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 소도시 여행 ④
피렌체에서 남서쪽으로 차로 한 시간 남짓. 산지미냐노(San Gimignano)는 토스카나의 수많은 소도시 가운데서도 단번에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낮은 구릉 위로 솟은 수많은 탑. 멀리서부터 이미 ‘탑의 도시’ 임을 알 수 있게 하는 풍경이다.
산지미냐노 가는 길
피렌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에나로 갈 때 탔던 131번 버스를 타고 포지본시(Poggibonsi)까지 간 뒤, 다시 130번 버스로 갈아탔다. 몬테마지오 광장(Piazzale Montemaggio)에서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환승 대기까지 포함해 약 한 시간 사십 분. 기차로 포지본시까지 가서 130번 버스로 환승하는 방법도 있다.
버스에는 산지미냐노로 향하는 듯한 외국인 남성 한 명이 함께 타고 있었다. 포지본시에서 나란히 내렸고, 우리는 같은 목적지를 두고 각자 알고 있는 버스 시간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게시된 시간표는 우리의 조사와 일치했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정보가 맞다고 주장했다. 십 분이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았고, 정확히 사십 분 후에야 도착했다.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대신 그에게서 아주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 산지미냐노행 버스정류장이 기차역 앞에서 공사 때문에 약 500미터 떨어진 곳으로 옮겨졌다는 이야기였다. 구글 지도에는 아직 반영되지 않은 정보였다.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괜히 역 쪽으로 걸어가 헤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프랑스 니스에서 온 여행자였다. 이미 여러 차례 산지미냐노를 다녀왔다며, 이 도시가 얼마나 멋진지 거듭 이야기했다. 기다리는 동안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식당 정보부터 피렌체행 버스정류장 위치까지 소소한 팁들을 얻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짧은 대화가 하루의 기억을 촘촘하게 만들어 주는 순간이었다.
도시의 역사
산지미냐노는 시에나보다 규모는 작지만, 전혀 다른 결을 지닌 도시다. 에트루리아인이 처음 터를 잡았고, 도시 이름은 훈족 아틸라로부터 이곳을 구했다고 전해지는 모데나 주교, 성 제미니아노(Geminianus)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2세기말 자치도시가 된 이 도시는 로마로 향하는 순례길 프란치제나 가도에 인접한 덕분에 빠르게 성장했다.
11~13세기 전성기에는 귀족들이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탑을 세웠다. 한때 72개의 탑이 하늘을 찔렀고, 가장 높은 것은 70m를 넘었다고 한다. 과열된 경쟁을 막기 위해 의회는 포폴로 궁(Palazzo del Popolo)의 그로사 탑(Torre Grossa) 보다 높게 짓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한했다. 지금은 14개 남짓만 남아 있지만, 여전히 ‘중세의 맨해튼’, ‘탑의 도시’라는 별명은 유효하다.
흑사병으로 인구의 절반이 사라지고 순례길이 바뀌면서 도시는 점차 쇠락해 가다가, 결국 피렌체에 편입되었다. 발전이 멈춘 대신, 중세의 시간이 그대로 보존되었다. 오늘날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치스테르나 광장
버스에서 내리자 곧바로 거대한 성벽이 시야를 채웠다. 둘레 약 2㎞의 성벽, 그 안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산 조반니 문(Porta San Giovanni)을 지나자, 중세의 골격이 온전히 남은 도시가 펼쳐졌다. 상점과 식당이 이어진 산 조반니 길(Via San Giovanni)을 따라 완만한 비탈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치스테르나 광장(Piazza della Cisterna)이 모습을 드러냈다.
광장 한가운데 놓인, 오래된 우물가 계단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 아무 말 없이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한때 주민들의 식수를 책임지던 우물이다. 쌀쌀한 날씨에도, 젤라토 세계 챔피언 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했다는 ‘돈돌리 젤라토’ 앞에는 아이스크림을 든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광장을 둘러싼 벽돌 건물에는 붉게 물든 잎과 아직 푸른 잎이 섞인 담쟁이가 벽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계절의 경계 위에 서 있는 듯한, 고혹적인 풍경이었다.
