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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판 Aug 01. 2024

관객 셋, 연주자 둘(Feat. 파도)

 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_ 12화

오카리나 이야기



한 달에 한 번 같은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는 교내 독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동아리 회원 중 한 분이 탁구 동아리 회원이기도 해서 종종 탁구를 같이 쳤다. 내가 플룻을 시작했다는 말은 들은 그 분이 자기는 오카리나를 배우고 싶다는 말을 했다. 오카리나는 불기 어렵지 않으니 내가 가르쳐주겠다고 말했다. 


우리 집에는 오카리나가 5개나 있다. 나와 남편은 시기는 겹치지 않지만 대학교 평생교육원 야간 강좌에서 같은 강사님께 오카리나를 배운 적이 있다. 우리 집 아이들도 초등학교 때 방과 후 교실에서 오카리나를 배웠고 마을 축제에서 아이들이 공연할 때 나도 함께 참여한 적도 있었다. 그 주 주말에 본가에 가서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쓰던 오카리나 두 개를 갖고 왔다. 


오카리나를 가르쳐 주기로 했다는 말을 들은 독서 동아리 회장님(나에게 오케스트라를 권한 사람과 동일인)이 다음 독서 동아리 모임에서 오카리나 연주를 하는 건 어떠냐고 했다. 좋다고 했다. 


오카리나를 배우고 싶다던 선생님께 그 말을 전하자 "아이, 이제 처음 배우는데 부끄러워서 어떻게 해"하더니 그다음 날 아침에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악보를 뽑아 들고 혼자 있는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오카리나도 잘 불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우리는 고급연주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오카리나 공연(다소 거창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다른 마땅한 단어를 못 찾음)이라는 목표가 생겼으니 대충 할 수는 없었다. 그분이 아침, 점심, 방과 후 시간에 불쑥 문을 열고 찾아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서랍에서 오카리나를 꺼내서 함께 불었다. 



관객 셋, 연주자 둘(Feat. 파도)


그 달 독서 동아리 모임은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바닷가에서 하기로 했다. 동아리 회원 5명이 참석했다. 평일 오후, 한적한 바닷가 카페에서 함께 읽은 책이야기를 나눈 후 등대가 보이는 해수욕장으로 걸어갔다. 그곳을 무대로 정했다. 관객과 연주자 모두가 바다를 바라보고 앉았다. 


관객 셋, 연주자 둘. 


동아리 회장님이 가운데에 앉아 mr 반주와 악보가 진행되는 핸드폰을 들고 있고 연주자 둘이 양 옆에서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 오카리나를 불었다. 



그게 뭐라고. 가슴이 두근댔다. 오카리나의 가늘게 떨리는 음에 나도 모르게 키득 웃음이 났다. 웃다 보니 음이탈이 일어났고 음이탈이 일어나니 또 웃음이 났다. 바닷가를 걷던 몇 분이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함께 오카리나를 분 선생님이 시종 진지한 자세로 연주를 한 덕분에 그나마 덜 민망했었다. 공개적인 장소에 내놓기에는 부끄러운 실력이라 쑥스러웠지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다른 악기들은 소리 내는 게 좀 쉬운가, 플룻이 나와는 잘 안 맞는 악기인가, 플룻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이 될 때 바닷가에서의 오카리나 연주를 떠올렸다. 플룻도 언젠가는 오카리나처럼 불 날이 오겠지, 계속한다면 지금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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