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노고도 걷기(2): 역사·문화 이야기와 함께 걷다

나카헤치 경로, 규바도지에서 치카츠유, 그리고 바다 노을의 료칸까지

by 필로트래블

나카헤치 경로: 규바도지 - 치카츠유


3일 차에는 나카헤치 경로 가운데 나카헤치 미치노에키(道の駅)에서 출발해 규바도지(牛馬童子), 치카츠유(近露) 전망대를 거쳐 히도도기민숙에 이르는 구간을 걸었다. 전날의 홋신몬오지–구마노혼구타이샤 구간보다 남서쪽에 위치한 길로, 약 6.5km. 두 시간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였다. ·


나카헤치 규바도지에서 치카츠유 전망대 구간 – 출처: 다나베시 구마노 관광국


이날의 길은 숲과 마을이 번갈아 나타났다. 전날보다 숲길 비중은 조금 줄었고, 마을을 걷는 시간이 다소 늘었다. 대신 숲은 훨씬 깊었다. 둥치가 굵은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오래된 시간의 결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한쪽으로는 산세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였고, 또 다른 구간에서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풍경의 리듬이 전날과는 사뭇 달랐다.


나카헤치 미치노에키에서 규바도지로 가는 길


규바도지가 자리한 하시오리토게 고개처럼 제법 가파른 오르막도 있었지만, 무리 없이 넘겼다. 숨이 차기는 했어도, 내 폐가 예전보다 많이 단단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장자들도 힘들다는 말을 하면서도 끝까지 잘 따라왔다. 특히 70대 후반의 노인장은 놀랄 만큼 건장했다. 부인이 동행을 마다해 혼자 왔다고 했는데, 고개를 오르며 “같이 안 오길 다행”이라며 웃었다. 만약 함께 왔더라면, 원망을 꽤 들었을 거라고.


이날은 코스가 비교적 여유로워 일본인 길라잡이와 함께 걸었다. 대신 남편이 서툰 일본어로 통역을 맡았다.


규바도지를 넘고, 마을에 스며들다


규바도지(牛馬童子)는 ‘소와 말을 탄 동자’라는 뜻이다. 구마노를 순례하던 가잔 천황이 소와 말을 번갈아 타고 이 길을 지나간 데서 유래한 석상이다. 순례자들에게는 이정표이자, 이 길의 역사를 말없이 증언하는 존재다. 하시오리토게 고개에 자리하고 있어 오르막이 제법 힘들었다.


규바도지 – 출처: 다나베시 구마노 관광국


길라잡이 할머니는 이곳이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며 여러 차례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영어 자료를 꺼내 들었고, 이번에도 우리 부부가 중간에서 내용을 옮겼다.


고개를 내려와 조금 더 걷자, 치카츠유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나타났다. 치카츠유는 순례자들이 머물러 가던 주요 거점 마을이다. 아래로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멀리 자그마한 학교도 보였다. 자갈길과 계단식 논, 숲길이 이어지는 풍경은 일본 산간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날씨마저 화창해, 걷는 내내 마음이 느슨해졌다.


유아사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 기슈토쇼구, 와카야마성


오후에는 관광 일정이 이어졌다. 점심으로는 마를 주재료로 한 정식을 먹었다. 간 마를 밥에 비벼 먹어보았는데, 특별히 맛있다기보다는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한 별미였다.


식사 후에는 간장의 발상지로 알려진 유아사(湯浅)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를 둘러보았다. 대형 간장 제조업장을 견학하던 중, 혼자 오신 노인장이 병 하나에 5만 원이나 하는 간장을 구입했다. 한국에 돌아가 초밥집에 가져가 자랑하며 먹겠다고 했다.


이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열 번째 아들, 도쿠가와 요리노부가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세운 기슈토쇼구(紀州東照宮)를 찾았다. 108개의 계단을 올라 본전에 서면, 사무라이 자카 너머로 바다가 시원하게 열린다. 대문 중앙에 바다가 정확히 들어오는 구도가 인상적이었다.


기슈토쇼구의 108계단(상), 본전 앞 대문을 통해 바라본 바다 전경(하)


마지막으로 들른 와카야마성은 마츠야마성, 히메지성과 함께 일본 3대 연립 평산성으로 꼽힌다. 태평양전쟁 중 소실된 뒤 충실한 복원을 거쳐 에도시대의 모습을 되찾았다. 일본의 성들은 하나같이 녹음이 짙어 신선하다. 계절의 변화도 잘 품고 있어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성곽을 물들인다고 한다.


와카야마성


온천 료칸에서 바다의 일몰을 바라보며 가이세키를 즐기다


이날 숙소는 와카야마 카다카이게츠온천 료칸이었다. 바다를 향해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가이세키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전 이틀간 머물렀던 메리어트 호텔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요즘은 전통 료칸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 호텔이나 온천 호텔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는데, 오랜만에 ‘일본다운’ 료칸에 묵을 수 있어 반가웠다.


와카야마 카다 카이게츠 온천 료칸에서 바라본 바다의 일몰 풍경


다소 낡은 느낌은 있었지만, 그만큼 소박하고 정감이 있었다. 통유리창 너머로 바다의 일몰을 바라보며 먹는 가이세키는 훌륭했다.


이번 여행에서 남편은 식사 때마다 얼굴에 만족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 마블링이 고운 소고기를 구워 먹을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는 소고기를 남편에게 넘겼다.


남편의 여행 우선순위는 분명하다. 음식이 마음에 들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만족스러운 한 끼 앞에서, 여행은 늘 성공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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