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모판 Aug 06. 2024

오케스트라, 그 후

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_ 17화

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플룻 앙상블


오케스트라 발표회까지만 하고 그만 둘 생각이었다. 시간도 체력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나한테는 플룻이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오케스트라 공연이 끝나고 코로나 격리 기간도 끝난 뒤에 가진 송년 모임에서 플룻 강사님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이번 공연으로 끝낼 게 아니라 플룻 앙상블을 만들려고 하니 참여하고 싶은 분은 하라고. 강사님의 말을 들으니 또 함께하고 싶어졌다. 오케스트라 공연에 참여했던 분들 중 한 분을 제외한 모든 분이 하기로 했다. 


첫 모임에 가서 보니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 하던 분, 첼로 하던 분 얼굴도 보였다. 두 분 모두 예전에 플룻 강사님께 플룻을 몇 년 동안 배운 후 지금은 다른 악기를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플룻 앙상블은 12명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중간에 한 분이 그만두고 11명으로 1년간 활동을 했다. 처음에는 플룻 강사님의 재능기부로 무료 강좌로 운영했었는데 작년 하반기부터 군청에서 지원하는 평생학습 동아리 사업에 선정이 되어 강사님께 약간의 강사비가 지급된다. 이 사업에 계속 선정되기 위해서는 출석률이 중요한데 우리는 출석률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동아리회원 모두 끈기와 성실이 몸에 밴 분들이라. 


작년에는 11명이었는데 올해는 2명이 빠졌다. 그중 한 분은 1년간 휴직 중인데 휴양이 끝나면 내년에 다시 플룻 앙상블에 들어올 거라며 단톡방에서도 나가지 않고 있다. 플룻 앙상블을 하면서부터는 학생들과 함께하는 오케스트라에는 지원하지 않았다. 내게는 플룻 앙상블만으로도 충분했다. 


또 한 번의 자퇴 위기

플룻 앙상블은 오케스트라에 비해 심리적으로는 편했다. 플룻 강사님과 동아리 회원들이 워낙 다들 성격이 둥글둥글해서 분위기가 좋았다. 그렇지만 오케스트라 할 때 보다 난도 높은 악보가 나와서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음표도 너무 많고 박자도 빠르고 조표도 많아서 오케스트라 할 때 보다 더 힘들었다. 오케스트라 연습할 때는 다른 악기들이 연주할 때 플룻은 대기하고 있는 시간이 휴식시간이기도 했는데 그런 시간이 적었다. 


플룻 앙상블을 하는 중간에 또 한 번의 자퇴 위기가 있었다. 플룻 앙상블을 시작한 지 3개월 되던 때였다. 작은 아이가 취업을 해서 자취방을 구해야 하는데 마땅한 방을 못 구해서 동동거리던 날이었다. 방을 구하러 다니느라 플룻 연습일에 결석을 해야만 했다. 운좋게 그 날 방을 구한다 하더라도 연습실까지는 쉬지않고 3시간이나 운전해서 가야하는 거리였다. 도저히 시간이 안 나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플룻을 못 하겠다는 문자를 강사님께 보냈다. 


그날 저녁에 플룻 강사님에게 전화가 왔다. 일이 있으면 연습일에 빠져도 되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같이 하자고. 그때는 정말로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강사님의 전화를 받으니 그래도 계속해볼까 하는 마음이 다시 생겨났다. 강사님 덕분에 그렇게 또 한 번의 자퇴 위기를 넘겼다. 


교회에서 플룻을 연주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이웃 학교 선생님은 플룻 강사님에게 따로 개인 레슨을 받고 있었다. 같이 레슨을 받자고 나에게도 몇 번이나 권유했으나 플룻 레슨까지 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거절했었다. 그분이 집안일을 마무리하느라 한 주 결석하고 다음 모임에 갔을 때 나에게 말했다. 내가 자퇴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 개인 레슨 시간에 플룻 강사님이  '플룻을 못 불어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선생님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라고 말했다고. 그 말을 듣고 결심하기 좋아하는 나는 다시는 자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여기서 잠깐, 제가 플룻을 취미로 하는데 돈은 어느 정도 들었는지 알려드릴게요.

- 플룻 구입비 무료(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쓰던 플룻 사용)
- 플룻 레슨비 무료(군청 평생학습 동아리 지원 사업에 선정됨)
- 플룻 연습실 사용료 무료(문화센터 연습실 사용)
- 문화원 상반기 공연비(첼로와 피아노 연주자 연주비 및 대관료, 팸플릿 제작비) 1인당 25,000원
- 문화원 상반기 공연 후 회식비 1인당 23,000원
- 전통시장 공연 후 회식비 1인당 17,500원
- 문화원 하반기 공연비(첼로와 피아노 연자자 연주비 및 대관료, 팸플릿 제작비) 1인당 40,000원
- 문화원 하반기 공연 후 회식비 1인당  21,470원

작년 한 해 동안 126,970원이 들었습니다. 한 달에 10,000원 정도네요. 플룻 레슨비와 연습실 사용료가 무료였다는 점도 있지만, 연주자는 플룻 강사님의 지인 위주로 섭외하여 교통비 정도 드리는 선에서 해결하고, 팸플릿을 컴퓨터 잘하는 분이 직접 만들기도 하고, 회식을 하면 다 같이 밥 먹고 간단히 차나 맥주 한잔 마시고 9시 전에 헤어지는 분위기라서 가능했던 금액입니다. 저는 한 번도 안 했지만 플룻을 서울로 보내서 수리(조율)하는 분들은 저 금액에서 몇 만 원(플루트 상태에 따라 금액이 다름)을 더 지출하는 걸 봤습니다. 
이전 16화 베토벤 바이러스는 아니더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