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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판 Aug 07. 2024

삑사리를 겁내지 않는 자세

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_ 19화

삑사리를 겁내지 마라


플룻 앙상블 연습 시간에 성인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단 지휘자님이 격려해 주러 찾아오신 적이 있었다. 문 앞에서 웬 아이와 함께 기웃거리길래 손주를 데리고 연습실에 구경온 동네 할아버지인가 생각했다. 


플룻 강사님이 오케스트라단 지휘자님이라고 소개했다. 그분이 플룻 강사님 대신 지휘를 한 번 해 주시더니 "잘했다"는 칭찬을 먼저 해주셨다. 그다음에 어떤 부분에 좀 더 신경을 쓰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신 뒤 이런 말을 덧붙였다.


 "공연 현장에 와서 감상하면 좋은 점이 삑사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바이올린 대가들도 연주하다가 활이 바이올린 둥근 구멍 속으로 끼어들어가는 일도 있어요. 그런 게 현장에 와서 감상하면서 얻을 수 있는 재미예요. 퀄리티 좋은 연주야 유튜브에 많이 있어요" 


연륜과 품위가 느껴졌다. 낡은 등산화에다 배가 많이 나온 모습이 영락없는 이웃집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는데 ㄹ을 r로 발음하는 습관이 있는 걸로 봐서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신 듯했다. 클라리넷과 플룻 동아리의 합동 공연을 앞두고 연습하는 우리들에게 부담 갖지 말고 즐기면서 하라는 말이었다. 공연 때 삑사리가 안 나게 연습을 해야 되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삑사리를 겁내지 말고 자신 있게 불라는 말이기도 했다.



틀릴까 봐 이상한 소리가 날까 봐 옆 사람 부는 소리가 들리면 조금 늦게 따라 부는 습관이 생긴 내 귀에 '삑사리'라는 단어가 쏙 들어왔다. 삑사리를 겁내지 않는 자세. 플룻 연습뿐만 아니라 살아가는데도 꼭 필요한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지난해 가을, 읍내 박물관 바깥 로비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연말 발표회를 앞두고 실력을 점검하는 기회이기도 하고 군청 지원을 받으며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던 터라 활동 실적이 필요해서 한 공연이기도 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마지막 곡으로 연주하기로 한 10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연주 시작하기 전에 플룻 강사님과 불알친구(50대 초반의 여자분)이며 플룻 강사님에게 오랫동안 플룻을 배우고 지금은 첼로를 배우고 있다고 처음에 자신을 소개했던 분이 "오늘 사람들 전부다 터미널 앞에 가수 이용 보러 갔어요"라고 말했다. '잊혀진 계절'을 부른 가수 이용이 주민자치회가 주관한 문화행사에 출연한 날과 시간이 겹쳤던 것이었다. 


플룻이 연주를 할 때는 클라리넷 연주자들이 관객이 되고, 클라리넷이 연주를 할 때는 플룻 연주자들이 관객이 되는 단출하고 아기자기한 공연이었다. 이용을 보러 가지 않고 우리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이 몇 명(열명 정도?) 있었다. 관객수보다 연주자 숫자가 더 많은 공연. 그래서 서로에서 더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는 공연이었다. 


그때도 남편과 A가 공연을 보러 왔었다. 공연이 끝난 후 남편과 A가 온 것을 본 플룻 강사님이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이때까지 이런 공연을 보러 이렇게 일부러 찾아온 사람은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플룻 실력 꼴찌인 사람의 어깨가 5cm 정도 위로 살짝 올라갔다.


플룻을 하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10월의 마지막 밤이었을 것이다. 플룻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한 덕분에 10월의 마지막 밤에 10여 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연주한 그날은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계절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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