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토이아와 프라토, 계획하지 않았던 도시들

토스카나 소도시 여행 ⑦

by 필로트래블


하루 전, 루카에서 피렌체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피스토이아(Pistoia)와 프라토(Prato) 역이 연이어 스쳐 지나갔다. 피스토이아는 우리가 머물던 빌라의 호스트가 추천해 준 도시였고, 프라토는 여행을 준비하며 읽었던 《토스카나》 여행기 속에서 눈에 띄었던 이름이었다. 처음부터 계획해 둔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이날은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 그렇게 두 도시가 자연스럽게 하루의 행선지가 되었다.


유난히 '뛰는 날'이었던 피스토이아 여정


아침 10시 20분 기차를 타고 피스토이아에 먼저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프라토를 둘러보기로 했다.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채 피렌체 중앙역에 도착했지만, 발권부터 승강장을 찾는 일까지 좀처럼 순조롭지 않았다. 이 기차를 놓치면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다. 필사적으로 뛰었다. 이렇게 전력 질주를 한 게 고등학교 체력장 이후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기차는 우리가 올라타자마자 출발했다.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피스토이아는 피렌체에서 서쪽으로 약 30km, 기차로는 40분 남짓 걸리는 도시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구도시가 그렇듯, 두오모 성당이나 중심 광장을 찾으면 도시의 윤곽이 자연스레 잡힌다. 정보가 거의 없는 도시를 여행할 때 가장 안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우리도 먼저 두오모 광장을 향했다. 가는 길은 관광지라기보다는 현지인들의 생활공간처럼 보였다. 중세 구도시만 연달아 다니다가 현대적인 분위기의 동네를 마주하니, 마치 시간의 결을 잠시 건너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20181120_111412.jpg 피스토이아 초입


얼마 지나지 않아 관광안내센터가 눈에 띄었다. 지도 한 장쯤 얻을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리플릿이 비치되어 있었다.


피스토이아는 성당과 궁전 등 문화 유적이 유난히 많은 도시였다. 리플릿들은 이곳을 인근 마을들과 묶어, 문화와 자연을 모두 갖춘 토스카나의 ‘명품 도시’로 소개하고 있었다. 몬테카티니(Montecatini) 온천을 포함한 다양한 관광 코스도 함께 제안되고 있었다. 2017년 ‘이탈리아 문화의 수도’로 선정된 도시답게, 공연과 전시, 하이킹 코스까지 문화와 자연을 아우르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도와 자료를 챙겨 다시 두오모 광장으로 향했다. 피스토이아의 두오모인 산 제노 대성당(Cattedrale di San Zeno)은 흰색과 초록색 대리석으로 단정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세례당과 종탑까지 갖춘, 전형적인 토스카나 도시의 중심이었다.


20181120_114713.jpg 피스토이아, 두오모 대성당


광장 한편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시끌벅적 떠들며 선생님을 따라 대성당을 향해 가고 있었다. 관광객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광장이었다.


20181120_114422.jpg 피스토이아 두오모 광장, 대성당을 방문하러 가는 아이들


지도에 표시된 주요 명소들을 하나씩 돌아보았다. 도시 곳곳의 유적 앞에는 통일된 디자인의 설명판이 질서 정연하게 설치되어 있었는데, 문화의 수도로 선정되며 관광 인프라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것이 느껴졌다.


20181120_111933.jpg
20181120_120858.jpg
20181120_113021.jpg 피스토이아, 명소와 거리


피스토이아는 전반적으로 조용한 도시였다. 피렌체의 붐비는 거리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 찾기 좋은 곳. 여행의 초반이었다면 아마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걸었을 것이다.


주요 명소들을 둘러보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미리 찾아둔 식당은 하필이면 휴무였다. 프라토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역으로 향했다.


출발까지 4분 남은 기차표를 무인발매기에서 급히 뽑아 들고 승강장으로 향했다. 기차는 이미 들어와 있었다. 그제야 기차표에 펀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승강장에는 펀치기가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다시 역사 안으로 뛰어 들어가 펀치를 하고 돌아왔다. 우리가 자리에 앉은 지 30초 만에 기차가 출발했다. 이날은 아침부터 유난히 ‘뛰는 날’이었다.


바람이 휘몰아치던 프라토


프라토(Prato)는 프라토도의 도청 소재지로, 인구가 20만 명에 가까운 비교적 큰 도시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곽도시이자, 섬유 산업으로 번성해 ‘이탈리아의 맨체스터’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중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구도시로 가려면 프라토 중앙역이 아니라 프라토 포르타 알 세랄리오(Prato Porta al Serraglio) 역에서 내려야 한다. 피스토이아에서 프라토까지는 기차로 불과 10분 남짓이다.


프라토의 날씨는 좋지 않았다. 아침에 피스토이아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이미 프라토 역에 몰아치는 매서운 바람을 보았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바람에 비까지 더해졌다.


이번에도 두오모 광장을 향했다. 거리는 유난히 한산했다. 무엇보다 점심부터 해결해야 했다. 광장 근처를 서성이다가 겨우 식당 하나를 발견했다. 밖에서 보았을 때는 붉은 장식 때문에 중국 음식점 같았지만, 안으로 들어서니 차분한 분위기의 현지인 식당이었다. 관광객을 의식한 피렌체의 식당들과는 전혀 다른 결이었다.


전통 라자냐와 큼직한 라비올리를 주문했다. 다소 짜기는 했지만 맛은 충분히 좋았다.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이번에는 이탈리아식으로 에스프레소를 주문해 보았으나, 역시 내 입맛에는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가장 잘 맞는다.



KakaoTalk_20260205_064427487.jpg 프라토, 점심 후 에스프레소 한 잔


비바람이 매서웠지만,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점심 후 두오모 광장에 자리한 프라토 대성당(Duomo di Prato)과 프레토리오 궁전(Palazzo Pretorio)만큼은 한 바퀴 돌아보며 사진을 남겼다. 10세기에 이미 존재했던 프라토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을 기본으로 여러 단계에 걸쳐 확장된 성당이다. 도나텔로와 미켈로초의 설교단, 필리포 리피의 프레스코화 등 이름만으로도 묵직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그림412.jpg 프라토, 프라토 대성당


대성당 맞은편의 붉은 벽돌 건물, 프레토리오 궁전은 13세기말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과거에는 시청으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프라토 시립 미술관(Museo di Palazzo Pretorio)으로 쓰이고 있다. 필리포 리피, 프라 안젤리코, 도나텔로 등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소장한, 프라토를 대표하는 공간이다.


그림414.jpg 프라토, 프레토리오 궁전


날씨만 괜찮았다면 구도시를 좀 더 천천히 걸어보았을 텐데, 멈출 줄 모르는 비바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서둘러 피렌체로 돌아왔다.


프라토는 그렇게, 점심을 먹으러 다녀온 도시로 기억에 남았다.


#토스카나여행 #토스카나중세도시 #피스토이아 #프라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