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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판 Aug 05. 2024

베토벤 바이러스는 아니더라도

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_ 16화

몸살인가 했더니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심포니 넘버 파이브를 연주한(엄밀히 말하자면, 흉내 낸) 사람이라면 적어도 주변에 베토벤 바이러스는 아니더라도 차이코프스키 바이러스 정도는 전파해야 되지 않았을까.


연주회가 끝난 다음날인 일요일. 온몸이 쑤셔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전날 자가 검진 키트로 코를 쑤셨을 때는 한 줄이었다. 연주회 준비하느라 무리해서 몸살이 났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때까지 겪은 몸살과는 통증의 정도가 달랐다. 온몸이 다듬이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것 같았다. 


코로나가 아니고는 이렇게 아플 수 없다 싶어서 다시 검사하니 두 줄이 나왔다.  플룻 강사님에게 꽃다발을 안겨드리고 싶어서 꼭 가겠다고 약속했던 성인 오케스트라 연주회에는 못 갈 것 같다고 카톡을 보냈다. 플룻 단톡방에도 코로 나에 걸린 것 같으니 다른 분들도 자가 검진 키트로 검사해 보라는 글을 올렸다. 연주회 전날부터 목이 칼칼하고 마른 느낌이 들었던 게 플룻을 많이 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코로나 전조 증상이었던 것이다.


월요일에 병원 문이 열리기 전부터 기다리다가 문 열자마자 들어가서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코로나가 온 학교를 휩쓸고 지나갈 때도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코로나바이러스를 그렇게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끝내고 처음으로 맞이하게 된 것이다.


본가에서 출퇴근을 하든지 모텔에 가서 생활하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는 이때까지 코로나에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을 만큼 건강하며 코로나에 걸린다고 하더라도 학교에 출근하겠다고 큰소리치던 남편이 월요일에 학교에 가자마자 몸이 이상하다고 전화가 왔다. 남편도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그렇게 남편한테 까지만 옮기고 지나갔으면 좋았으련만.



슈퍼 전파자


플룻 단톡방이 이상했다. 수요일에 연말 모임 겸 오케스트라 마무리 회식을 하기로 했는데 무슨 일인지 조용했다. 회식 장소로 어디가 좋은지 투표를 하는데 참여율이 저조했다. 평소 같지 않은 분위기였다. 궁금해서 애기 엄마(육아휴직 기간에 애기 업고 플룻을 배우러 다녔다던)에게 카톡을 했다.


"샘~ 혹시 코로나 걸렸어요?"


"ㅎㅎ 네 어제 확진받았어요"


"회식 장소 투표를 안 할 사람이 아닌데 투표를 안 하고 있길래 카톡 해봤어요"


"제가 코로나라 그러면 샘 신경 쓰실 것 같아서요. 우리 어디서 어떻게 걸렸는지 모르니 서로 미안해하지 말기로 해요"


공연을 보러 왔던 지인으로부터 큰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플룻을 불고 있는 것을 봤는데 이번 주에 그 선생님이 코로나에 걸려서 결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플룻 8명 중 나를 포함한 4명이 코로나에 걸린 것이었다. 내가 옮은 건지 내가 옮겼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제일 먼저 걸리고 다른 분들이 나중에 걸린 거로 봐서 내가 슈퍼 전파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감염 경로 추적


공연하던 주 목요일에 선생님들과 학교에서 배드민턴을 쳤는데 그때 배드민턴을 친 선생님 세 분이 금요일부터 코로나로 결근을 했다. 배드민턴을 칠 때 어떤 날은 마스크를 끼고 치고 어떤 날은 마스크를 벗고 쳤었다.  하이파이브도 손으로 하지 않고 라켓으로 부딪치니 코로나 걱정은 하지 않았었다. 그 선생님들도 잠복기여서 코로나 증세가 안 나타났기 때문에 운동하러 나왔던 것이다. 


미루어 짐작건대 배드민턴을 함께 친 선생님들 누군가가 나한테 바이러스를 옮겼고 내가 금요일과 토요일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옮긴 게 아닌가 싶었다. 12월이라 체력이 바닥난 데다 오케스트라 연주회까지 준비하느라 지친 내 몸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옳다구나 하고 들어온 게 틀림없었다.


현악기는 마스크를 끼고도 연주가 가능하지만 입으로 부는 관악기는 마스크를 쓰고 연주할 수는 없는 일. 특히 플룻은 입으로 취구(입김을 불어넣는 구멍)를 입으로 덮어서 부는 게 아니라 반은 덮고 반은 열고 부는 형태라 침이 제일 많이 튀는 악기였다. 


연주회 준비하는 동안에도 마스크를 꼈다 벗었다 하며 얼마나 서로 조심하며 준비했는지 모른다. 연주회를 앞두고 월, 목, 금 주 3회 3시간씩 총연습을 할 때도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 공간에 모여서 마스크를 벗고 악기를 불면 코로나에 걸리기 딱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케스트라 무대를 마친 후에 코로나에 걸렸다는 것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코로나에 걸렸다면, 나 때문에 다른 분들이 코로나에 걸려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면 두고두고 속상하고 미안했을 일이었다





 *베토벤 바이러스 : 2008년 9월 10일부터 2008년 11월 12일까지 MBC에서 방송된 수목드라마이다. 대한민국 제작 드라마 중 유일무이하게, 서양 고전 음악을 소재로, 시청자 정서에 미칠 파급력을 고려하여, 모든 계층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뮤지컬 드라마인 만큼, 이야기 구조와 진행력, 극의 완성도가 탄탄하다는 큰 호평을 얻었으며, 높은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 출처 : 다음 위키 백과



* Tchaikovsky: Symphony No.5 mov.4를 감상하실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

https://www.youtube.com/watch?v=Mb9Tr7qRR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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