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모판 Aug 07. 2024

전통시장 무대에 서다

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_ 18화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전통시장


플룻 앙상블을 하면서 첼로, 피아노, 바이올린, 클라리넷 등 다른 악기와 협연할 기회가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전통시장에서 한 공연이다.


바이올린과 첼로 앙상블, 플룻 앙상블, 클라리넷 앙상블이 함께 한 공연이었다. 바이올린과 첼로는 학생 3명 성인 3명, 플룻은 학생 1명 성인 10명, 클라리넷은 성인 5명이었다. 


그 날 공연한 전통시장 무대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시장 골목에 있는 무대가 아니다. 전통시장 주차장 가까이에 위치한 곳으로 가끔 야시장 행사가 있는 날이면 푸드부스가 10개 미만으로 운영되는 한적한 공간이다. 그렇지만 축제가 열릴 때면 음악소리로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읍내 중앙에 위치한 작지만 영향력 있는 야외무대였다. 그곳에서 쿵쾅거리는 스피커 소리가 나면 궁금해서라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보면대 설치, 관객석의 플라스틱 의자 세팅 및 정리까지 연주자들이 일일이 하는 공연이었다. 누구도 우리가 왜 이런 것까지 하느냐고 말하지 않았다. 출연자들이 알아서 척척 세팅하고 뒷정리까지 하는 주체적이고도 자발적인 연주회이자 연주자와 관객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


바이올린과 첼로 앙상블이 먼저 연주를 하고 그다음에 플룻, 클라리넷 앙상블 순서로 연주를 하고 마지막으로 연주자들이 모두 '사랑의 인사'를 합주하는 것으로 마치는 공연이었다. 연주자들은 무대 맨 앞자리에 앉아있다가 순서가 되면 무대로 올라가서 공연을 했다.  


작년 5월 말, 수요일 저녁 7시 30분. 해거럼녘 하늘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관객석 머리 위 공중에는 축제분위기를 돋우는 꼬마전구가 알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바닥에는 빨갛고 파란 야외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 30여 세트가 펼쳐져 있었다. 


무대를 힐끔 보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일부러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의자가 없어서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 마주 앉아 핸드폰을 하는 사람들, 핸드폰으로 무대 사진을 찍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풍경 사이로 흐르는 클래식 악기의 선율들. 아름다운 밤이었다.



치맥 당기는 밤



음악소리를 듣고 무슨 일인가 하고 몰려든 사람들 속에 우리 학교 2학년 남학생 네 명이 있었다. 무대에서 리허설하는 사람들 속에 아는 얼굴이 있으니 와다다하며 무대 가까운 곳으로 달려왔다. 


"와, OO선생님이다. OO선생님도 계셔"


공연이 시작됐을 때는 뛰어다니지도 떠들지도 않고 무대 가까운 곳에 서서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중2 남학생들이 진지하게 공연을 감상하는 모습을 플룻을 불며 곁눈으로 바라보는 뿌듯함이라니.


오케스트라 발표회 때에도 그 해 4월의 문화원에서 연주회를 할 때도 본가에 가느라 공연에 못 온 A가 공연을 보러 왔었다. 꽃다발 받을 만큼의 실력도 아니고 부담을 주기도 싫어서 꽃다발을 들고 오지 말라고 했더니  칼랑코에 화분을 사들고 왔다. 그것도 세 개씩이나. 남편도 퇴근하면서 바로 전통시장으로 왔다.


플룻을 부느라 객석 뒷자리에 앉아있던 A의 표정은 보지 못했지만 '내가 저분을 오케스트라에 입문시켰지, 중간에 그만 둘 뻔했을 때도 내가 붙잡아 줬지' 생각하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게 틀림없다. 플룻까지는 무리라며 플룻 하나는 정리하라고 수시로 플룻 자퇴를 종용하던 남편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과 영상을 찍느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마지막 '사랑의 인사' 합주 전에 클라리넷 연주자 중 남자 한 분이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노래를 불렀다. '당신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사람인지'하며 노래가 시작되자 악기 연주할 때는 들리지 않던 환호가 쏟아졌다. 그 순간만큼은 그분이 관객들 모두의 '임'이자 '영웅'이 된듯한 분위기였다. 


플룻 공연도 끝났고 마지막 합주곡 한 곡만 남겨놓은 상태라 나도 편안하게 공연을 즐겼다. 무대 앞 맨 앞자리에 앉아있었다. 옆에서 노래에 맞춰서 손을 위로 들고 좌우로 흔들기에 나도 따라서 흔들었다. 플룻은 허벅지 위에 올려두고.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다가 환호하며 손뼉 치며 좋아하다가. 그러다 신이 나서 다리를 조금 들썩거렸는지 갑자기 플룻이 다리 위에서 데구르르 구르기 시작했다. 빠르게 손을 뻗었으나 플룻이 나보다 더 빨랐다. 바닥에 떨어진 플룻을 얼른 주워 들면서 옆을 보니 그 장면을 본 플룻 앙상블 회원들의 눈이 커지는 게 보였다. 


'세상에,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플룻을 떨어뜨리다니' 그런 표정이었다. 플룻을 살펴보니 취구(바람 넣는 구멍) 주변에 바늘로 찌른 듯한 자국이 몇 개 생겨나 있었다. 콘크리트 위에 있던 모래에 찍힌 것 같았다. 마음이 쓰라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다음부터는 플룻을 꼭 쥐고 박자에 맞춰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플룻 강사님이 전통시장 플라스틱 테이블에서 간단히 뭐라도 마시고 헤어지자고 했으나 나는 빠지겠다고 했다. 대단치도 않은 연주회에 화분까지 사들고 시간 내서 찾아와 준 A와 퇴근하자마자 오느라 저녁을 먹지 못한 남편과 셋이 치맥을 먹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분위기에는 살얼음 낀 맥주와 갓 튀겨낸 프라이드치킨의 조합이 딱 어울렸으므로. 








이전 17화 오케스트라, 그 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