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_ 05화
두 번째 연습 시간
첫 주에 복도에서 연습하던 상급반이 발레연습실로 들어왔다. 발레연습실 공간을 가벽으로 나눠 넓은 곳은 상급반이 좁은 곳은 초급반이 쓰기로 했다. 중간에 문이 있어서 그 문으로 플룻 강사님이 왔다 갔다 하면서 가르쳤다.
'미파'와 '높은 도레'를 배웠다. '미파'는 지난주 배운 솔에서 오른손 2, 3을 누르면 '미 ', 미에서 오른손 3을 떼면 '파'였다. '높은 도'는 오른손 엄지로 플룻을 받친 상태로 왼손 2번과 오른손 5번을 누르고 나머지 손가락은 모두 떼야했다. 왼손 엄지도 떼야했다. 이때까지 배운 것 중 가장 난이도가 높았다. 오른손 엄지로만 플룻을 받쳐야 했기 때문에 플룻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야만 했다.
'높은 도'가 제일 어려운 줄 알았더니 바로 이어서 배운 '높은 레'는 더 어려웠다. '높은 도'에서 뗐던 손가락은 모두 붙이고, 붙였던 손가락은 모두 떼야했다. '높은 도'와 '높은 레'는 연습이 많이 필요할 듯했다. 그래도 이주 만에 '미파솔라시도레'까지 배웠다. 물론 소리는 잘 안 났지만.
오케스트라 단장님이 연습상황을 점검하러 오셨다. 복식호흡과 운지법을 연습하는 우리에게 호흡할 때 가슴과 어깨를 너무 부풀리지 말라고 했다. 또 자세를 바로 해서 발을 바닥에 딱 붙여서 불라고 말하고 나가셨다.
연습 마치기 30분쯤 전. 합주실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옆 사람을 따라갔더니 면접 대기실로 썼던 곳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플룻 초보 4명을 제외한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가 모여 연습하고 있었다.
제네시스에 빠지다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합주가 시작되었다. 플룻 소리와 현악기 소리가 나는 듯하더니 이내 바로 내 뒤통수 뒤에서 "빠바밤~ 빠바밤~ 빠바바바바바밤~ "하고 들려오는 나팔소리(그때는 금관악기가 다 같은 나팔소리로 들렸다)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관현악의 합주에 웅장, 장엄, 두근두근, 어울림, 하모니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앞사람 어깨너머로 넘겨다보니 악보에 제네시스( jenesis)라고 적혀있었다. 제네시스가 차 이름인 줄로만 알았던 사람, 그때부터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이 멀뚱멀뚱, 제네시스 차 구경하는 사람처럼 두리번두리번. 나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플룻 초급반 나머지 세 명도 그러고 있었다.
악보도 받지 않았으니 구경하면서 앉아있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자리에 앉으라고만 하고 더 이상의 안내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바로 지휘하고, 지휘봉으로 지휘대를 두드리고, 거기, 몇 마디부터 다시, 잠깐... 지휘를 하는 단장님만 말을 했다. 거기에 맞춰 단원들이 합주하고 있었다.
악보라도 있으면 보면대를 보고 있으면 되는데 악보가 없으니 그저 사람 구경, 악기 구경하느라 연신 두리번거렸다. 조금, 아니 많이 주눅 드는 분위기였다.
'너희들, 이런 분위기 처음이지?, 이런데도 같이 할 거야?, 같이 하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 그날의 분위기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30cm 자를 든 이유
두 번째 시간부터 합주가 가능하다는 건 나 같은 생초보는 거의 없다는 말이었다. 오선지 위에 줄이 그어져 있으면 당황하는 사람, '높은 파'에서부터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계이름을 세는 사람인 내가 할 수 있을까. 지금 플룻 소리도 제대로 안 나는데 이분들과 함께 공연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견뎌야지, 주눅 들지 말아야지, 반드시 이 분들과 같은 무대에 서고야 말리라 다짐했다.
다음 날, 플룻과 비슷한 길이의 막대로 운지법을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 연필꽂이에 꽂힌 30센티미터 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30센티미터 자를 플룻처럼 옆으로 들고 틈틈이 플룻 운지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에는 유튜브에서 제네시스 합주 영상을 찾아서 들었다. 합주실에서 제네시스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다. 그 속에 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