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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판 Aug 02. 2024

우와한 플루티스트

 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_ 13화

지난주에는 그렇게 힘들더니

 

플룻을 그만둘 결심을 했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그만두지 않을 결심을 하게 된 그다음 주. 오케스트라 연습이 있는 목요일까지 매일 아침 학교에 일찍 가서 10분 정도 플룻을 불었다. 이 정도면 나로서는(방통대 공부도 해야 되고, 학교 일도 해야 되고, 배드민턴도 쳐야 되는데 타고난 체력은 약한)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목요일을 맞았다. 


지난주에는 합주실에 앉아있기가 그렇게 힘들더니 한주만에 다시 마음이 홀가분하고 편안했다. 로자문데 서곡 악보가 연습 중간에 어려운 악보로 바뀌는 바람에 힘들었는데 단장님이 그 부분을 플룻 강사님과 플룻 퍼스트 한 분이 하고 세컨드는 쉬는 것으로 바꿔줬다. 


덕분에 한결 편했다. 그런 방법이 있었구만. 어려운 악보를 주고 따라오는지 본 다음에 못 따라오면 그 부분을 할 수 있는 사람만 하게 하고 나머지는 쉬운 부분만 불게 하는 방법이. 


단장님은 합주 연습 내내 "아우 힘들어" 소리를 30번 정도는 한 것 같았다. 성인반 시간 전인 학생들 시간 때 진이 빠진 모양이었다. 지휘대 바로 앞에 앉은 바이올린 초보자에게 활 쓰는 법을 여러 번 지적하고는 신경 쓰였는지 "괜찮으세요?" 하면서 물어보기도 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지적받으면 어떤 기분이라는 걸, 절대로 괜찮지 않다는 걸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지. 바이올린 초보자님, 부디 이 순간을 견뎌내시길, 절대로 그만두지 마시길.


우와한 플루티스트


마스크를 벗고 입으로 불어야 하는 관악기에 비해 현악기는 덜 힘들어 보였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지도 않고 호흡을 참기 위해 애쓰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마스크를 끼고 현을 켜는 모습이 우아해 보였다. 


다른 사람 눈에는 플룻을 부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A음도 못 내던 분이 아직도 그만두지 않고 있다니 우와 대단한 걸'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합주를 하다가 플룻 파트가 쉴 때 다른 악기들의 연주를 감상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평소보다 합주연습을 10분 정도 일찍 마쳐줘서 나오는데 기분이 좋았다. 다음번에는 다른 악보도 좀 덜어내주면 좋겠다고 옆자리 선생님에게 농담했다. 지난주에 그만두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도 종종 아무도 없는 시간에 연습하기 위해 출근 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이른 시간에 출근해서 플룻을 불고 있으면 다른 층에서 나와 같이 오케스트라를 하는 상급반 선생님의 플룻 소리가 들려왔다.  


10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플룻 강사님께 배운 오케스트라 플룻 초보자용 단기 속성 꿀팁을 알려드릴게요.

- 연주하다가 마디를 놓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플룻 부는 자세를 유지해라.
- 연주 끝부분에서 자기 연주가 끝났다고 바로 플룻을 내리지 말고 지휘자의 신호에 맞춰서 내려라.
- 연주 끝부분에서 호흡이 달려 음을 불지 못하더라도 기다렸다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악기를 내릴 때 같이 내려라.
- 한 마디 안에 음표가 많아 불기 어려우면 맨 첫 음만 불어라.
- 한 마디 안에 음표가 많아 불기 어려울 때 맨 첫 음만 불다가 여유가 생겨 다른 음도 불 수 있으면 가운데 음을 불어라.
- 중간에 마디를 놓치더라도 플룻을 내리지 말고 어떻게든 옆 사람의 음을 듣고 마디를 찾아가라.
- 자기 파트가 쉬고 있을 때는 속으로 마디를 세고 있다가 자기 파트 3마디 전에 플룻을 입에 대고 불 준비를 하고 있어라.
- 발로 박자를 맞추는 버릇을 들이지 마라. 그나마 박자가 맞으면 다행인데 안 맞으면 무대 위에서 말 달리는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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