zGFgDPPCF8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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