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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판 Aug 07. 2024

에필로그

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 _ 20화

플룻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플룻을 시작한 후 몇 번이나 그만둔다고 했으면서도 아직도 플룻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를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제가 끈기가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플룻이 재미가 없었다면, 함께하는 사람들이 싫었다면 지금까지 플룻을 할 수 있었을까요? 


플룻강사님이 얼마나 든든하고 재미있게 우리를 이끌어 가는지, 플룻을 함께하는 분들은 얼마나 따뜻한지, 얼마나 플룻에 진심인지 프라이버시 때문에(정확히는 글재주가 없어서) 세세하게 말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올해까지라고 생각하니 뒤늦게 사랑을 깨달은 사람처럼 요즘 플룻이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직장 관계로 내년에는 이곳을 떠나야 하거든요. 그래도 오케스트라 활동이 지금의 플룻 앙상블로 이어졌듯 다른 곳에 간다 하더라도 또 어떤 형태로든 이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오케스트라를 하면서 배운 것도 많습니다. 오케스트라 합주 연습시간에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것, 2시간 연습을 하고 나면 기운이 쪽 빠진다는 것,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 자게 된다는 것, (그런 면에서 불면증 환자에게 강추) 연습하지 않으면 실력은 절대 늘지 않는다는 것 등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부진아의 심정을 아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배움이었습니다. 


부진아는 수업 시간에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될 거라는 것, 친구들 앞에서 못한다고 지적받으면 창피하고 자존심 상해서 교실에서 뛰쳐나가고 싶을 거라는 것, 그렇지만 부진아도 선생님이 좋고 친구들이 좋으면 학교에 오고 싶을 거라는 것, 공부를 못해도 친구들과 선생님이 가르쳐 주려고 애쓰는 마음이 느껴지면 미안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할 거란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양다리의 결말


이쯤에서 저의 플룻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가 양다리였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고 혹시라도 플룻이 그렇게 어려운 악기인가 싶어 플룻 배우기를 주저하는 분이 생기면 안 되니까요. 그렇다면 플룻을 하는 동안 제가 양다리를 걸쳤던 취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먼저 배드민턴을 말씀드리면,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일주일 뒤에 열린 그해 대회에서는 1승 1패로 예선 탈락했지만 다음 해에는 E조(가장 낮은 레벨)에서 준우승을 했습니다. 


오케스트라 발표회를 마친 다음 해 2월에는 방통대 국문과를 졸업했고(과 동기 이름 하나도 알지 못한 체), 매사에 바람을 너무 빵빵하게 넣으면 넘어진다는 교훈을 뼈 아프게 가르쳐 준 자전거는 1년 동안 먼지를 덮어쓰고 있다가 다른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임원으로 있던 문학 카페는 탈퇴를 했고, 그 후 브런치에 입성하여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교내 독서 동아리 활동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참, A의 권유로 한  문학단체의 공모전에 응모한 결과 동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여 지역 일간지에 제 이름 석자가 실린 일도 있었답니다.  


플룻을 시작하기 전 저의 취미 순위 1위였던 탁구는 플룻과 배드민턴에 밀려서 1위 자리에서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지금은 학생들 동아리 활동 시간에 함께 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플룻 연습 가는 날은 다초점렌즈 안경을 꼭 챙깁니다. 일반 안경으로는 눈이 침침해서 악보가 잘 안 보이거든요. 새로운 곡이  A4로 나오면 그날은 뭐가 뭔지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다른 분들 부는 걸 듣고 첫 음만 불면서 따라갑니다. 그 주는 그렇게 보내고 그다음 주에는 A4를 B4로 확대 복사를 해서 음표 위에 계이름을 써서 갑니다. 그러면 마음도 편하고 플룻 불기도 훨씬 낫습니다. 뇌에서 계이름을 인식한 후 손가락에게 운지법에 맞게 움직이라고 지시를 내리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시켜 주니까요.


악보에 계이름을 적지 않고 연주하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연습하면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지금은 더듬더듬하지만 저도 계이름을 쓰지 않고 음표만 보고 연주할 날이 오겠지요. 언젠가는.


행복한 상상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더니 큰딸이 말하더군요.


"오케스트라 이야기, 플룻 이야기 그게 뭐 궁금하겠어? 나라도 안 궁금해서 클릭 안 할 것 같아"


하하. 그렇겠지요. 플룻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저라도 그랬을 테니까요. 아무려면 어때요. 그래도 몇 사람은 궁금해하겠지요, 어쩌다 실수로 클릭했다가 읽는 사람도 있겠지요. '오케스트라는 아무나 하나'를 읽고 나도 악기를 하나 배워볼까, 나도 오케스트라 단원에 한 번 지원해 볼까 생각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라도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습니다.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오케스트라단을 한 번 만들어 볼까 생각하는 분이 몇 분이라도 생긴다면, 우리 주변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단이 더 많이 생긴다면, 그리하여 농촌에서도 어촌에서도 산촌에서도 오케스트라 선율이 울려 퍼진다면. 어때요?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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