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루쿠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나의 인생은 거절의 역사이다. 다자키 쓰루쿠의 인생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주인공인 다자키 쓰쿠루는 고등학교 시절 조화로운 어울림을 느끼게 해주는 네 명의 친구를 만나고 인생의 가장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때를 보내게 된다. 이 네 명은 모두 각자 저마다의 개성으로 빛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연인지 모두 이름에 색깔이 들어가 있다. 쓰쿠루만 빼고. 그래서 뭐든지 자신을 뭐든지 중간이라고 느끼는 쓰쿠루는 늘 “색채가 가득한 네 명과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라고 생각하면서 동경과 자격지심 그 사이 어딘가를 헤엄치며 하루하루 보낸다. 그런데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그 네 명에게서 배척받게 되고 완전히 그 무리에서 퇴출된다. 그 후로 쓰쿠루는 피폐한 인생, 죽음마저 너무 강렬해서 실행하지 못하고 텅 빈 생활을 하게 된다.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더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사실 여기서 쓰쿠루가 겪게 되는 일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인생에서 경험하게 되는 일들이다. 거절과 상실, 그로 인한 패배감, 우울감, 절망 등과 같은 것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거절을 두려워하지만 슬프게도 인생은 크고 작은 거절의 역사이다. 그것이 내가 정말 믿고 있던 대상에게서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이뤄진다면 정말 끔찍한 경험이 될 것이다. 쓰루쿠도 그때의 자신의 인생을 차가운 밤바다에 비했는데, 그 밤바다를 건넌 후에도 그에게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나한테는 나라는 게 없기 때문에. 이렇다 할 개성도 없고 선명한 색채도 없어. 내가 내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게 오래전부터 내가 품어 온 문제였어. 난언제나 나 자신을 텅 빈 그릇같이 느껴 왔어. 뭔가를 넣을 용기로서는 어느 정도 꼴을 갖추었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내용이라 할 만한 게 별로 없거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 사람한테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를 잘 알게 되면 될수록, 사라는 낙담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나에게서 멀어지지 않을까.”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_민음사
인생을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있다. 흔히 암흑기라고 불리는 시기. 실패가 반복되면서 세상에 모두가 나를 거절한다고 느껴지는 때. 업신여기고 틀렸다 말하고, 그래도 제일 믿는 구석이었던 것들이 참담하게 나를 배신하는 그런 때. 끊임없이 밀려오는 커다란 불행들을 구역 구역 참아내고 있는데, 정말 별것 아닌 사소한 사건 하나에 나의 몸도 마음도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때가. 세상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느껴지고,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자책하는 날들이 이어지면 그저 평범하기를 소망하는 소소한 바람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불량품 같다고 느껴지는 그런 때가 있다. 다자키 쓰쿠루는 자신이 아무 색도 없다고 느꼈지만,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너무 여러 가지 색깔을 억지로 끌어와 이것저것 섞어버려서 새까맣게 되어 버렸다고 느낀 때가 있었다.
모두 나이 들어가는데 나만 낡아가는 느낌. 그렇게 내 인생이 비참해서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품질 미달이라고 자신을 학대하게 되는 나날들이 계속되면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너무나 큰 부담으로 느껴지곤 한다. 그럴 때 도움을 얻어볼까 하고 관련 책이나 매체들을 보면 “너 자신은 스스로도 빛나는 사람이다. 존재 자체가 값지다”등등 나 자신을 사랑하라고 강요하곤 한다. 마치 강박처럼,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상해져 버리고 만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결국 나라서 가끔은 아무리 찾아봐도 빛날 구석이 없는 나인데, 세상은 자꾸 내가 빛난다고 우겨댄다. 내가 봐도 초라하고 보잘것없는데, 값지다고 세뇌한다. 왜 매 순간 빛나야 하는가. 왜 매 순간 비싸야 하는가. 나는 상품이 아니고 그저 매일 여기 있음을 기록하고 있는 하나의 존재일 뿐인데. 왜 아무도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값지지 않아도.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는가.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칠흙 같은 터널 속에서 헤매는 당신, 바닥까지 쥐어짜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버텨서 숨이 쉬어지지 않는 당신.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할 수도 없는 절망에 끝에 있는 당신. 그런 당신에게 타인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때가 있다. 누가 날 좀 여기서 꺼내달라고 온몸으로 소리치고 발버둥 쳐봐도. 곁에 아무도 없는, 그런 때도 분명 있다. 쓰루쿠가 그런 심경을 언뜻언뜻 토로할 때, 그의 안식과도 같은 사라는 이런 말들을 한다.
“혹시 네가 텅 빈 그릇이라 해도 그거면 충분하잖아. 만약에 그렇다 해도 넌 정말 멋진,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그릇이야.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 그런 건 사실 아무도 모르는 거야.”
“역을 만드는 일하고 마찬가지야. 그게, 예를 들어 아주 중요한 의미나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약간의 잘못으로 전부 망쳐버리거나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는 일은 절대로 없어. 설령 완전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역은 완성되어야 해. 그렇지? 역이 없으면 전차는 거기 멈출 수 없으니까.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맞이할 수도 없으니까. 만일 뭔가 잘못된 부분을 발견하면 필요에 따라 나중에 고치면 되는 거야... 너한테는 그런 힘이 있어. 생각해 봐. 차가운 밤바다를 혼자서 헤엄쳐 건넜잖아.”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_민음사
주변에 사라같이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내가 확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그 절망에도 끝은 있고 결국 지나간다는 것. 결국 지나간다는 것. 괜찮다. 불량품이어도. 괜찮다. 보잘것없어도. 괜찮다 아무것도 아닌 패배자여도. 아주 가끔만 빛나고 아주 가끔만 값져도. 정규 생산 라인에서 불량품 취급받는 물건도 어느 직원에 손에 들려 그 집으로 가게 되면 자잘한 불량 따위 보이지 않고 그저 유용하고 만족도 높은 행운이 되는 것처럼, 결국은 모두 지나가고 어느새 불행의 틈 사이로 스미는 아주 작은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인생에서 불행은 피할 수 없다. 그저 당신이 스치듯이 불행하고 스미듯이 행복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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