포폴로 궁과 그로사 탑
일곱 개의 탑이 둘러싼 두오모 광장에서 포폴로 궁을 먼저 찾았다. 14세기 초에 세워진 이 건물은 현재 시청사이자 시립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옆으로 이어진 높이 54m의 그로사 탑은 산지미냐노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전망대 역할을 한다.
궁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우물과 그 위를 감싸는 외랑 로지아(loggia)가 눈에 들어온다. 벽에는 빛이 바랜 프레스코화와 문장들이 남아 있고, 닳아서 경계가 흐릿해진 벽돌과 층층이 쌓은 둥근기둥, 이끼가 낀 돌계단이 오래된 시간의 결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시간이 멈춘 공간 안에 들어온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회랑을 지나면 시립 미술관 입구가 나온다. 필리포 리피의 〈천사에게 고하기〉, 시청 3층에 마련된 ‘단테의 방’의 프레스코화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당
두오모 광장에 자리한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당(Collegiata di Santa Maria Assunta)은 12세기 중엽에 세워졌다. 외관은 장식 하나 없이 소박하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14세기 시에나 파 화가들이 성서 이야기를 담아 그린 프레스코화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타데오 디 바르톨로의 〈최후의 심판〉과 〈천국과 지옥〉, 베노초 고촐리의 〈성 세바스찬의 순교〉,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성 요한 세례당의 수태고지〉가 이어진다.
이곳 사람들은 공식 수호성인인 성 제미니아노뿐 아니라, 산지미냐노에서 태어난 성녀 피나(Santa Fina)도 깊이 공경한다. 열 살에 병으로 마비된 채 나무판자 위에서 생을 보낸 성녀 피나. 열다섯 살에 숨을 거두던 날, 종이 저절로 울리고 탑과 벽에 제비꽃이 피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녀의 예배당에는 그 나무판자와 함께, 도메니코 기를란다요가 그린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다. 이 프레스코화에는 나무판자 위에 누워 있는 피나에게 성 그레고리가 그녀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부속 박물관에서는 바사리 등 여러 화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보는 각도에 따라 인물이 바뀌어 보이는 〈성 프란체스코와 성 키아라〉, 〈예수 그리스도와 막달레나 마리아〉에 눈길이 갔다. 16~17세기 피렌체 화가 마테오 로세 3세의 작품이다. 오래전에도 이미 이런 시각적 테크닉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골목길과 '라 로카'의 풍경
골목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산지미냐노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거칠게 쌓은 돌벽과 오래된 계단 사이로 붉은 벽돌과 담쟁이가 어우러진 풍경이 반복된다.
요새 라 로카(La Rocca)로 오르는 길에 만난 한 노부인은 우리를 집 안으로 손짓해 불렀다. 안뜰에서 바라보면 중세의 탑 하나가 멋지게 보인다며, 사진을 찍으라고 초대한 것이다. 말없이 건네는 이런 친절이 이탈리아 여행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도시의 가장 높은 지점, 라 로카에 오르자 도시 전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마천루처럼 솟은 탑들 너머로 사이프러스와 올리브 나무가 이어지는 토스카나의 전형적인 구릉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지미냐노는 유난히 깔끔한 중세 도시였다. 어둡고 침침한 쇠락의 흔적보다는, 잘 정돈된 시간의 표정이 남아 있었다. 특별한 명소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 충분한 도시. 늦가을의 호젓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이 마을을 천천히 음미했다.
치스테르나 광장의 테라스 식당에서 먹은 버섯 피자와 토마토소스 천엽 요리는 다소 짰지만, 가격과 분위기를 생각하면 만족스러웠다.
다시 피렌체로
돌아오는 길에도 운이 따랐다. 환승지 포지본시에서 오래 기다릴 줄 알았는데, 이전 버스가 연착하는 바람에 거의 기다림 없이 피렌체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오가는 버스가 같은 정류장에 서는 것도 작은 행운이었다.
산지미냐노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탑처럼 또렷한 기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