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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판 Aug 03. 2024

총연습

 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_ 14화

공연 2주 전


드디어 공연 포스터가 나왔다. 작년 오케스트라 발표회 사진에 올해 참가하는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있었다. 학생 38명, 성인 30명, 악기별 지도 강사 12명 모두 80명이었다.


총연습 기간이었다. 이때까지는 학생부, 성인부 따로 연습을 했었는데 이제는 함께 합주를 맞춰야 할 시기였다. 원래 연습 시간은 7시 30분에서 9시 30분까지였으나 학생들과 맞추기 위해 5시부터 8시까지로 시간이 변경되었다. 6시에 퇴근하는 사람은 퇴근하는 대로 중간에 합류했다. 성인반은 주 1회 목요일 연습이었으나 학생들과 같이 월요일, 목요일 주 2회 연습을 했다. 공연하는 주에는 월, 목, 금 3회 모였다. 


내 옆에 앉은 여자 아이는 9살이라고 했다. 9살에게 3시간은 힘든 시간이었다. 연습 시간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몸을 틀고 움직이고 수다 떨고 나에게 말도 걸었다. 그래도 지휘가 시작되면 집중해서 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들도 세 명 보였다. 


목요일 합주 연습 때 단장님이 시작부터 지쳐있었던 게 이해가 되기도 했다. 목요일은 5시부터 7시까지 학생들(대부분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30분 동안 간단한 저녁 식사 겸 휴식 시간을 가진 후 9시 30분까지 성인반을 가르치는 스케줄이었다. 천진난만하게 정신 사납게 하는, 화를 낼 수도 없고 화를 안 낼 수도 없는, 귀엽기도 하면서 얄밉기도 한 그런 아이들을 가르치고 난 후 성인반을 만난 것이었다.



손싱크 기술을 집중 연마하다


내 옆에 앉은 아이의 제네시스 악보를 넘겨다 보니 어른 필체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악기 휘두르지 X

지도(말) 할 때 집중하기

바른 자세로 연주하기

의자에 누워있지 X

반항하지 X

멍 때리지 X


초등학생들이라 플룻도 휘두르고 의자에 눕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어른 필체 옆에 그 아이의 필체로 보이는 글씨로 똑같이 따라 쓴 게 보였다. 플룻 강사님이 아무리 말해도 말을 안 들으니 글로 적어 준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똑같이 따라서 쓰면서 그 말을 새기라고 한 것 같았다. 이 아이들을 데리고 플룻 강사님이 어떻게 지금까지 끌어왔는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총연습 시간은 그야말로 총만 안 들었다 뿐이지 전쟁터 나가는 군인들 같은 비장함이 흘렀다. 그래도 아이들은 순간순간 장난치고 싶어 했고 이내 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앞자리에 앉은 초등학교 고학년 여학생은 뒷자리에서 산만하게 구는 9살짜리 아이에게 "OO아 그러면 안 돼, 집중해야지" 하며 의젓하게 타이르기도 했다. 단장님은 산만한 아이들을 혼내다가도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에 어이없어하며 웃기도 했다. 


총연습 기간 동안 연습 시간이 늘어서인지 어려웠던 구간도 웬만큼 따라갈 정도가(손싱크 가능) 됐다. 공연 바로 전날 합주 때는 집중해서 플룻을 불어서인지 유난히 입이 마른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최종 리허설 때는 텀블러를 들고 와야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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