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누키 호수에서 아오키가하라 숲까지
타누키 호숫가를 따라 걷다
타누키 호수를 한 바퀴 걷는 것으로 이번 여행의 첫 하이킹을 시작했다. 타누키 호수로 가는 길에 마주친 아사기리 고원에는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후지산의 끝자락, 후지노미야시 아사기리 고원에 자리한 타누키 호수는 면적 약 0.31㎢, 둘레 약 3.3km의 아담한 인공 호수다.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으로 계절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특히 매년 4월 20일과 8월 20일 무렵, 일주일 정도만 볼 수 있는 ‘다이아몬드 후지’로 유명하다. 태양이 후지산 정상에 정확히 걸리며 호수 수면에 반사되는 장면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호숫가의 삼나무 숲길을 따라 걸으며 호수 너머로 보이는 후지산 풍경을 감상했다. 호수 주변 풀밭에서는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화창한 날씨는 이 모든 풍경에 아름다움을 더했다.
한 바퀴 도는 데 약 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걸음이 빠른 우리 부부는 40분 만에 가장 먼저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다. 길이 워낙 좋아 더 오래 걷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아사기리 고원 둘레길까지 이어서 걸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모토스 호수를 따라 걷다
후지산 기슭에는 흔히 ‘후지산 5호’라 불리는 다섯 개의 호수가 있다. 모토스 호수, 쇼지 호수, 사이 호수, 가와구치 호수, 야마나카 호수다. 모두 해발 800~900m 고원 지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후지산 분화로 형성되었다. 현재는 후지 하코네 이즈 국립공원에 속해 있고, 후지산 세계문화유산의 구성 자산이기도 하다.
점심 후에는 후지 5호 중 가장 서쪽에 자리한 모토스 호수를 찾았다. 수심이 깊고 투명도가 높은 호수로, 일본 1,000엔 지폐 뒷면의 배경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이곳에는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지 않아 차가 다니는 도로를 함께 걸어야 했다.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걷기에는 다소 불편한 길이었다. 우리 일행 외에는 걷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호수와 적당히 물든 단풍은 아름다웠지만, 걷기에 적합한 길은 아니었다.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 반 정도 걷고 나서야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만났다.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꽤 긴 시간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것에 만족했지만, 일부 일행은 불만을 털어놓았다. 적막한 길을 각자의 속도로 걷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좋았고,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아오키가하라 숲을 걷다
해발 약 1,000m 부근의 아오키가하라 숲은 9세기 후지산 대분화 당시 흘러나온 용암 위에 형성된 원시림이다. ‘아오키가하라 수해’ 혹은 ‘후지의 수해’로 불리며, 일본에서는 흔히 ‘수해’라고 하면 이곳을 떠올린다고 한다.
숲의 면적은 약 30㎢로 여의도 면적의 열 배에 달한다. 가장자리는 캠프장과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산림욕을 즐기기에 좋다. 다공성 용암 지반이 소리를 흡수해, 숲을 걷는 동안 세상과 단절된 듯한 느낌을 준다고도 한다.
세간에는 이 숲이 음습하고 음울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마주한 숲은 고요하고 깊었다. 푹신한 흙길과 이끼 낀 나무들이 제주 비자림을 떠올리게 했다. 해가 기울어 오래 걷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 숲은 천천히, 오래 머물며 걸어야 할 곳이었다.
다음 편에서는 후지산 오합목 오츄도와 미호노마츠바라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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